다음날 1박2일의 러시아 아파트를 뒤로 하고 계획했던 올란우데에서 알콜 중독자 센터, 러시아 교회 방문을 하였다.
아침 일찍 나지막한 단층 구조로 된 러시아 교회를 방문했다. 한국 시골 교회와 비슷했지만 그곳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달랐다. 찬송가에서 그런 진지함을 보며 경직되어 있는 우리를 다시 돌아 보게 되었다. 낯선 한국인들의 방문에 성도들도 의아해 했다. 한국어로 부르는 특송을 하며 약간 우리팀이 단기팀이 된 듯했다. 예배가 마쳐진 후 귀여운 러시아 아이들을 보며 참 우리네 시골 아이들과 비슷해 보였다. 다 낡아 운행이 멈춘 자동차 안에서 놀며 웃음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사탕하나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지금이야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한국과의 관계가 좀 어색해졌지만 전쟁이 끝나면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인의 집이라는 알콜중독자 치료센터에 갔다. 다들 멀쩡한 사내들이다. 오두막집 숙소와 주변에 경작할 수 있는 밭이 있었다. 감자, 파, 오이 등을 경작하며 알콜중독으로 사회에서 밀어낸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이었다. 러시아 특성상 추위로 독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고, 적절히 치료받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치료받고 있었다.
오후에는 브리야트공화국 박물관 예정이었으나 돌아가는 차표 예매와 거주증을 가져오지 못한 이유로 주러시아 몽골대사관으로 찾아가 비자 발급이 가능한지 물어보기로 했다. 기차표 예매는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출발할 때 한화로 1인당 6만5천 투그릭이었으나, 러시아에서 몽골로 돌아오는 가격은 25만 투그릭 정도 되었다. 너무 비싼 가격에 고속 버스를 이용해 돌아오는 방법을 택했다. 당일 아침 일찍 도착해 버스를 타기로 했다. 몽골 대사관은 당연히 상주 직원이 없었다. 일요일이었기에 경비만 있고 직원이 없어 아무 말도 못하고 되돌아 와야했다. 마음이 먹먹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에 나만 여기에 남아 비자 받을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족들에게, 팀원들에게 미안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올란우데의 레닌흉상에서 사진을 찍었다. 몽골 울란바타르에서도 광장 주변에 레닌흉상이 있었는데 몇해전 정리를 했다. 약간의 유럽느낌이었지만 사람들의 표정에는 낭만은 없고, 경직된 모습은 있었다.
25인승 버스를 불러 북동쪽 바이칼 호수로 향했다. 엄밀히 말하면 남들이 다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바이칼이 보이는 중간지점인 바르구징이다. 가는 곳이 북쪽이라 그런지 몽골과는 다르게 숲이 많았다. 길이 몽골과는 다르게 잘 닦여져 있었다. 토르카를 거쳐 바르구징까지 4시간거리였다. 관광지가 아니여서 그런지 호텔은 없고 전부 민박이었다. 하늘색, 녹색 등 알록달록한 통나무집들은 관광지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라 더 좋은 선택처럼 느껴졌다. 자그마한 가게, 낯선이들을 바라 보는 눈빛, 그러함에도 한마디 친절하게 러시아어를 못하는 낯선 이방인들이 바르구징 어촌 마을에 서 있었다.
숙소는 러시아 아파트와 다르게 1층과 2층이 구분되어 있었고, 작지만 개인 침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오후 늦게 도착 했기에 호수에 가보지는 못했다. 주변에 가게에서 먹을 것을 준비했다. 큰 마트가 없었기에 원하는 모든 것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도시락(컵라면)과 정어리 캔, 소세지가 우리의 좋은 먹거리가 되었다.
간단한 빵과 잼으로 식사를 했다. 다들 침대에 뭐가 없었냐고 물어본다. 내가 잔 침대에는 별문제가 없었는데 2층에서 잤던 안샘네는 벼룩이와 함께 밤을 보냈다고 하며, 밤새 긁은 피부를 보여주었다. 밥을 먹고 호수로 향했다. 차를 빌리긴 했지만 호수 주변은 모래가 있어 걸어가는 것이 더 현명했다. 서해안 바닷가와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호수이기에 짠 맛은 없다. 그러나 너무나 큰 호수에 파도와 갈매기까지 바다였다. 너무나 바다와 같은 광경에 아무도 호수라고 말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