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수의 깊이가 1,742m라고 한다. 물이 맑았지만 그렇게 차갑지는 않았다. 몽골 흡스골 호수는 7~8월이 되어도 너무 차가워 발 담그기에도 힘들었는데 이곳은 해수욕하기에 적당했다. 호수라고 했지만 지평선이 보이지 않았기에 바다라고 봐도 될 것 같았다. 바닷가 주변에 키 큰 소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해변에는 바닷가처럼 고운 모래들이 있어 몽골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몽골은 그저 사막에 가야 모래를 볼 수 있었는데 이곳은 서해안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과 비슷해 보였다.
주변 가게에서 어부들이 잡아 놓은 오물(바이칼 호수에서 잘 잡히는 생선)을 몇 킬로 사 왔다. 비싸지 않았기에 우리는 내장을 제거하고 점심으로 해변가에 모닥불을 피우고 구워 먹었다. 해변가에 나무들이 얼마나 충분한지 곳곳에 폐목을 모아 두어 사용할 수 있도록 쌓여 있었다. 오물은 양미리보다는 크고, 연한 가시가 많았지만 먹기에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준비한 빵과 소시지 그리고 구운 생선은 또 다른 이국에서의 낭만을 즐겼다.
아이들은 모래 위에 앉아 성을 만들기도 하고, 구덩이를 깊게 파 그 속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어른들도 어린아이들과 같이 바다 뛰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준비한 수영복도 챙기지 못했기에 그저 눈으로 즐겼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호수 안에 풍덩 들어가 줄자를 들고 호수의 깊이를 재고 있었다.
저녁에 다 같이 식사를 하고 나서 잠깐 모였다. 의사소통의 문제로 아내는 너무 힘들었다고 함께 모인 자리에서 나눴다. 그럴 수도 있었겠다 생각했다. 전체적인 계획이 없이 여행을 출발했기에 모두의 동의가 없었다. 그렇기에 기대했던 여행과는 다르게 좋은 숙소도 아니었고, 편하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오늘 바이칼 호수에서의 쉼으로 그 사실들을 모두 잊게 되었다고 말했다. 모두들 같은 마음은 아니었기에 다름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남자들이야 짧은 여행 기간을 흘러가는 대로 보내면 된다고 생각하기에 예민한 사람은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밤 바르구징 민박집 창가에 뜬 고은 달은 별과 함께 더 진하게 느껴졌다.
아침 일찍 되돌아가는 일정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계속 마음 한구석에 비자 없이 귀몽해야 하는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했다. 다른 가족들은 본인의 일이 아니었기에 출입국 관리소에서 정해지면 어떻게 할지 보자는 입장이었다.
아침 25인승 버스를 타고 올란우데로 돌아왔다. 올란우데 버스터미널에서 우리 팀의 버스 티켓을 샀다. 기차비가 6만 5천 투그릭이었지만 되돌아가는 버스비는 8만 2천 투그릭이었다. 약간 더 비쌌지만 러시아 기차보다는 한참 저렴했기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러시아 사람들과 몽골 사람들이 뒤섞여 버스를 탔다. 중간에 휴게소가 있어 간단한 요기와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 그런 면에 있어 몽골보다는 러시아가 선진국이었다. 몽골은 장거리 여행에도 길도 험할뿐더러 휴게소가 있기는 하지만 시설면에서 너무 열악했다.
국경인 알탕볼락에 왔다. 러시아 출입국 사무소에서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한국인은 무비자이기에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몇 백 미터인 몽골 출입국관리 사무소가 내게는 큰 문제였다. 러시아 사람들은 몽골입국이 무비자이기 때문에 여권만 있으면 쉽게 통과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비자가 있어야 입국할 수 있다. 모두가 비자가 있었지만 나만 없었다. “어떻게 한 번만 눈감아 주세요.” 기도하며 출입국 직원을 마주했다. 우리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내 순서가 되었다. 왜 당신은 거주증이 없냐고 했다. 몽골에서 잊어버리고 안 가져왔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랬더니 여권에 도장을 꾹 찍으며 다음부터는 꼭 가지고 다니라 했다. 만약 혼자였다면 통과할 수 없었지만 가족들이 출입국사무소에 등록이 되어 있어 큰 문제없이 지나간 것이었다. 3박 4일 동안 그렇게 걱정했던 것이 그렇게 쉽게 넘어간 것을 보니 약간 허무하게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즐겁게 놀 수 있었을 텐데…. 안 선생님이나 고 선생님이 여행 내내 농담으로 정샘은 러시아에서 남아 몽골 대사관 가서 비자받아야만 올 수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럴 생각이기도 했다.
국경도시 알탕볼락을 넘어 우리는 몽골로 무사히 넘어갔다. 휴게실에 잠깐 내려 화장실과 잠깐의 요기를 했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몽골 화장실을 보며 깜짝 놀라 했다. 내가 봐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랬다. 자세하게 표현하기에도 적절치 않을 정도였다.
아침 7시 30분에 탄 버스는 오후가 넘어 4시가 되어 울란바타르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리 이야기해 둔 학교 버스가 대기하고 있어 집까지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은행 직원실수로 엄청난 돈을 가지고 러시아로 도피?했지만 그 돈이 모두의 회비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었다. 거주증을 가져가지 않아 여행 내내 걱정했던 것도 가족들의 거주증이 있어 쉽게 해결되었다. 아내도 불편한 여행이었지만 바이칼 호수를 보며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바다와 같은 호수를 봤고, 러시아를 잠깐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아이들도 어렸을 때 러시아 바이칼 호수 갔던 기억을 이제 성인이 된 큰 아이도 좋았다고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