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내게 알려준 생활 지침서 09
삶에서 방향이 튀는 경우가 있어. 변곡점이지. 그건 기회일 수 있어.
고양이에게 동원참치 캔 등장 이전과 등장 이후의 삶이 달라졌듯이 말이야.
너의 삶이 왜 뒤틀리지? 그때가 너의 길을 찾아갈 때 일 수 있어.
지금은 한국 고양이가 선진국 고양이가 됐다. 나는 어릴 때에 비만 고양이를 못 봤는 데, 최근에는 비만 고양이가 늘었다.
맛있는 사료와 영양간식 때문이다. 그리고 아파트의 안락한 생활로 뛰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내가 어릴 적 키웠던 고양이는 이제 막 중진국 시대를 살았던 시대였다. 당연히 고양이 사료도 없었다.
오래전, 내가 초등학교 다닐때 고양이가 아프면 아버지는 급처방을 내렸다. 별거 아니다.
아버지는 고양이에게 우유에다가 설사약 또는 감기약을 조금 빻아서 주곤 했다. 그럼 금방 회복된다. 사실 고양이에게 우유도 감지덕지했다. 그러다가 참치캔이 나왔다. 신제품이다.
동원참치 또는 사조참치에서 통조림이 나왔다. 그때까지는 정어리 통조림, 꽁치 통조림 수준이었다. 통조림이란 말도 잘 안 썼다. 간즈 메, 간소메라는 일본말을 썼다. 그래서 아프면 병문안으로 복숭아 간즈메를 사 가곤 했던 시절이었다.
고양이가 아플 때, 예를 들면 고양이가 어디서 이상한 거 주어먹어서 가끔 설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 아버지는 참치캔을 따서 고양이에게 약을 섞고 밥을 조금 섞어 주었다. 그때 참치캔과 약은 환상이었다. 고양이는 바로 설사도 멈추고 활동적으로 됐다.
짜식, 맛있는 건 알아가지고
참치캔을 먹은 배부른 고양이는 나무로 된 마룻바닥 방석 위에 잠들곤 했다.
초등학교 다녔던 나는 고양이 옆에서 엎드린 채 ‘수련장’에 공부를 하고는 했다. 마루에 있는 전축의 라디오에서는 대학가요제 수상곡이 인기곡으로 나왔다. 전축은 음향시스템을 말한다. 카세트테이프와 라디오, LP플레이어 그리고 큰 스피커를 갖춘 오디오 기계 이다. 크기는 지금의 김치냉장고 절반 크기이다.
그때는 도시를 봉쇄하고 군인이 시민을 죽여도 되는 시기를 막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한국은 중진국으로 변화되고, 민주의식도 고양되어 가고 있었다. 고양이의 삶도 변화되고 있었다.
대부분 외부 충격에 의한 변곡점들이 있다. 내가 의도했건 안 했건 간에 말이다.
중계팀은 FIFA에서 온다. 즉 외국인들이 다 촬영하는 것이다. 우리가 촬영해서 해외로 송출하는 게 아니라 모든 걸 피파에서 한다,
그 후, 한국의 스포츠 중계는 2002년 월드컵 전과 후로 나뉜다.
스포츠 중계의 큰 차이는 사람의 표정, 즉 감정을 전하는 것이다.
그럼 그동안 어떤 식으로 촬영했는 냐..
월드컵 전에는 한국은 성과위주의 사회인만큼, 골 넣는 장면 보여준다. 주로 공격수만 찍어 보낸다. 수비수는 모른다. 그리고 경기의 결과만 중요했다. 졌냐 이겼냐 였다.
월드컵 후에는 사람의 표정을 보여주었다.
골을 넣으면 당연히 공격수의 기쁨에 찬 선수들 표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골키퍼, 감독, 그리고 관중까지 보여주고 애통해하는 상대편 선수와 관중까지 보여준다. 지금은 흔하지만, 2002년 중계는 그게 굉장히 진보된 영상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는 홍명보처럼 비장한 모습, 김태영처럼 수비수들의 태클 후, 땀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 등이 그것이다.
인생의 변곡점이란 게 있다. 전환점이다.
인생에도 관성의 법칙이 있다. 인생이 흘러가는 방향이 있어서, 계속 가려는 성질이 있다. 그런 관성을 멈추거나 방향을 틀려면 굉장히 에너지가 된다. 급히 멈추거나 확 꺾어야 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그래서 하늘은 실패 또는 나락, 실망, 절망을 주어 인생의 큰 방향을 틀게 한다.
가만히 보면 인생은 예상되고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방향도 그렇다. 실패와 나락은 흘러가는 인생을 잠시 멈추게 한다.
그리고 충분히 쉬고, 숙성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람이 절망하고 웅크리고 엎드리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 시간이 사람으로 하여금 쉬게 만들고 사색하게 만든다.
물론, 틀어진 인생의 방향은, 꺾인 것 같은 인생의 길은
처음 갈 때가 두렵다. 이게 맞는 건가? 또 실패인 건가?
하지만 알려주었다. 고양이의 삶처럼
새로운 변화를 맛있게 받아들여라.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