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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덴부와 셜리 Oct 01. 2022

고양이는 천사가 두려워하는 사랑의 영역으로 떠났다.

고양이가 내게 알려준 생활 지침서 10


사랑은 바보 같은 사람들이나 달려가는 거야. 천사들도 가기 겁나는 그곳, 이성과 논리를 무시하기에 지혜로운 사람이 겁내 하는 그곳. 바보니까 달려가는 거야. 사랑으로.
우리는 바보니까.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 마음을 알까? where angels fear to tread라는 노래가 나온다.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운 그곳. 사랑의 영역이다. 그러다 어릴 적 고양이가 생각이 났다.


고양이는 천사도 두려워하는 사랑의 영역으로 갔다. 


고양이는 텔레비전 위 창가에 앉아 달을 보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들 고양이의 울음에 반응을 하는 거 같았다.

내가 키운 고양이 역시, 달을 향해 울었다. 그때, 고양이는 자기의 사랑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 듯한 눈이었다.


지금 선진국의 반려 동물들은, 자궁 적체 수술 또는 거세를 해서 집안에 잘, 얌전히, 안락하게 생활하고 있다. 내가 어릴 때 적, 반려동물의 개체수까지 걱정을 못했다. 그때까지도 “쥐를 잡자” 포스터를 그릴 때였다. 또는 “공산당, 초전박살”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포스터를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그리기 시작했던 시절이었다.


내가 고양이를 키우기나 한 걸까? 그저 한 집에 나와 공생했었던 고양이는 달 빛을 바라보더니 집을 나갔다.

아기때부터 키웠는 데 말이다. 고양이가 자라면서 그렇게 자신의 사랑을 찾아 떠났다. 그 후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길을 가다 마주친 길고양이를 보면, “너는 내가 키운 고양이의 몇대손 자식이냐”고 물어보고 싶다.


사랑을 찾아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걸까?


지금은 21세기하고도 20년이 더 지나가고 있다… 여전히 사랑은 뭘까?라는 생각.


“응.. 고마워.. 디자인은 그렇게 해줘.”


전화를 끊었다. 제니는 나의 일을 도와주곤 했다. 이제 모두 나이가 들었지만 우리는 젊었을 때 만났기에 늘 20대였다.


제니는 착실하고 진지하고 통통한 친구였다. 그 친구가 없었으면 내가 위안부 문제를 알 수가 없었을 것이고, 전생과 윤회에 대한 철학적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20대는 그렇지 않나? 우리는 서로 자아에 대한 고민, 나를 둘러싼 사회, 나를 감싸는 우주에 대해 늘 생각하고는 했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스무 살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제니가 졸업 후 결혼을 한다는 거였다.

속물근성이었을 까?

나는 조금 더 좋은 남자를 만나기를 바랐다. 조금 더 잘 생기고, 조금 더 안정적인 직장이면 어떨까.

학벌과 출신과 별개로 평등한 세상을 지양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그렇게 생각이  됐다.


제니보다 좋은 학벌에 좋은 남자를 만나면 어떨까? 인물이라도 좋으면 좋을 텐데. 그래도 의무교육은 다 했어야 하지 않나? 아.. 아… 의무교육은 마쳤다고 들었다… 맞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지난 일요일에는 두 아들과 sk와이번즈 경기 보러 갔어.”


지금은 프로야구 구단주도 바뀌고, 아들들은 군대를  정도로 컸다.

제니는 일도 잘하고, 아이 둘도 혼자 잘 키워나갔다.


내가 누굴 걱정하나.


사랑은 나그네를 만나는 것과 같은 걸까?


사랑은 그렇게 각자, 그때 찾아오는 나그네와 같은 것일까.

그때 찾아온 나그네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 지, 별처럼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호기심 있게 나그네의 이야기를 듣고, 가보지 못한 세상을 상상한다.

그 호기심과 상상이 사랑 아닐까.


나는 이기적이고 서투르고 호기심과 상상력이 많은 아이였기 때문에, 누구의 사랑에 훈수를 하고 걱정을 할 자격이 없다.

각 자의 사랑이 있고 각 자의 길이 있다.

그 길은 남들처럼 잘 닦여있지 않아도, 내게 주어진 길이고 가야 할 길이 있으면 가는 게 맞다.

사랑의 길도 자신의 길로 찾아간다.


제니도 고양이도 각자, 사랑의 길로 용감히 뛰어들었다. 바보처럼


이제는 제니가 사랑하는 아들들을 잘 키운 거니, 그의 사랑은 충만했던 것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야생 같은 새로운 길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옆에서 보면 바보 같고, 천사들이 보면 걱정되고 두려워하는 것 같다.


각 자의 길이 있고, 그 길이 자갈밭이어도 사랑은 축복해주어야 하는 거 아닐까?

나의 길을, 내가 선택해서 걷는 길이라면

천사가 걱정해도

나의 길은 장미가 수놓아진 비단길 같은 것이니까.


그래서 사랑은 천사도, 지혜로운 자는 할 수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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