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해의 기술 - 조호리산
조호리산(調虎離山) - 픽업, 고를 조, 호랑이 호, 이별 또는 떠날 리, 뫼 산이다. 호랑이를 유인하여 산으로 나오게 하여 싸우는 방법이다. 상대방이 유리한 곳에 싸우지 않고 자신이 유리한 지형으로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인사평가, KPI평가를 무슨 서류를 확인하고 업적을 읽어 봐.. 이름 석자만 보면 결과가 나오지(내 머릿속 기억에 있는 <본부장의 명언집> 중 일부 발췌)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대기업 신입사원의 경우도 그렇고, 언론사도 마찬가지이다.
신입사원 워크숍에서 이미 인물이 출중한 친구가 있다. 저 친구는 임원까지 가겠구나 또는 언론사의 경우, 저 친구는 편집국장까지는 최소한 가겠구나가 보인다는 것이다. 무슨 관상이나 그런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업적보고를 많이 쓰고, 실적을 정확히 쓰거나, 또는 부풀려 써도 그 수많은 업무 기록을 일일이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름 석자만 보고 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단점은 그 이름 석자가 우리의 라인인지, 메인스트림인지, 귀공자 그룹 또는 공주 그룹, 황태자 그룹 인지를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슬픈 건, 대부분 두 번째에 해당된다.
나를 돼지고기 껍데기에 찍힌 청록색 도장처럼 취급하는 가. 왜 평가를 하는 가.. 그것 자체가 평가가 기분 나쁠 수 있다.
그래서 평가기준이 뭐냐? 평가 시스템이 어떻게 되냐. 평가 수치와 계산이 맞냐 는 둥 인사팀으로 항의를 하는 경우도 많다. 우는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항의하면 다음에 더 잘 받을 수 도 있을 것이다. 과연?
내가 실적이 안 좋아서 밀렸다.
내가 대인관계가 안 좋아서 밀렸다.
내가 근태 및 복무, 기타 지침 준수에 오버된 게 많아 밀렸다.
내가 선배 승진하고 다음 승진이 나이니까, 될 사람 해 주고 밀렸다.
내가 못 해서 밀렸다.
내가 라인을 못 잡아서 밀렸다.
난 불공평한 유리천장에서 싸우고 있다.
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고 있다.
과연 라인을 못 잡아서 밀렸을 까? 으음.. 나는 내 경우는.... 잘 모르겠다.
첫 출근길에 사전과 서류가 벽돌처럼 날아다녔다.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내가 기억하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예전에 LG전자 프랑스 지사에 일하던 사람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일본 전자 제품의 프랑스 지사로 있어서 한국 기업으로 스카우트된 사람이다. 이 사람이 첫 출근할 때 기억한 한국기업의 풍경이었다. (책제목은 한국인은 치쳤다. 저자는 에리크 쉬르데주, 2003년부터 약 10여년간 lg전자 프랑스 법인에서 일함)
물론 20여 년 전이다. 사무실 풍경은 대기업이든 외국이든 고성이 오갔고, 서류가 날아다녔다. 그리고 윗사람이 출타하면 모든 전력을 거기에 맞추어야 하는 풍경을 꼬집은 책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아예 교무실 복도 쪽에 전교 석차가 나열되어 발표했었다. 난 그런 학교에 다녔다. 갑자기 급부상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학기 초반 상층부에 있다가 나락으로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는 딱 두부류였다. 사립초등학교 출신으로 그 약발이 다 한 친구, 또 하나는 똑똑한데 가정형편 상 성적이 떨어진 친구로 나뉘었다. 어쨌든 평가의 레이스는 만 천하에 공개된 세상에 살았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줄 서고 나열하고 앞 뒤부터 정하고 보는 시대를 살았다.
그렇다면 평가는 무엇인가.
더 잘하려고 하는 것이고 더 보상받고 인정받고 싶은 게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의 평가는 늘 하위권이다.
사실 이게 제일 힘들고 너무나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직장인에게는 박수와 위로를 보내주어야 한다.
그것은 내가 잘하고 좋아하고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유리하게 경쟁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내가 하위권에서 탈출하기 때문이다.
마치 대나무숲 속에 숨어있는 호랑이와 싸운다면 내가 질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산으로 내려오게 하여 평야 벌판에서 싸우는 편이 내가 유리하다. 그래서 산보다는 평야가 좋다.
그것은 부서를 바꾸거나 이직을 하거나 창업을 하거나 하는 방법이 있다.
또 하나 마인드를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어떻게 바꾸냐고? 마인드는
나의 능력을 인정하고 조직의 중간치로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