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해의 기술 - 번외 편(수면제, 졸피뎀 부작용)
난 지금 우울증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누우면 3초 안에 자.
취미는 없지만, 금요일이면 저녁에 퇴근해서 요리를 하고 쇼미더머니나 윤식당을 보는 게 세상 제일 행복했다. TV, 요리와 와인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날 토요일이면 바닷가로 스노클링을 하러 가곤 했다. 제일 행복했다.
그럼에도 나는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나? 앞에도 썼지만 회사강당을 혓바닥으로 청소하는 느낌으로 일을 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일만 하니까 머리가 맑아지고 생각도 좀 단순해졌다.
그러고 보니 우울해진 게 아니라 그냥 쪽팔려서 그런 거였다.
강당 문 열고 닫는 게 뭐 어때서 말이다. 늘 말하지만, 월급 안 잘리고 돈 받으면 됐지 직군 발령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거다. 그 당시 나는 평가 하위여서 임금상승률은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연차와 직급 중에는 내가 원래 높았어서 상관없다는 마인드였다. 게다가 너희들은 기획일을 해봤자 머리가 안되니까 얼마나 힘들까라고 속으로 걱정을 해주었다.
이래서 주위에서 나보고 멘털 갑이라고 했나. 아니면 이런 자세이니까 주위에서 얄미워서 내가 더 평가가 안 좋았나. 쩝. 사실 속으로는 우울하고 공황장애인 것 같았다구!! 나두...
바이든이 아니라 정말로 날리든 사람이었다. 여의도에서 상암동으로 옮겨가면서도 날렸다. 회사에 수익만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여줬다. 늘 평가는 당연히 S 또는 A였다.
친구의 기억에 남는 것은 사무실에서 오고 가는 씨X(비읍 아 리을)놈과 썅X(니은 여 니은), 명품 옷과 가방, 그리고 수면제와 우울증 약이었다.
결과적으로 친구는 퇴사했다. 이직이 아니라 퇴사를 했다. 번아웃과 공황장애로..
수면제 복용 부작용인지.. 그때의 행동이 기억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어깨 위에 쌓인 소복한 눈을 보고 얼마나 오랫동안 난간에 있었는지 가늠만 할 뿐이라고 했다.
옥상에서 담배 피우던 동료들이 구해주었다고 했다.
(역시 적당한 흡연은 사람을 살린다. 쩝)
당연히 본사의 아들, 딸들과 누구의 아들과 딸들,
그리고 가방끈이 길어 공부도 열심히 했던 분들인데 회사 보고서까지도 열심히 했던 분들은 남았다.
마음도 느긋하고 업무처리도 느긋한 분들도 남았다고 한다.
누구의 아들 딸들은 입사 2년 차인데도 그 업계의 전문용어조차 몰랐다고 한다. (어렵지도 않다. 큐시트 뭐 이런 거)... 공부 열심히 한 분들은 회사 실적과 영업은 꽝이었다고 했다.
마음 느긋한 분은 승진이 계속 누락되어 평사원으로 나이 50에도 잘 다니고 있다고 했다. 여전히 매일 강남에서 상암까지 택시로 출퇴근하면서 말이다. 계절이 바뀌면 나뭇잎 색깔도 변하듯, 자신의 가방도 신상으로 바꿔가며 회사를 다닌다고 한다.
그분들은 남았고, 회사도 멀쩡히 돌아간다. 망하지 않았다. 업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아이폰 정도를 만들 정도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잘 돌아간다.
새벽부터 하는 운동 또는 밤에 하는 운동은 오히려 체력과 정신에 문제를 줄 수 있다.
신체에는 피로감을 주고, 정신에는 그저 스케줄링으로 움직여야 만족한다는 것만 주는 것이다.
운동은 머리를 비우게끔 하고, 기분 좋은 피로감으로 잠을 잘 오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운동을 직장 스케줄처럼 짜놓고 다니면 위험하다.
내 친구도 야근하고, 운동까지 하고 집에가 씻고 새벽에 출근해서 일하고를 반복했다.
“독일의 페터 악스트 교수의 <게으름의 즐거움에 관해>에서 마란톤을 하는 대신 해먹에 누워 빈둥거리거나 스쿼시를 하는 대신 낮잠을 자는 사람이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했다.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나 할까.
내 친구가 정신을 잃고 사무실에 쓰러졌을 때,
황급히 소리 지르고 깨우고 119를 급하게 부르며
눈물 흘리며 깨어나라고 소리치고, 구급차에 실어주며 도와줬던 사람들은
자기에게
씨 X새끼, 썅#이라고 사무실에서 소리쳤던 사람들이었다.
음해를 하던, 싸우던 그래도 직장동료들은 '사람'이고 '인간'이다.
당연히 나는 친구의 비밀 또는 사생활을 모른다. 내 특징이 원래 남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나 대부분 각자의 비밀 같은 문제들이 있다.
집안문제, 연애문제, 환경문제, 형제 문제, 부모문제, 와이프 문제, 허즈번드 문제, 자식문제, 종교문제, 경제적 문제, 섹슈얼 오리엔테이션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인생에서 다가온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본 결과로 마음의 평안을 얻으니까.
단, 시간만을 내어놓는 게 아니라 나의 것도 내어 놓아야 마음의 평안을 얻는 다.
그러나 명품 가방과 신발보다는 마음의 평안이 훨씬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런데 나는 사실 시간의 범위와 내어놓아야 할 무언가를 명확히 규범 짓지 못하는 게 나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분은 나보다 훨씬 내공이 깊은 의사, 학자, 도사, 도인, 종교인 등등을 만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다만 "음해를 잘 막아내고 자존감을 지키는 기술"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먼저 사장되기 전에 죽으면 안 될 것 같다. 특히 수면제 같은 거...
먼저 수면제 같은 것은 2주~4주 이상 복용하면 위험할 것 같다. 특히 졸피뎀 성분의 약을 장기복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부작용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만 하게 되기 때문이다. 앞장 주제에서도 말했지만 회사원은 죽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9시에 출근하는 당신이 자랑스럽다. 참조)
둘째로 우울증이나 이런 것에 대해 전문가 상담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옛날 친구가 생각났다.
중학교 친구는 덕수상고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우연히 만났는 데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했다.
그때 S계열 회사에서 대졸자나 고졸자 상관없이 학력제한을 폐지했을 때이다. 능력 있는 친구는 대기업에 푸드 계열로 들어갔다.(그때는 S계열이 전자, 섬유, 식품, 백화점도 있었다.... 이러면 다 아는 거 아냐?)
우연히 만났는 데,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그때가 22살 때였나?....
덕수상고면 웬만한 인문계졸업자나 애매한 대학교의 경상계열보다 인정해 주는 데, 그래도 고졸자라고 해서 무시했나 싶었다. 그런데 같은 팀에 무려 3명이나 정신과를 다녔다고 했다. 이건 본인이 어리거나 고졸자라고 음해를 다닌 게 아니라 시스템이 문제일까 고민했다.
어떻게 해결했을 까? 궁금한데 그 이후로 못 만났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고, 굳이 졸업장에 나와있는 집전화로 전화할 정도 사이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지금쯤 S그룹의 임원진이 되었을 까? 내 집 앞 주유소에 고급휘발유를 넣고 있는 마이바흐 뒷좌석에 앉아 있지는 않을까? 행여나 오늘도 뒷좌석 유리창을 쳐다본다... 안 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