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크다스 멘털 - 내가 쓴 일기와 다짐글이 왜 부끄러웠을까
일기 또는 지난날의 메모와 다짐에 대한 글을 쓰곤 한다. 그러나 메모장과 일기책은 흩어진다. 그러다가 다시 보게 된다. 이런 메모들이 있다.
난 몇 년 후에 그것을 이룰 거야.
그런 글을 읽어보면 정말 손가락이 오그라들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다짐들,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들이 노트 위에 흩뿌려져 있을 때, 난 정말 주저앉았다.
오늘 나는 하나의 공책을 들추어 보았다.
2016년에 쓴 "5년 후 나의 모습"을 보았다. 정말 손가락이 오글거려서 미치는 줄 알았다. 부동산이나 투자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의 포지셔닝, 사회적 위치 등등을 적어 둔 것이다. 그러나 무려 2023년이나 지나서도 된 것은 하나도 없다.
2016년에 쓴 글은 날 오글거리게 만들었다. 내가 혼자 쓰고 나 혼자만 본 것인데도 너무 부끄러웠다. 정말 엎드려서 울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뭐 하고 살았지...라는 허무함도 밀려왔다.
왜 내가 쓴 일기를 다시 보는 걸 스스로 두려워할까?
그 이유는 당연하다. 나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약간 왜곡하고 덧칠하고 뽀샵하고 확대하고 과장하고 일부 축소하고 싶은 마음이 요동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 자신을 스스로 낮추어 보는 게 일상적이다. 작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인걸 안다. 그것을 또 직시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나 자신을 직시하고 똑바로 보는 것을 바로 "용기"라고 한다. 그 용기를 바탕으로 나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을 "자존감'이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은 잘난 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글을 보고는 용기와 자존감 대신에 낭패감과 열등감만 든 것은 사실이었다. 에잇~
내가 쓴 일기와 다짐글이 나중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기반으로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뚱뚱한 몸과 음악감없는 감성으로 래퍼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힙합으로 들으면 되지, 나이 50 넘어서 래퍼가 되겠다고 쇼미더머니를 준비하면 안 된다. 물론 나이가 많은 사람은 하던 사람은 해도 된다. 그리고 꾸준히 연습을 하면 된다. 그런데 일주일에 출근길에만 듣는 음악 수준으로는 안 된다.
- 막연히 부자가 될 거야라고 썼을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
- 부자가 되는 것은 좋다. 그런데 변호사나 판검사가 되기 위해 법을 공부하고 로스쿨을 나와야 한다. 그러면 과정을 <로스쿨 진학, 등록금 마련 >으로 과정을 써야 한다.
- 그런데 무엇을 해야 할지를 뭘로 돈을 벌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 써보면 대부분 그 지점이 나의 취약점이다. 정말 직시하기 싫다.
- 인내하고 참아야 하고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 대부분 될 것만 생각하지 안 해야 할 것은 써놓지 않는 다.
- 무모한 도전을 위해서는 현재의 안일함과 달콤함, 안락함을 포기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 포기할 용기는 1번, 현재의 기반을 포기해야 할 때 무모한 도전은 시작된다. 하지만 크게 보면 포기가 아닌 연장선상일 수 있다.
- 지금 생각하니까 내가 변호사가 되는 것을 30초 정도 생각해 봤었다. 그때는 사법고시가 곧 폐지된다고 발표했을 때이다. 그때 공부했으면....
- 그러기 위해서는 다니는 직장을 과감히 관두고. 돈 빌려서 등록금 마련하면 되었다.
- 2016년에는 나이가 많아서 유학을 포기했다. 지금 생각하니 공부하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 지진과 태풍, 자연재해, 역병 등 엄청 많다. 변수는... 예를 들면 멋진 레스토랑도 코로나 터지면서 망한 집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왜냐면 5년 안에 안되면 그다음 5년 안에 하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