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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 주제에 백만 원짜리 도장부터 팠다.

by 덴부와 셜리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려면 회사 도장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구두가게나 열쇠가게에서 만들어주는 도장집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일명 '막도장' 말고, 그래도 좀 폼나게 만들어야지....하며 전문 도장가게를 찾아갔다.


노느라 돈도 떨어지고, 사업 아이템도 없지만.

일단

도장을 파기로 했다. 그 도장으로 회사를 만들 생각이었다.

물론, 나는 한번도 회사를 만들어 본적이 없고 가게를 낸 적이 없었다.

아버지도 평생 월급쟁이로 '책상(사무직)' 근무하셨다.(사장이 그때 70이 넘은 아버지를 계속 출근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어쨌든.


나는 뭔가 시작하려면 도장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광화문에 있는 도장집에 갔다.


찾아간 도장집에서는 내게 백만 원짜리 도장을 권했다.

아... 이 상술.

나는 이 가게에 들어가기 전에 생각했다.

분명히 벼락 맞은 도장을 권하겠지. 절대 안 살 거야...

라며 속으로 다짐했었다.


어쩔까.


그렇다. 그때가 실업자였다. 돈도 없었다.

그땐 주로 뭐 할까.. 앞으로 뭐 할까 생각만 하고 누워있었다.

감나무 밑에서 누웠던 것 같았다.

그저 입만 벌리고 감 떨어지는 심정이었다. 어떻게 되겠지.


그러나 난, 불안했지만 나의 미래를 믿었다.

나는 행복해질 것이고, 난 스스로 혼자 작은 나만의 공간과 사업을 할 것이라고.


물론 그전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조언을 해주었다.


점술가가 말했다.

회사 그만두면 술장사 좀 하다가 바로 거지될 거야


회사 대표인 선배들은 말했다.

너무 참모 스타일이라. 사업가는 아니야. 내 밑에서 일해.


시스터는 말했다.

오토바이 타는 법을 빨리 배워둬.(그래야 배달일을 하지)



그러나 나는 도장부터 만들기로 결심했다.


도장가게 할아버지는 내 사주를 봐주고

사주에 맞는 도장이라며 샘플을 보여주셨다. 돌로 만든 것 보다 나무로 만든것이 좋다나. 나에게는.


마치.. 영화 <그렘린>에 나오는 차이나타운의 이상한 잡화점처럼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앉아 있었다.

어쩔까... 비싸다.

듣기 좋은 입바른 말이겠지만.

도장가게 사장님은


이 도장으로 계약서 찍을 일이 많아질 거예요. 반드시



결국. 도장을 만들었고

2년이 지났다.


그 도장으로

2025년 새해에도 어떤 일에 계약서를 '또' 찍게 되었다.


아직 모르겠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도장의 효험일지.

나의 운명일지.

나의 선택일지.


물론 선택은 한 것들이 있다.

술장사는 하지 않고 있고, 참모가 아닌 쪼그만 사업 대표자가 되었고, 오토바이 대신 사륜구동을 타고 다닌다.


그래도

도장 때문일까?

그렇다면 도장 만들어주신 할아버지에게 감사. 감사.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감사하고..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래 사진은 영화 <그렘린>의 한 장면. 1984년 영화이다. 사진 출처는 워너브러더즈 홈페이지

(https://www.warnerbros.com/movies/gremlins#gallery)

gremlins.png 영화 그렘린의 차이나타운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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