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터렐라 Jan 02. 2019

“¿A dónde va?" (어디로 가세요?)

온두라스, 촐루테카(Choluteca)

지독히도 더웠던 중미, 여행을 하리라곤 상상도 해 본 적 없었던 생소한 나라 온두라스의 한 복판, 체감 온도로는 족히 40'C는 되는 듯한 더위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온두라스의 '촐루테카'라는 도시로 향하는 길. 더위에 지쳐 있다 우연히 만난 주유소 편의점에서 목이 타는 갈증에 콸콸 부어대듯 물을 마시는 중이었다. 창가의 테이블에 앉아 넋을 놓고 다들 물과 음료수만 들이켜는데 갑자기 명실 언니가 한마디 툭 던졌다.


“¿Señor guapo, A dónde va? (멋진 아저씨, 어디로 가세요?)”

“엥?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

“저기 밖에 아저씨. 가서 한 번 물어볼까? 태워달라고?”

“우와앙. 진짜 누가 우리 좀 태워서 도시까지 데려다주면 좋겠다.”

“그치. 근데 정말 가서 물어볼까?” 

"진짜로? 언니가 물어본다고?"


온두라스, 촐루테카로 향하던 길


언니가 가리키는 손을 따라 밖을 보니 픽업트럭을 몰고 와 주유를 하고 있는 아저씨가 있었다. 라이딩 중 길바닥에 앉아 쉴 때, 지나가는 큰 차를 보며 농담 삼아하던 말이 바로 ‘태워달라고 하자! 저 차에 타자! 난 저 차가 마음에 들어!!’등이었다. 실제로 부탁할 것은 아니지만 그냥 웃자고 하는 말. 자전거를 타다 힘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깔깔대는 것이 네 명의 일과였다. 헛소리를 하며 웃어대는 것도 자전거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였으니까. 



우리는 레디고 부부(광현 오빠, 명실 언니)를 캐나다에서 처음 만났다. 캐나다 록키산맥을 자전거로 넘겠노라 마음먹었을 즈음, 레디고 부부도 때마침 거기에 있었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생판 남이었지만, 낯선 타국에서 만난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같이 록키산맥을 달렸다. 그리고 지금 남미로 가는 길목, 중미는 꽤 위험할 수 있다는 말에 멕시코부터 코스타리카까지 함께 달려가는 중이었다.


캐나다 록키산맥에서. 나, 남편, 광현오빠, 명실언니


넷 모두 성격이 매우 달랐다. 나는 낯을 가리며 새로운 관계를 어려워하고, 남편은 매사에 활달하고 긍정적이다. 광현 오빠는 당당하고 세심하지만 분명했고, 명실 언니는 배려심이 많고 순했다. 자전거 여행이 마냥 즐겁고 쉽지만은 않으므로 여행 내내 서로의 성격을 존중하며 맞춰갔고, 그래서 각자 하는 역할이 다 달랐다. 특히나, 낯선 사람과도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건 주로 남편과 광현 오빠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언니가 직접 나서 히치하이킹을 부탁한다고 했을 때는 더욱 의외였다. 우리와 함께 24시간을 붙어 있어도, 언니는 스스로 원하는 것을 먼저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나머지 셋의 말을 먼저 들어주고, 본인이 힘들어도 상대방의 기분을 먼저 살펴주는 언니였다. 그런 언니가,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저 온두라스의 아저씨에게 우리를 가까운 도시까지 태워달라는 부탁을 하겠다고 한다. 장난으로 매일같이 외쳐대던 ‘구아뽀세뇰, 아돈데바?’였지만 오늘의 언니는 분명했다. 


나머지 세명 다 회의적이었다. 짧은 스페인어를 알아듣겠냐는 언어의 문제부터, 우리가 가려는 방향으로 가는지도 모르겠고, 온두라스에서 아무 차에나 덥석 타는 것이 그리 안전한 일은 아니니까. 물론 덥고 힘들었지만, 오늘 밤 어디에서 자게 될 지도 불분명했지만, 역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건 여전히 무서운 일이었으니까. 우리가 이런저런 생각을 말하는 동안 언니는 벌떡 일어나,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진짜 부탁을 하려고!?’ 생각하며 지켜만 보던 우리를 뒤로 하고 언니는 상냥하게 웃으며 아저씨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대화를 시작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도 없이 몇 분인가 지나자, 언니는 우리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며 오라고 손짓했다. 아저씨가 우리를 태워주기로 했다는 의미였다. 


남편, 자전거 싣는 중


회의적이던 셋은 어디 가고, 언니보다 우리가 더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자전거에서 패니어를 분리하고, 작아 보이던 짐칸에 자전거 네 대와 20개가 넘는 패니어를 실었다.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되지도 않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너무 더웠네, 목이 말랐네, 힘이 들었네’ 하며 대화를 했다. 평소에 보기도 힘든 동양인이, 자전거를 끌고 와 여행을 하니 아저씨도 신기했는지 우리와 대화를 이어갔다. 가는 길에는 일부러 마을 안으로 들어가 바다를 보여주고, 본인이 아는 저렴한 호텔을 소개해주며 그 앞까지 친절하게 데려다주었다. 처음 우리의 걱정이 무색하게, 운이 좋게도 선한 사람을 만나 또 한 번 새로운 경험을 얻었다. 차에 자전거를 실은 덕분에 조금 더 편하게 갔던 길, 우리 모두는 언니의 작은 용기에 환호성으로, 박수로, 그리고 진심으로 응원을 보냈다. 



50원 짜리 봉지물. 이마에 올려 녹인 후 마시면 꿀맛!


호텔 침대에 누워 방금 슈퍼에서 사 온 얼린 봉지 물을 이마에 얹었다. 세상에, 이렇게 시원하다니! 낮에 겨우 겨우 견뎌내던 더위는 어느새 잊고 지금은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언니 덕분에 편하게 왔고, 또 우리를 태워 준 아저씨 덕분에 저렴하고도 좋은 호텔에 누워 에어컨 바람을 즐기고 있다. 헤헷. 오늘은 정말 언니가 최고다. 엄청 멋있었다 언니!! :)

이전 09화 로레알 로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