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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Nov 26. 2016

실패에 유용한 옛이야기 세 가지

- 알랭 드 보통, <불안> 中 필사

 사회적 위계에서 낮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물질적 관점에서 보자면 즐겁기 어려운 노릇이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가난이 자존심에 미치는 영향은 공동체가 가난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 

 

 예수가 전도를 시작한 서기 약 30년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서양 사회에서 가장 낮은 지위에 처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미에 대하여 세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 -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 책임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가 크다. 


 서양에서 중세나 근대 이전에 살던 사람에게 사회가 부자와 빈자로 농민과 귀족으로 나뉘는 기초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 질문은 아주 이상하게 들렸을 것이다. 신이 그렇게 나누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계급 - 농민, 성직자, 귀족-으로 이루어진 계급구조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더불어 이 세 계급이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가장 가난한 계급의 가치도 높게 평가되었다. 


 엔셤 수도원장 앨프릭은 <<대화집>>에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원은 단연 농부라면서, 귀족이나 성직자 없이는 살아갈 수 있지만 먹을 것을 대주는 농부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달았다. 




두 번째 이야기 - 낮은 지위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볼 때 부나 가난은 도덕적 가치를 정확히 말해주는 척도가 아니다. 


 기독교가 돈에 관한 중립적 입장으로부터 벗어난다 해도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쪽이었다. 기독교의 논리에서 모든 선의 원천은 자신이 신에게 의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신의 은혜 없이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도 있다는 믿음을 부추기는 모든 것은 악이며, 따라서 돈은 그것이 제공하는 세속적인 쾌락과 자유의 느낌 때문에 수상쩍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이야기 - 부자는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여 부를 쌓았다. 


 대략 1754년부터 1989년 사이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 이야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자들이 도둑질을 하는 부패한 사람들이며, 미덕과 재능보다는 약탈과 기만을 통해 특권을 얻었다고 가르쳤다. 나아가서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재능과 의욕이 있어도 개인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선할 수 없도록 특권층이 사회를 조작해놓았다는 것이다. 

 

 장-자크 루소는 최초로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권력자들이 처음부터 강탈로 자신의 위치를 차지하고 유지해왔다고 주장했다. "처음으로 문명사회를 세운 사람들은 땅에 울타리를 친 다음 이게 내 땅이야 하는 생각을 했던 사람들, 또 다른 사람들이 순진하게 그 말을 믿어준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만일 누군가 그 말뚝을 뽑아버리거나 도랑을 메우고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쳤다면 인류는 수많은 범죄와 전쟁과 살인, 엄청난 비극과 공포를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 사기꾼의 말을 듣지 마라. 땅의 열매가 모든 사람의 소유이고 땅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우리는 파멸할 것이다!'"(<인간 불평등 기원론>(1754))


 100년 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는 본래부터 착취의 역학이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고용주는 노동자의 생산물을 팔아 얻는 돈보다 싼 값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며, 그 차액을 "이윤"으로 자기 호주머니에 챙기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언론에서는 이런 이윤을 고용주의 "모험"과 "경영"에 대한 보답이라고 찬양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런 말이 도둑질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서기 30년부터 1989년까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했다. 물론 이런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 가장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그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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