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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Dec 20. 2016

가을의 전설

@ High Park.Toronto

어제, 오늘 그리고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이곳 사스카츄완은 영하 30도의 아침을 맞는다.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하고 북극에서 불어 내리는 블리져드에 살을 에이게 된다. 호텔의 다섯개 굴뚝에서는 여덟개가 넘는 보일러에서 나오는 뽀얀 증기가 마구 피어 오르고 아침 저녁으로 중무장을 하고는 눈 삽질을 해야 하는 본격적 겨울이 왔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얼추 끝냈고 레스토랑엔 이제 크리스마스 캐롤이 흐르게 했다. 겨울을 겨울답게, 성탄절을 성탄절 답게 맞이하고 싶은 이들에겐 이곳은 가히 최고의 겨울 왕국이다. 한편으로 짧지만 아주 이뻤던 가을,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서 아주 짧게 스쳤지만 긴 추억을 간직하게 해준 이들이 잠시 그립기도 한 계절이 왔다. 토론토 시절 하이파크 에서 만난 가을이 떠오른다.

많은 잎들이 아직 그 화려했던 여름을 기억하고 싶어했고..

더 많은 수의 잎들은 이미 그들의 전설을 뒤로 한 채 포근한 어머니 대지의 품에 내려 앉아 있었다.

또 다른 모습의 가을이 온거다.

10대의 가을로 시작해, 20대의 가을, 30대의 가을, 40대의 가을, 그리고 50대의 가을.. 참 많은 가을과 함께 한다. 어느 해 가을도 아름답지 않은적이 없었지만 그 가을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은 항상 가을처럼 풍성하고 맑을 수만은 없었다. 여름의 연장으로써의 화려한 가을도 있었고, 겨울의 전조로서의 메마른 가을도 있었고 황금 들판에 노을 빛이 더해지면 생명의 벼 향기에 취해 목청껏 찬가를 부르기도 했고 가을비 속 회색빛 도시를 헤매며 괜한 분기와 서러움에 독주에 몸을 팔아 영혼을 날려 보내기도 했다.

이제 아무도 이 아름다웠던 個個 잎사귀들을 기억해 내지는 못하겠지만 하늘의 별많큼 많았던 이들 잎사귀들 전체가 어우러져 다양함과 풍성함의 조화로 가득했던 숲의 기억은 가을의 전설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한두해 지나고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는 수많은 잔나무들 처럼, 인간이 이루는 사회적 생태계 에서도 어 세대 어렵게 살다 그 자손의 맥이 끊어져 기억해주거나 이어갈 그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있겠고, 자손을 유지하지 않은 채 한 인생 맹렬하게 살다 가버리는 일년생 풀같은 인생도 있겠다. 숲을 형성하는 모든 구성체들의 생태적 기능과 균형을 생각해 볼때 한두 줄기로 자라나는 잡풀이라해도 수많은 잎을 가진 거대한 고목에 비결코 무시당할 수 없는 생태적 자리매김이 있을 것인데, 인간들의 숲에서는 법, 관습, 이성과 양심등의 제도적, 논리적, 물리적, 도덕적 가치로 구속되지 않고서는 평화적 공존의 길을 제 스스로 찾아 가기가 참 힘든 것 같다. 인간이 제대로 德을 갖춘 진정 뛰어난 선택받은 종이라면 태계 이웃들에게서 배우며 이끌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서로가 오래도록 번영을 누릴 방도를 찾을 것인데  주가 너무 많아 탈인가, 인간들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어떡하랴, 種 으로서의 運命이 그러하다면 그럴밖에.
수만 수억년 동안 지구 생태계의 선한 이웃으로 수많은 다양한 혜택을 이웃 종들에게 베풀어 오고 있는 나무를 비롯한 각종 다양한 식물군 조차도 인간의 출현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그 터전을 잃어 간다. 인류의 미래에 희망은 있는 것일까. 과학은 갈때까지 가는 거다.고삐 풀린 망아지다. 끊임없는 탐구를 통한 새로운 발견에 목마른, 머리좋은 인간들의 통제될 수 없는 각축장이다. ?? 베품과 사랑, 共同善은 자신들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인간 群에 한한다. 그 테두리 안에서 또 교리란 이름으로 또 나누어져 끝없는 싸움이 전개된다. 수많은 종교 권력의 부침이 거듭되는 가운데 인류의 희망을 제시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세력 유지 및 확장에 이미 충분히 바쁘다. 또 다른 형태의 이해되기 어려운 공동체일 뿐이다. 이데올로기? 이젠 헌책방이나 박물관에서나 찾아보는 정도다. 어제 스위스의 유럽이론물리연구소 CERN에서 작은 규모의 빅뱅을 실현시켰다. 빅뱅의 원리를 파악한다고, 우주 기원의 메카니즘이 낱낱히 밝혀 진다고 인류의 밝은 미래가 담보될 수 있을까. 올해의 보도 사진으로 꼽힌 사진들 중 하나가 있었다. 사춘기 소녀가 머리에 총을 맞고 선혈을 흘리며 엎어져 사망한 모습이었다. 쓰러져 엎드려 있는 그녀의 양 손 옆에는 세개의 소형 액자가 흩어져 있었다.  장미 꽃이 그려진, 혹은 그저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미꽃 사진 액자와 그와 비슷한 그림의 액자들.. 그녀는 아마도, 그 액자들을 자신의 초라한 방에 놓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티에 살았던 그 소녀는 지진이 일어나고 주변에 있던 수퍼 마켓이 약탈을 당할때 엉겹결에 그저 가난한 주민들 이었을 약탈자들 틈에 끼어 그 가게에 들어섰을 게다. 그리곤 그 보잘것 없는 사진 액자 몇개를 가지고 뛰어 나오다 머리에 경비원의 총을 맞고 그자리에서 즉사한다. 난 이 사진에 너무나 충격을 받았었다. 이럴 순 없어.. 이게 도데체 뭐야.. 대안 없은 마음 속 외침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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