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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Feb 16. 2017

at the cafe

@moonbean.toronto

여름.

프렌치 같아 보이는 약간의 매부리 코에 조금은 까다로울 것 같은 이곳 커피 전문점 오너 Alan 과는 내가 처음 토론토에 왔을 때부터 안면을 터왔었다. 토론토의 빈티지 명소들이 모여있는 켄싱턴 마켓에 올때면 매번 들러 에스프레소와 땅콩 비스킷등의 간단한 스낵을 즐기게 되면서 까페 Moonbean은 내 사랑방이 되어 버렸다. 넓지는 않지만 적절히 아늑하고 내외부가 함께 하 이곳의 입체적인 공간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잠시 졸고 있는 토론토대 학생들을 보는게 좋았고 조용하고 젊잖은 손님들 속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사진을 정리하는 일이 내 일상의 작은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되었었다.

카페의 정원 패티오 공간에서 매번 즐길 수 있는 토론토의 아름다운 하늘과 태양, 그리고 케익 부스러기가 좋아 날아드는 pet 같은 참새들도 좋았고 한달에 한번씩 파트타임 큐레이터에 의해 바뀌는 캐쥬얼한 전시공간도 좋았다.

사실 커피 맛이 무슨 큰 대수랴.. 미식가 혹은 음식 호사가가 아닌 나 같은 사람에겐 커피는 그 자체 보다는 사교적 음료일 따름이다. 커피를 내게 지어 주거나 판매하는 '사람', 커피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 마음에 들 경우 그 커피는 그 만큼 맛있게 느끼게 될 뿐이다. 이곳을 자주 찾게되는 이유 역시 쥔장이 맘에 들어서이고 에스프레소 역시 식후 소화를 돕는듯 하여 즐길뿐이다.

오늘, 에스프레소 더블을 마시며 공간에 가득한 커피 향기나름 열심히 분별해 가며 전시되어 있는 유화물들을 즐기고 있는데 우리 매부리코 사장이 커피가 우려지고 있는 큰 캡슐을 들고 와서는 맛을 보란다.
.. 커피빈이 하와이에서 막 도착해서 지금 막 roasting 했으니까 3분 정도 후에 맛을 봐.
... 오, 탱큐!

스카치로 말하자면 21년 산 정도라 할까. 너무 부드러워 독주 애주가라면 너무 싱겁게 느껴질 정도로 입안에서 부드러운 향취로 넘어갔다. 그리고 아직 익지 않은 파란 커피 열매가 연상되면서 약간의 풀맛같은 fresh한 맛이 느껴졌는데, 이제껏 맛 보지 못했던 커피의 새로운 맛과 향기가 입안에 가득했다. 10여분이 지난 다음 마신 두번째 잔에서는 아주 부드러운 에스프레소의 맛이 느껴졌다. 두텁고 진하지만 아주 부드러운. 잠시 후 돌아온 사장에게 말했다.
.. 맛이 아주 독특하네. 맛있어! 근데 후레쉬한 풀 맛도 나는 것 같은데.
.. 아하, 원래 한 10시간 정도 숙후 마셔야 하는데, 로스팅 후 바로 마셔서 그런거지. 
.. 그렇군. 좌간 맛있어.

고급 커피는 블루 마운튼 정도 밖에 모르는 난 사장에게 물었다.
.. 근데 블루 마운튼 보다 맛있고 고급스런 커피가 어떤게 있지?
.. 지금 당신이 마시고 있는 하와이안이야.
.. 오, 그래?어쩐지 맛이 좀 귀족 스럽더라니..

이곳에서 내 사진 전시회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사장은 자기가 고용한 큐레이터 친구에게 연락하라 한다. 다음 주엔 사진을 몇점 가지고 와 놓고 가야 겠군. 그래 난 이 공간이 마음에 들어.

에스프레소를 내가 처음 맛본건 아주 아주 오래 전이다. 내가 다니던 회사 hp에서 내가 속한 컨설팅 사업본부는 캘리포니아 마운튼 뷰에 캠퍼스가 위치하고 있었고 우린 거의 매달 그곳에서 전략 회의를 하곤 했는데, 독일인 월터 맹겔은 유럽을 관장하던 멋진 동료였다. 글로벌 팀들과 난 언제나 스포츠 형 머리를 하는 월터를 독일 병정이라 놀라곤 했는데, 어느날 회의가 끝나고 communication dinner 가 있기전 서너 시간의 짬이 있었고, 월터와 난 뭔가를 사기위해 스탠포드 몰로 왔었다. 그때 우리의 차가 주차된 곳 옆에 위치한 커피 전문점에서 월터에 의해 거의 강제로 에스프레소를 마시게 된거다. 에스프레소가 너무 진하고 쓴맛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카푸치노나 아메리카노 정도의 커피만 마시던 내게 월터는 에스프레소와 피넛 버터 쿠키를 직접 사서 내게 권했고, 그 쓰지만 묘한 맛과 향취의 액체는 그 이후 내가 선호하는 커피가 되어 버렸다. 에스프레소와 함께 하는 멋진 독일 사나이 월터와의 추억과 함께..


가을.

가을을 맞이하는 나만의 작은 소풍이었다.

오랫만에 들른 켄싱턴 시장. 내가 좋아하는 엑자일(Exile) 옷가게에서 엷은 아쿠아 블루 색34/32 리바이스 골덴 청바지를 사입고 나서, 언제고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사람들이 어깨를 좁혀야만 하는 곳이라 아직 들어가 보지 않았던 그 이름모를 술집에도 오늘은 편안히 들어가 앉아, 새롭게 사귄 캐나다 맥주를 마시며 평화롭게 좌우로 지나 다니는 사람 구경도 하고.. 내 휴일의 기본적 휴식공간인 영-던다스 광장 주변으로 다시 돌아 가기 커피 및 차와 관련된 다양하고 창조적인 음료들의 맛과 역사를 자랑하는 moonbean 들러 쥔장 Alan에게 눈 인사도 하고 커피 관련 문의도 하고.. 에스프레소 더블을 시켰다가 트리플로 바꿔서굳이 제대로 된 테이블들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가서 까페들어서는 몇개 안되는 계단에 앉기로 했다. 그 세단의 나무 계단이 괜히 편해 보였다. 테이블을 마다하고 계단에 앉으려는 날 사람들이 의아하게 쳐다봤지만 난 여기가 더 편한 걸.

사실 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기 보다는 자유로움을 마시고 있었던 거다. 이때만해도 캐나다에 정착한지 오래지 않았던터라서 나이(age)나 그에 따르는 복장, 행동거지 등등 내가 살아왔던 한국에서의 통념적 압박감을 훌훌 벗어버리고 내 마음이 가는데로, 내가 앉고 싶은데로, 내가 바라 보고 싶은데로.. 맘껏 푸른 가을 하늘을 마시고 있었던거다.


그래 천천히 그저 편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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