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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Toronto May 02. 2020

죽기로 싸우기

fauda@netflix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넓게는 아랍민족들과 유대민족 간의 오랜 사투에 대한 상세함을 이 걸작 미니 시리즈를 대하기 전에는 난 잘 몰랐다. 수차에 걸친 중동전과 그 유명했던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전선 의장, 헤즈볼라,  그리고 근래 외신을 통해 끊이지 않고 전해지는 하마스의 로킷 공격, 그에 따라 이어지는 이스라엘 군의 보복 폭격등의 내용 말고는. 하지만 이 전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상적이고 비극적인 것이었다. by the way, 북미에 살고 있는 내가 중동의 피의 역사를 꼭 알아야 하나?아랍어나 히브리어는 단 한 글자도 읽거나 알아 듣지 못하는 내가 빠르게 사라지는 영어 자막을 눈이 쓰릴 정도로 스캔해 가며 이런 연속극을 꼭 봐야 하나?? 시리즈 초반부를 보며 내게 떠오른 의문들 이었다. 하지만 내가 극을 보며 비통해 하거나 감동하거나, 우울해 하고, 다행스럽게 안도했던 것은 중동이라는 영역에서 국지적으로 벌어지는 비극적 에피소드들 그 자체가 아니였다. 내게 의미가 있었던 것은 지구상 어느 곳에 살던 인간들이 가지는 공동선, 애국, 애족, 가족애, 명분, 헌신, 우정, 공포, 분노, 동정, 회한, 극강의 동료애 등등의 인간의 보편적 집단 가치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개개 인간의 깊은 내면을 표현하는 추상체들에 대한 보다 복잡하고 정교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고 다시 정의 내리게 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복수를 위한 비통한 긴장감 가득히 치뤄지는 장례식이나, 떠들썩한 행복감과 축하로 시작해 참혹함으로 끝나 버리는 웨딩 신들은 최고의 영화 대부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 시리즈 정말 잘 만들었다. 전투 신들은 블랙 호크 다운과 견줄 정도다. 스토리 전개의 속도감과 에피소드의 다양함은 넷플릭스 시리즈의 또 다른 걸작 Narcos를 무색하게 한다.

회유, 협박, 감시, 감청, 고문, 배신, 테러, 가족애, 조국애, 복수, 그리고 족벌적, 종교적 도그마는 내가 상상할수 있는 범주를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투쟁의 선을 넘는 우정과 사랑까지도 목숨을 걸어야만 겨우 가능하다. 성서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광활하고 척박하지만 고요했던 그곳의 인간들은 같은 신을 다르게 받아 들이며 오늘도 극한의 투쟁에 임한다. 피에는 피로.. blood for blood. 그들을 이해할 방도는 내게 없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이 걸출한 이스라엘 미니 시리즈에 등장하는 모든 연기자들의 뛰어난 연기력이다. 아마도 그들이 연기하는 역할 모두가 그들의 일상에 다름 아니기 때문 아닐까. 고성능 드론과 위성을 위시한 온갖 첨단 인텔 파워를 동원하는 이스라엘 방위군과 그에 맞서 골목안 코흘리게 아이들에게 까지도 스며든 아랍계들의 휴민트 체계가 전개되면서  사실감과 박진감, 대비감 역시 극을 치닫는다.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광기와 비극을 꿈에서나 상상해 봤을까 싶다. 죽음을 두려워 않는 인간 집단들이 벌이는 끝없는 광기어린 반목은 어느 천재 문학가도 상상해 내기 힘듦을 본다.

rotten tomatoes 평점 무려 100점. 인류 투쟁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 이라면 고증을 위한 위크샵을 해 가면서까지 이 시리즈를 씹어 소화해야 할것 같다. 과몰입 주의! 시즌 1.1을 보기 시작하면 몇날 밤을 세워 단숨에 시즌 3.12를 끝내고 나서는 시즌 4가 언제 release 되려나 구글링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거임. 소위 K-Drama 에 식상한 이들에겐 더욱 그러함. 전 세계에 포진된 파우다 팬덤에 나도 이제 들어갔다. 강력한 주연 이자 시리즈 전체를 써갈겨 나간 작가이기도 한 Lior Raz 는 남자인 내가 봐도 치명적 매력의 진짜 사나이다.

이스라엘을 수년간 연구 협력차 드나들었던 내 절친 이 박사는 이들의 이런 삶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고개를 저었었다. 검문이 일상화된 사회 였고, 사이렌이 울리면 그 뜨거운 도시의 모든 이들이 방독면을 즉시 착용하곤 했었다고도 했다. 마침 이글을 보고 친구가 오랫만에 보내온 이멜에 따르면 우리 이 박사가 체류했을 당시 2차 걸프전이 터졌었고, 시장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그리고 심지어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에서도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여 언급한 것은, 그러한 폭력과 테러의 기억 보다는 이스라엘 측 연구원들과 맺어져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끈끈하고 따뜻한 인정미 라고 했다. 전쟁과 테러로 점철되어 오는 이스라엘과 역시 외세의 침략이 잦아 투쟁의 역사가 오랜 한국은 민족성적 유사성이 많아 두 나라를 대표하는 과학자들의 유대감 역시 매우 컸었으리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울렸다.


Stay safe gu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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