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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May 24. 2020

Peter in Wonderland

falling down the rabbit hole@the river

회사 시절 하루종일 회의를 하다보면 적어도 서너번 나오는 표현이 있었다. 우리 지금 rabbit hole로 들어가고 있어, 그 topic은 우릴 rabbit hole로 빠지게 할걸. 그거 Rabbit hole 이야. 주제나 맥락에서 벗어나 마구 토끼 굴속으로 빠져들어가 원더랜드의 엘리스처럼 신나게 혹은 모험스럽게 자기만의 세상에서 헤메는 상황을 표현하는 영어다. 주로 brainstroming 시 우린 rabbit hole에 잘 빠지곤 했다. '우리'는 세계 각 나라에서 모인 director 레벨의 최소 master degree 이상을 가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 이었음에도 캘리포니아 마운튼뷰의 회의실에 갇혀 종종 그 토끼 굴속을 헤메곤 했던 거다.

오늘 난 낚시라는 subject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늘과 구름, 바람과 비가 선사하는 파노라믹 래빗 홀에 빠져들어 나만의 원더랜드 속을 헤맸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바람이 불었다. 거대한 하늘은 열리거나 닫히거나를 반복했고 그 사이엔 햇살이 있었다.

멋진 검은 구름이 몰려 왔다.

거의 격리 생활이라고 해도 무방할 이곳에서의 호젓한 삶은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는 대도시에서의 삶과 대척을 이룬다. 전인류의 삶의 형태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있는 바이러스는 이곳의 인간들에겐 별 힘을 쓰지 못한다. 빠른 전파를 통해 증식을 계속해야할 대상 인간들이 충분히 많이 살고 있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대륙의 저편에서 비가 병풍처럼 나렸다. 중력과 바람의 결을 따라..

오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리적 서사의 집적체인 도시라는 entity는 창궐한 역병의 시기를 거쳐가면서 이제 어떠한 모습으로 변모할 것인가. 내가 여행했었던 그 많은 도시들을 빛나게 하고 있었건 것은 그곳에 상주하거나 방문하던 사람들 그 자체였다. 크고 작은 비지니스들을 운영하는 주민들은 수많은 방문객들과 함께 활력이 넘쳤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이어가고 있었다. 오랜 세월 그러했던 인간들간의 소통과 교류가 통상, 외교, 관광, 그리고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져 왔고 그 족적이 도시를 이루어 왔다. 하지만 이제 역병의 기세가 수그러든다 해도 소위 distancing 은 new norm 으로 자리 잡을게 분명한것 같다. 다른 체제간의 급격한 패권 경쟁에 따르는 이데올로기적 거리두기, 국가 블록 간의 외교, 경제적 거리두기, 국가내, 공동체 내에서의 사회적 거리두기, 그리고 심지어 친구나 가족들간의 거리두기 까지, 앞으로는 인간 집단 간, 개인간의 interaction 을 최소화 시키는 방향으로 경제 사회활동이 이루어질것이며 그에 따르는 기술 혁신이 선행되거나 뒷받침 될것이다. 꼬리를 무는 생각은 다가올 새로운 경제사회 질서와 규범에 대한 기대보다는 냉담한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더욱 더 가깝게 모여 살아감으로써 극대화되곤 했던 인간들간의 물리적 나눔의 가치는 이제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인지. 빈부의 격차는 그 거리가 더욱 멀어질 것이고, 개인에 대한 사찰과 감시는 공익의 명분아래 빈번해질 것이고 국가나 자치 권력의 비대화는 어쩔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 질것이다. 철학적 인간, 구도적 인간, 문학적 인간등 인문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도들은 점점 더 시들해 지며 old school적 유물로 치부될지 모른다. 기쁜일이 있을때나 슬픈일이 있을때, 그리고 낭패를 당해 위로가 필요할때 숱하게 나눴던 이곳 캐나다 친구들과의 허그(hug)는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악수를 유난히 좋아했던 이곳 원주민 친구들과도 그저 멀찍히 서서 고개만 까딱 하는것으로 대신해야 할것이다. 우울해짐은 어쩔수 없다.

약간의 소나기 후의 뜨거운 햇살과 희디흰 구름은 날 어린 소년 시절로 되돌아 가게 했다.

어린 시절의 햇살은 언제나 따사로웠다. 찬란한 비늘을 번쩍이던 아름다운 피라미들은 최고의 친구들 이었다. 이곳에서 난 그 개구장이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축복이랄밖에..

또다시 검은 구름이 몰려왔다.

난 잠시 문명속으로 피신했다. 차안에서 phantom of opera의 가락을 들었다.

잠시의 회의를 마치고 비가 부슬거리던 비엔나 중심의 밤길을 노상 전차 레일을 몇번이나 건너가며 산책을 했을때, 오페라의 유령 간판이 걸린 고색창연한 건물이 있었다. 비엔나의 오페라 히우스 였다.

창공의 변화무쌍함에 괜히 벅찬 감동을 느꼈다.

도대체 이렇게 깊은 스카이 블루를 가진 혹성이 지구말고 또 존재할수 있을까? 우주가 아무리 광대무변하다 해도..

낚시대 끝에 방울을 달고 나서 부터는 난 맘껏 주변 풍광을 즐길수 있다. 친구 짐이 올해 씨뿌리기를 마치면 강따라 내려가는 다운스트림 카누잉을 같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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