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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Nov 20. 2020

겨울 호수.. 장 그르니에의 '섬'

lakeshore @ lake Ontario

벌써 또 한주를 마감하며 와인 한잔을 기울이고 있다. Chateau de la Gardine 2010 은 정말 맛있었다.

바다 많큼 넓은 온타리오 호수의 겨울은 다분히 미학적이고 철학적인데 겨울인 만큼 매우 實存的이기도 하다.  삭풍이 몰아치는 아무도 없는 겨울 해변가(사실은 호숫가) 신선하고 독특한 공간 속에서 천천히 걷는 것 그 자체가 실존적 자아를 바라보게 한다. 내가 살아서 걷고 있음이, 겨울의 칼바람을 거슬러 한 걸음씩 옮기며 폐부 깊숙히 숨을 들이 쉴수 있는 것이, 목적한 곳 없이 발걸음을 옮기며 그 무게를 오롯이 느껴보는 것이.. 깨끗한 수평선이 옅은 노을로 물들어가는 초 저녁, 낮은 구름이 가득 몰려오는 가운데 갈매기들은 불안한 날개 짓으로 밤을 맞을 준비를 한다.

The Artic wind blew everything away so I had nothing left in my mind. 

It was amazing to see that the ice wall had been being formed at the beach. It looked like I was somewhere in Artic.

오래 전 선물로 받은 책 '섬'이 생각났다.


1933년 출간된 장 그르니에의 섬(Les Îles)에 너무 감동받아 까뮈는 그의 첫 작품  '안과 겉(L'enverse et l'endroit)' 을 그의 스승이었던 그르니에 에게 헌정한다. 그르니에의 제자이자 소울 메이트 였던 까뮈는 '섬'을 매우 사랑했다.
80년대 초 나의 대학시절, 실존적 허무주의는 당시 한국의 폭압적 정치적 시대상에 비춰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 사조였는데 너무나 진지해 오히려 담백하게 다가왔던 알베르 까뮈의 작품들을 난 그의 숨소리 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이 했었다.
하지만 그르니에의 ''을 읽는 동안은 그저 마음이 편안했던 것 같다. 따사롭고 나른한, 그리 진하지 않은 묽은 커피 향을 맡으며 다리와 허리를 쭉 펴고 부드러운 햇살을 즐기는 심정, 그런 느낌으로 읽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같았다면 한단어 한단어, 한 문장 한 문장, 우적 우적 씹어 먹으며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내용들을 가볍고 경쾌하기 까지 할 정도로 잘 넘어 갔던 것 같다. 내 나이와 연륜이 날 닳고 무뎌지게 한 탓이었겠다.


사제 지간으로 만나 서로를 흠모한 장 그르니에와 까뮈는 이 후 각자의 이데올로기적 노선 차이를 분명히 가지며 서로의 세계를 지향했는데, 그르니에는 자뭇 道家적이면서 관조적, 묵상적 입장에서의 철학적 삶을 추구했다.
....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특별히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를 탄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묻자 그대로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 엉뚱한 인식이야말로 모든 인식 중에서도 참된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잊었던 친구를 만나서 깜짝 놀라듯이 어떤 낯설은 도시를 앞에 두고 깜짝 놀랄 때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다.

'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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