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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Nov 05. 2020

공간의 향기

寂光殿@月精寺

사찰을 방문할 때마다 내가 좋았던 것은 그곳 까지 오르는 길이었고 과정 이었다. 또한  공간에 들어서뭔가 위로와 휴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이었다. 그래서 사찰을 찾아 떠나는 여정 내내 마음이 푸근할수 있었것이 좋았다. 함께 할수 있었던 상쾌한 공기, 산새 소리, 물소리, 간혹 보이는 다람쥐나 원앙, 혹은 호기심 많은 밍크 같은 동물들, 비포장길, 그리고 산을 오르는 그  자체  좋았던 거다. 사찰에 들어서서는 불교 신자가 아닌 나로선 경내를 걸으며 주변 산세를 즐기거나 고찰의 layout 과 작은 정원들, 연못들, 옹달샘, 탑들, 그리고 개별 전각들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정도의 그저 관광객일 뿐이었지만.

월정사에 들렀던 이날, 하지만 난 무턱대고 석가모니불이 모셔진 이 불전주저없이 들어섰었다. 왜 그랬지는지 모르겠으나 난 평생 처음으로 신발을 벗고 불당안으로 들어서게 된거다. 예를 어떻게 갖춰야 할지, 절은 몇번이나 하는건지 전혀 몰랐기에 난 그저 목례만 하고는 부처님을 모신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었다.

어여쁜 꽃연 아래 대롱이는 흰 꼬리표들은 채광을 받아 그 원들의 간절함이 더하면서도 각적으로도 꽤 쿨했다.

부처님은 이 커다랗고 높은 천장의, 향 가득한 공간에 자리하며 인자하고 여유로우나 추상같은 그의 가르침을 말없이 설파하고 있는듯 했다.

오래된 목재에서 스며 나오는 부드러운 세월의 향기, 역사의 향기, 최소한의 인공 조명과 아름다운 창과 문에서 드리우는 자연 채광, 붉음과 초록이 화려하게 어우러지는 탱화 채색, 그리고 나 같은 불교 문외한을 긴장하게 하면서도 친절함이 가득하기도 한 기운, 이러한 조합들이 너무 좋았다.

오랜세월 신도들의 정성과 열정으로 만들어졌을 반들거리는 짙은 무채색의 wooden floor 는 감동적이기 까지 했다.

내가 불화속 수많은 면면들의 스토리를 조금이나마 알수 있었다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어렸을적 그리스로마 신화 혹은 플루타크 영웅전 등은 한국사나 한국 불교 설화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 했었다. 지금의 한국은 이미 경제, 문화, 기술적 선진국이 되었지만 내 어린 시절만 해도 서양의 모든 면을 선망하며 언젠가는 따라잡겠다고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절이었고 문화적 측면도 다르지 않않았었다. 위인전의 대부분은 서양 위인들이었고 그리스로마 신화의 찬란함에 비해 한국적 이야기들은 소박하기만 할뿐인 시절이었다. 내 나이 환갑을 넘은 이제서야 내 어린시절, 청춘 시절을 지배했던 시대적 왜곡을 자각하게 된다. 열강에 의해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지 얼마되지도 않아 전쟁으로 완전히 피폐화된 한국은 삶의 질은 고사하고 먹고 살기 조차 어려운 시기를 거쳐오지 않았던가.

종교적 측면을 넘어 한국의 문화사, 왕정사, 그리고 일반 백성들의 소소한 일상사등에 끼친 불교의 오랜 역사적 영향은 얼마나 대단했을까. 가늠하기 힘들다.

2006년 여름 적광전의 모습은 renovation 작업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듯 했는데..

봉황이 날고 용들이 꿈틀대는 천장의 조형물들은 해리 포터의 환상적 마법세계에서 막 튀어나온것 같았다.

마치 레고 블럭을 위에서 부터 아래로 거꾸로 쌓아 올린듯한 삼차원 공간에서 두마리 용들이 서로 겨루고 있었다.

불교 역사상 등장되었을 만한 초인들, 도사들, 선승들, 그리고 악귀와 도깨비들의 이야기들이 창조적 상상력과 만나 어우러 진다면 얼마나 신나고 멋진 작품들이 탄생할까. 내게 떠오르는건 서유기 밖에 없는데 사실 '신과 함께' 와 같은 불교적 상상력에 근거한 수 많은 뛰어난 작품들이 이제는 쏟아져 나와야 되지 않을까.

부처를 모신 주 불당의 두 기둥에서 긴 몸을 솟구쳐 나오는 용들의 모습에 내 꺽인 목이 아파오는것도 모른채 난 입을 한껏 벌리고선 한참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불전 내부 곳곳을 넋을 잃고 살피다가 문득 바라본 문에는 밝음이 쏟아져 들고 있었다.  강력한 환함은 날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멋지게 바랜 한지의 격자 문틈 사이로 아름다운 향나무가 보였다.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수없이 거슬러 올라가도 향나무는 언제나 저렇게 아름답게 서있었을 것인데, 수도승 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아낌과 돌봄속에 고목은 마치 갓난 아이 처럼 깨끗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 공간의 고요함과 한적함은 우아함이었고 평화로움이었다.

2020년 정월. 거의 15년의 세월이 흘렀고 노년에 접어드는 난 당연히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고스란히 한국을 떠나 있었던 세월이었다.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이라는 월정사의 공간에 들어선 난, 예전처럼 휴식에 대한 간절함이 없었고 시간적 여유조차 없어 그저 휘 둘러보고 다음 목적지로 향해야 하는 단순 관광객일 뿐이었다.

같은 공간이 전혀 다른 감흥으로 다가왔고 생소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난 2006년 내가 담아본 월정사의 곳곳을 사진으로 다시 보면서 당시의 놀라움을 겨우 재구성, 되새김질 하고 있는 것이다. I am sure that my perceptive capabilities get exponentially poorer as I am getting old.

나이가 들어서, 시간이 없어서, 겨울이라 너무 추워서.. 이제 내 변명은 수도 없이 많다. 공간의 향기는 유구한데 나는 간데 없다.

Yes I might witness myself dissolved into time or degenerated along the time so I couldn't even taste the elegance of the space anymore. S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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