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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Toronto Jan 30. 2021

눈을 감으면 문득

Wonderland@Vaughan.Ontario

저 꼭대기에 올랐을 때의 기분이 기억나니? 어렸을 적 그 흥분된 억이라니. 내가 타본 최초의 롤러코스터는 아마도 대한민국 유일의 대규모 놀이 공원이었던 어린이 대공원이었을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오래 전의 어린 추억을 쫓아 다시 가본 그 놀이 공원은 너무나 좁아 보여 놀랐지만 그건 어른이 된 내 몸이 커져 버린 탓이었다. 어릴 적의 어린이 대공원은 얼마나 넓고 신나는 것들로 가득 찼었던지. 순서를 기다리던 그 긴 줄도 설렘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오후의 햇살이 긴 그림자를 드리울 때면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또 얼마나 섭섭했던지.. 그 이후 가장 높고 거대한 규모의 롤러코스터는 대학 시절 캘리포니아 Magic Mountain에서 밤중에 타본 놈이었다. 아~악! 소리를 한참 동안이나, 아마도 10여 초 넘게 질렀는데도 계속 떨어지기만 하던 정말 무지막지하게 지어놓은 롤러코스터였다. 나중에 보니 매직 마운튼의 것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고 긴 것이었다. 이후 Anaheim 디즈니랜드에서는 긴 줄 때문에 짜증이 있는 데로 났었고, 롤러코스터가 아득히 떨어질 때는 가슴 덜컹하는 재미보다는 뭐 호주머니 물건 안 떨어지나 하는 그저 어른의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난 어린 왕자에서 나옴직한 구태의연하고 딱딱한 사고의 어른으로 변신해 버린 거였다.

오늘 고등학교 2학년(Grade 11)인 큰 아이가 친구들과 놀러 간 이곳 놀이공원으로 거의 자정 가까운 시간에 녀석의 Pick-up을 나오면서 멀리 선 본 롤러코스터의 모습에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눈을 감으면.. 그리운 날의 기억.

엊그제 캐나다의 Father's Day, 딸아이는 내가 잠들 때 아빠를 위한 곡이라며 이루마의 아름다운 곡을 연주해 주었고 난 그 곡을 들으며 잠이 들었다.

딸아이가 이번 Father's Day에 준 카드 속엔 이런 말들이 있었다. 아빠, 너무 유치원생처럼 그러지 마시길.. ^,^ 아이는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세상 풍파를 많이 겪고 나서도 아빠처럼 나이 든 어른들이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작년에 아이는 요크 대학 슐리히 MBA 대학생들과 미 동부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친선방문, 뭐 그런 거였는데 사실은 가서 그냥 놀고 온 거였다. 그 대학생 그룹엔 고등학생은 당연히 딸아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큰 아이는 고2 지만 키가 170 cm가 넘게 크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오히려 후배 같이 보였을지 모른다. 보스턴의 가장 큰 고급 몰에 서넛이 서 몰려 들어가, 온갖 비싼 드레스들을 다 입어보고 킥킥거리며 즐거워했다 한다. 대학생들이 그런 고급 옷들을 사지 못할 것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곳의 친절한 직원은 아이들이 입어 보겠다는 옷들을 드레스 룸으로 모두 가져다주었다 한다. 이 아이가 기념으로 사가지고 온 것은 어느 학교의 로고가 새겨진 따뜻한 스웨터 하나와 아주 작은 겨우 주먹 만한 곰 인형 하나다. 3불을 주고 샀다는 걸 무지 강조하는 아이의 그 곰 인형이 난 너무 마음에 들었었다. 녀석이 잠에 들려고 할 때나, 아침에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을 때 그 작은 곰 인형을 녀석의 베개 옆에 놓아두고 그 둘을 바라보는 게 난 즐겁다.


이 글은 쓴 지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네.


2024년 11월에 이 글을 다시 보니 정말 오래전 일이다. 딸아이는 토론토 공대에서 공학 석사를 하고는 여러 AI 관련 회사에서 근무하다, 서른을 넘긴 지금은 도쿄의 일본 회사에서 AI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모습이나 행동하는 면면은 고등학생 때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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