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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Feb 09. 2018

19. 내가 먹은 칼국수

LA에 두고 온 것



엘에이에 다녀왔다.

칼국수를 먹었다. 식당 이름과 달리 항아리에 담겨 나오진 않았다. 용기가 컸다. 새우도 컸고 면은 굵었다. 잘 조리한 식당 음식 맛이 났다. 종업원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말끝을 고양이 꼬리처럼 고상하게 말아 올리곤 했는데, 덕분에 묘한 익숙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변호사를 만났다. 중년을 막 지난 백인 변호사 였다. 그의 제스처와 화법은 듣는 이에게 거부할 수 없는 신뢰를 안겨 주었다. 그의 유머는 계란판 위에 자리 잡은 계란처럼 있어야 할 곳을 찾아 알맞게 자리했다. 역시 변호사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이런 능숙한 변호사도 동석한 한인 사무장 아주머니의 말에는 쩔쩔 맸다. 엘에이 한인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사무장의 말은 어수룩 하면서도 단호했다. 사무장은 타인에게 신뢰를 준다기 보다는 스스로에게 신뢰를 주입하고 있는 듯 했다.

전도하는 사람을 보았다. 한인 마트 앞에 나란히 쪼그려 앉은 미국 여고생들은 전도자의 말을 절반쯤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이 당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아주 당당했다.

미용실에 갔다. 상가 3층에 위치한 미용실은 외부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다. 이윽고 한 선생님이 차분하게 나를 인도해 오랫동안 머리를 잘라 주셨다. 나도 차분히 앉아 머리가 맘에 든다고 연신 확인해 드렸다.

친구 가족을 만났다. 전보다 더 성숙한 부모가 되어 있었고 식구는 한 명 더 늘어 있었다. 첫째는 수줍음을 아는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진중하지만 무겁지 않은 대화를 나눴고 감명을 받았다.

다음날 다시 같은 미용실에 갔다. 아내는 흑발로 염색을 했다. 공교롭게 어제 그 선생님이 염색을 해주셨다. 난 소파에서 방금 산 책을 한 장 보다 잠들었다. 선생님은 아내에게 남편이 과묵하신가 봐요 라고 했다.

우버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원래 오기로 했던 비엠더블유가 취소되고 마즈다가 왔다. 아저씨는 우리의 출신을 확인하고는 70년대 용산 미군 부대에서 일했던 본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가 참 좋았었다고. 한국 사람들 정말 성실했다고. 현재의 물질적 풍요는 이전의 정신적 유산을 앗아갔다고 했다. 아저씨의 명동에는 신청곡을 받는 음악 다방이 있었고, 밤새 함께 술마시는 넉살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자신에게 영어 과외를 받는 부잣집 청년이 있었다. 가난했지만 포기를 모르고 일했던 70년대 서울 사람들에게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은 큰 빚을 지고 있노라고 했다. 공항에 내린 우리는 함께 셀피를 찍었다.

이틀 동안 엘에이 에서 꽤 오랜 시간 잔상으로 남을 것 같은 순간을 가져왔다. 그리고 내 옷 한 벌을 호텔 방에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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