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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Feb 10. 2018

20. 인앤아웃의 고요한 밤

감자튀김을 씹으며


지난 몇 년 동안 단일 품목으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 인앤아웃 버거다. (놀랍게도 치킨이 아니다.) 

딱히 엄청 맛 있어서라기 보다는, 밥때를 놓쳤을 때에도 늦게까지 열려 있어서, 오불이 조금 넘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식사라서, 차에서 내리지 않고 혼자 야금야금 먹을 수 있어서, 퇴근하는 고속도로 출구 옆에 바싹 붙어 있어서, 계속 먹다 보면 맛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라는 구구절절한 이유가 있다. (마지막 이유 때문에, 6일 연속으로 먹기도 했다.)

여느 패스트푸드 버거가 그렇듯 세트를 시키면 감자튀김이 따라 나오는데, 인앤아웃 감자튀김은 허를 찌르는 매력이 있다. 보통 튀김이라 하면 씹었을 때 아사삭 하고 바스러지는 맛이 있어야 한다 생각하지만, 이곳 감자튀김은 엥 이게 뭐야 할 정도로 흐물흐물 하다. 따뜻하지 않았다면, 누가 튀긴지 한시간 지난 감자튀김을 내왔어 하고 버럭 할 정도로 눅눅한 구석이 있다. 맥도날드 감자튀김이 난 기름에 제대로 튀겨졌어요 하는 느낌이라면, 인앤아웃 감자튀김은 난 그냥 감자일 뿐이에요 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매가리 없는 녀석이 오가닉을 사모하는 캘리포니아 사람들에게는 적지 않은 어필을 하는 듯 하다. 감자 외에는 정말 아무 해로운 것도 넣지 않았을거야 하는 신뢰를 준다. 아무튼 나도 힘들게 씹지 않아도 되는 인앤아웃 감자튀김을 좋아한다. 드라이브 스루로 주문을 하고, 옆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직 온기가 남은 감자튀김을 차 계기판 불빛에 비춰가며 하나하나 케첩에 찍어 먹으면, 세상 걱정 없이 행복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라도 때를 놓친 허기를 채울 정도의 만족감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오늘도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버거 없이 감자튀김만 두 개 주문했다. 어두운 차 안에서 감자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감자에 집중하다 보니 감자를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생각났다. 씹는맛을 즐기는 아내는 감자라든가, 묵이라든가, 죽처럼 입 안에서 뭉개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대로 바게트 빵이라든가, 국에 든 고기라든가, 라떼 속 얼음처럼 한 번 씹어서는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나랑은 정반대다. 쇠고기 무국을 먹으면 나는 쇠고기를 남기고 아내는 무를 남긴다. 가끔은 남긴 것을 서로 먹어 주기도 하니, 경도에 대한 선호 차이가 있는 것이 꼭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목이 메여 온다. 두 개를 시킨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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