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의 점심
딩동.
눈구멍으로 내다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 쟁반에 차를 두 잔 받쳐 들고 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옆집에 사는 사람이라 했다. 우롱차를 끓였다며. 아까 아침에 테라스에 나갔을 때 눈이 마주친 분인 것 같았다. 빗소리를 들으며 남편 분과 얘기하고 계셨던 듯 했다. 여보 옆집에 아시안 애가 사는데 우롱차를 갖다주면 잘 마시겠지 하셨던 것 같다. 덕분에 옆집 아주머니도 알게 되고. 차도 맛있게 마셨다.
이게 몇 달 전 일이다. 그후로 몇번 가벼운 왕래가 있다가, 마침내 오늘 옆집 아주머니 아저씨와 밥을 먹었다. 옥상으로 올라오라고 하셨다. 올림픽 중계를 배경음 삼아 옆집 아주머니가 만들어 오신 터키 음식을 먹었다. 이치 라는 곡물과 야채를 버무린 샐러드와 중동의 향을 머금은 닭고기를 먹었다. 양념된 닭고기는 트레이더 조에서 파는 신상품이라 했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 우리 부부를 배려 하셨는지 코리안 바베큐 (양념 갈비) 도 트레이더 조에서 사오셨는데, 이건 좀 그랬다. 간장의 짠맛이 너무 진했다. 난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아내는 한국 고기도 맛있네요 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참 좋은 분들이다. 아파트에 살면서 먼저 찾아와서 인사 해주는 이웃이 없었는데, 그렇게 해주셔서 반갑고 고마웠다. 한번은 조명을 벽에 달려고 드릴로 구멍을 뚫다가 애를 먹고 있는데, 소리가 들렸는지 (거슬렸는지) 이것도 와서 손수 해결해 주셨다. 덕분에 그 빛 아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두 분은 터키와 사우디 출신으로 젊을 때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하게 되었다고 했다. 두 분 다 엔지니어링을 공부하신 듯 하고, 아저씨는 T모 회사에서 열심히, 아주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
대화는 자연스레 아저씨의 직장 얘기로 이어졌다. 아저씨는 바쁜 업무 중에도, 이 지방 엔지니어 특유의 기술에 대한 열정과 낙관으로 일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듣다 보면 작지 않은 스케일의 복잡한 일 같은데, 아저씨는 마치 된장국 끓이는 일을 설명하듯 (그럴 일은 없겠지만) 소탈하고 자연스럽게 얘기했다. 그리고 E모 사장이 의사 결정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직원들이 문제 해결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한다고,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좋다고 했다.
중동 분들 답게 식사 후 차 마시기를 권했다. 정말 맛있는 차라고 하셨다. 거부할 수 없는 신뢰감을 느꼈다. 얼그레이를 한 잔 마시고, 맛이 있어 주전자에 남은 것 까지 마저 마셨다. 아주머니는 어느새 자스민 차를 끓이고 계셨다. 얼떨결에 자스민 차도 받아 마셨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너네가 가져온 차가 뭐였더라 이번엔 그걸 마셔볼까 하셨다. 그래서 홍차를 마셨다. 속이 말끔해 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쓰고 싶었던 내용은 '이 동네는 엔지니어로 살기는 참 좋은 것 같은데,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왠지 모를 어색함이 있다' 라는 얘기 였는데,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리고 실컷 밥 잘 얻어먹고 와서 괜한 얘기 꺼내는 것이 두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본론은 생략해야 겠다.
다음엔 우리가 꼭 대접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