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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Feb 23. 2018

28. 귀여움에 대하여


“오빠 이거 안 찍을거야?” 이른 아침 아직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깨우며 아내가 물었다. 손에는 도마가, 그 위에는 브뤼셀 스프라우트 몇 개가 올려져 있었다. 방금 막 씻었는지 이슬 맞은 양배추 마냥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채소 사진을 자주 찍는 나를 위한 아내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잠이 확 깼다.

바로 일어나 아내에게 “걔네들 저기 빛 잘 드는 창문 옆 탁자에 올려줘” 라고 부탁했다. 오늘부터 며칠 동안 집을 비울 예정이라 아침에 냉장고에 있는 귀한 채소 몇몇은 먹고 떠나자고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약속을 잊지 않은 아내가 일어나자마자 브뤼셀 스프라우트 한 줌을 꺼내 씻어 놓았나 보다.

카메라를 통해 검은 도마 위에서 조용히 대기 중인 브뤼셀 스프라우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얘네 꼭 파마 한거 같지 않아?” 아내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셔터를 누르며 가볍게 웃었다. 브뤼셀 스프라우트의 헤어 스타일 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귀여운 구석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무엇이 사물을 귀엽게 만드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일단 귀여움은 대체로 생김새에서 비롯된다는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어머 방금 그 사과 향이 너무 귀엽지 않아 라든지 이거 만져봐 이 두부 촉감이 너무 귀여운 같아 라는 말은 어색한 구석이 있을 테니까 (쓰고 보니 굉장히 좋은 표현인 것 같다).

그럼 생김새의 무엇이 사물을 귀엽게 보이게  하는 걸까. 큰 것 보다는 작은 것이 귀여울 가능성이 크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지 큰 것이 귀여울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토마토 보다는 방울 토마토가 국그릇 보다는 간장 종지가 귀여울 가능성이 크다. 당신의 큼지막한 발바닥이 너무 귀여운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당신의 새끼 발가락이 작고 귀엽네요 라고 말하는 편이 상대에게 더 신뢰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동그란 것이 귀엽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귀엽다고 생각하는 캐릭터 - 보노보노 라든가 헬로키티 - 는 대체로 동그란 구석이 있다. 반면 귀여움의 반대편에 자리잡은 캐릭터 - 뭐가 있을까 아이언맨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으려나 - 는 어딘가 모난 구석이 있다.

정리해 보면 작고 동그란 사물 (혹은 생물) 은 귀여울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런 것들은 나를 해치치는 못할 거야 하는 안도감을 가져다 준다. 바퀴벌레 같은 예외만 뺀다면 말이다. 귀여움의 이면에는 얼마간의 연약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작고 동그란 대상의 약함을 끌어 안을 때 맘 속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몽글몽글한 감각이 귀여움 이다 라고 한다면 ... 음 한두명은 동의해 줄 것 같다.

그런데 귀여움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이거 봐봐 나 귀엽지” 하지 않고 관찰자가 귀엽다고 할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아무리 작고 귀여운 존재라도 스스로 귀여움을 알리려고 하는 순간 귀여움은 사라지고 만다. 브뤼셀 스프라우트 처럼 그저 잠자코 있는 것이 중요하다. 도마 위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말이다.

브뤼셀 스프라우트를 입 안으로 송송 던져 넣는다. 귀여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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