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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Feb 24. 2018

29. 남이 차려 놓은 밥상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차려준 밥 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이건 그리 쉽게 단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각자의 입맛이라는게 있기 마련이고 집마다 요리하는 방법도 제각각 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남이 차려준 밥이 내게 맛있게 느껴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령 초대를 받아 찾아간 지인의 집에서 육개장을 한 입 먹기 시작했을 때, 아 이건 좀 곤란한데 하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보통 음식을 차려주신 분이 “국이 입맛에는 좀 맞을지 모르겠어요” 라고 묻는다. 이 상냥한 물음에 아니에요 당신이 만든 육개장에 든 고기가 정말 질기네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 아마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잘 없을 것 같다. 기껏해야 아 제가 점심을 늦게 먹고 와서 조금만 먹을게요 라든가, (소신있는 사람이라면) 저는 채식주의자 입니다 반찬 위주로 먹겠습니다 정도의 답변을 할 수 있으려나.

호스트가 이런 난감한 상황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압도적으로 맛있는 요리를 준비 하거나, 아니면 월남쌈이나 샤브샤브 같이 손님이 직접 요리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메뉴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먹는 사람도 완성된 결과물에 대해 일종의 책임감을 공유하게 되므로 맛에 대한 평가에 좀더 관대해 진다 (그게 아니더라도 월남쌈과 샤브샤브는 언제나 맛있다).

친구의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호스트는 두 가지 방법 중 첫번째를 택했다. 여러가지 훌륭한 요리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닭요리가 제일 인상 깊었다. 닭도리탕과 닭갈비 그 중간쯤 되는 요리 라고 했는데, 양념이 딱 알맞게 배어있었다. 중간중간 씹히는 떡의 쫄깃함도 좋았다. 비법을 물으니 고추장 고추가루 간장 마늘 올리고당 생강을 적당히 섞으면 된다고 했다. 내가 집에 가서 하면 이 맛을 낼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식탁에 같이 앉은 아이들은 귀여웠고 귀여웠다. 이들은 고추장이 들어간 닭요리를 먹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쓰고 나니 내가 입이 짧은 게스트로 보이지만... (음 딱히 아니라고는 할 수 없으려나) 글의 요점은 오늘 저녁 식사가 굉장히 맛있었고 친구에게 고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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