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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Feb 26. 2018

30. 아내가 준 악세사리


악세사리 좋아하시는지. 나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아내는 악세사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호감은 갖고 있는 듯 하다. 악세사리 라는 것이 무게가 꽤 나가고  그립감이 좋은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개 (악세사리라는 이름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작고 가볍다. 그 중에서도 목걸이 라는 것은 길고 가늘기 까지 해서 가방에 넣고 다니다 보면 욕조 싱크에서 발견한 오래된 머리카락 처럼 엉켜 버리고 만다.

차라리 머리카락 이라면 얼굴 한번 찡그리고 집어올려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만이지만, 엉킨 목걸이는 그리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내는 외출하기 전 이 난제를 나에게 던져 주었다. 친절하게도 눈썹을 뽑을 때 쓸 것 처럼 생긴 족집게 삼종세트를 함께 내밀면서 이걸 사용하면 풀 수 있을거야 라고 했다.

가끔 사람들이 내가 이런 종류의 자잘한 손기술이 필요한 일을 잘 할거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전혀 아니다. 당장 젓가락질 하는 것만 봐도 어설프기 짝이 없고, 무엇보다 이렇게 뒤엉킨 무언가를 보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 한다. 하지만 나는 뭐라 거절할 핑계도 없고 이미 외출 준비가 끝나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아내의 요구를 수용했다.

쪽집게 하나를 집어 들고 다른 손으로 탁자에 놓은 목걸이를 요리조리 움직여 보았다. 목걸이는 고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된 쇠사슬 (괴물이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는 씬에서 등장하는 괴물의 손을 묶고 있는 것) 같은 모양으로, 셀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매듭으로 엉켜 있었다. 어디서 부터 손을 써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빙글빙글 돌려보기만 하기를 몇 분, 마침내 처음으로 공략할 만한 만만한 매듭을 하나 찾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오래 전 했던 인터뷰가 생각났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라는 질문에 나는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낙관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났다. 그 때 의외로 면접관이 끄덕끄덕 하며 넘어 갔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리 틀린 답도 아니었구나 싶었다. 매듭이 언젠가는 다 풀리겠지 믿으며 작은 매듭 하나에 집중하는 것 말고는 이 상황에서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없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사슬의 어느 부분이 어느 매듭 위로 지나가는지, 어떤 매듭을 벌리고 사슬의 어떤 부분을 통과시켜야 할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언제 이걸 다 풀 수 있을까 막막했지만, 작은 시도가 성공할 때 마다 다음 매듭을 풀 정도의 동력은 얻을 수가 있었다. 하나의 매듭을 푼다는게 또다른 매듭을 만드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러면 뭐 어때 천천히 하지 뭐 하는 생각으로 손을 계속 움직였다.

이삼십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대체 나는 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목적이 모호해 졌다.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목걸이 없는 아내의 목이 허전할 것 같아서인지, 아니면 아내에게 좀 더 나은 남편이 되기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정도 풀었으면 적어도 목을 한바퀴 휘감을 수는 있겠어 생각이 들어서 몇 개의 지엽적인 매듭은 남겨둘까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앞머리만 말리고 외출하는 정도의 찝찝함을 남길 것 같아 계속했다.

그 와중에 정말 다행인 것은 아내가 나를 전혀 재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신은 손놀림이 참 굼뜨네요 당신이 다 풀 때까지 기다리느니 차라리 목에 스카프를 하고 나가는게 낫겠어요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신기한지 애처로운지 알 수 없는 눈길로 나를 이따금 바라봐 주었다.

마침내 때가 왔다. “오빠 열한시 이십오분에 지하철이 온대.” 나에겐 이제 십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아내는 나를 기다려 줄 수 있었지만 지하철은 그럴 수가 없었다.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무거운 잠바도 벗었다. 몸을 가볍게 하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다시 하던 일을 했다. 몇번의 수작업만 하면 대업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양손 모두에 족집게를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였다. 시계는 이미 열한시 이십분을 지나고 있었다. “다음 지하철은 언제야?” 아내에게 물었다. “그 다음은 열한시 사십오분이야.” 그 말에 나는 아내에게 십여분의 추가 시간을 요청했다. 아내는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큰 숨을 한번 몰아 쉬었다. 한번의 오판으로 큰 일을 거스르지 않으려 쪽집게를 신중하게 움직였다. 곧 보게 될 감동을 머금은 아내의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의 목걸이는 군더더기 없는 한 줄이 되었다.

시계는 열한시 삼십분을 가리켰다. 아내는 내게 목걸이를 건낸지 한 시간 만에 한 줄이 된 목걸이를 목에 걸 수 있었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열한시 사십사분, 열차 도착 예정 시간 일분 전에 플랫폼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로를 뜨겁게 껴안으며 오늘의 성취를 축하했다.

일분 후 열차는 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구글이 알려줬던 열한시 사십오분 지하철은 이 역이 아니라 근처 다른 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와 나는 말없이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짧게 웃었다. 그래도 서로를 위해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고 담담히 기다려준 지난 시간의 감각은, 우리 몸 어딘가에 따뜻한 흔적으로 남아 있을 테니까.

또다른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플랫폼에서.



아내는 제가 쓰는 글이 이비에스 같다고 했습니다.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다들 교육방송 좋아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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