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이 들어간 버거가 햄버거인거 아니었어?" 아내에게 물었다. "뭐라고?..." 아내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얼마 전까지 정말 햄버거엔 햄이 들어가 있다고 믿었었다. 햄버거의 어원이 함부르크 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가장 미국적인 음식을 꼽으라면 당연히 햄버거다 (라고 믿는다). 미국인들이 배는 고픈데 밥 때를 놓쳐 애매할 때, 가벼운 맘으로 배불리 먹고 싶을 때 무얼 먹을까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햄버거다. 스테이크는 너무 거창하고 핫도그는 다소 조촐하다.
퇴근 후 아내와 나는 회사 근처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 혼자 버거를 먹을 때는 주로 인앤아웃 버거를 찾지만, 아내랑 같이 먹을 때는 이 곳에 온다. 이 가게에 들어서면 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게 밖도 미국이긴 하지만, 가게 안은 진짜 미국 같다. 반대로 말하면 이 가게 안에서는 조금 더 내가 이방인, 좋게 얘기하면 관광객 같이 느껴진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첫째는 버거를 취급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손님들이 대부분 백인이기 때문이다. 인종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두 어울려 지내는 캘리포니아 라지만, 입맛 이라는 건 좀처럼 바꾸기 힘든 민족적 특성이기에 유독 한 집단이 많이 몰리는 음식점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가끔씩 일상에서 관광객이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아내는 텍사스 아보카도 버거, 나는 김치 버거. 전에 왔을 때와 똑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지극히 미국적인 곳에 김치 버거가 다 있네 하며 반신반의 하는 맘으로 시켰는데, 맛이 괜찮아서 계속 먹게 됐다. 계란 후라이와 적당히 달콤한 고추장 소스가 어우러진, 김치 버거 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그 맛이다. 김치도 진짜 김치라서 패티와 빵 사이에서 맛의 균형을 아주 잘 잡아준다. 딱히 퓨전 메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원래 있던 오래된 메뉴 중 하나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맛이 나는 게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 보면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혹은 그 비스므레 한 것)을 접하는 경험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첫째는 두유 노 김치에 해당하는 경험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김치나 떡볶이 따위의 시뻘건 음식을 먹어 보게 되는 경험이다. 어때 맛있지 왜 그래 맛있잖아 이게 바로 한국의 맛이야 라는 다그침도 함께 들어야 한다. 과거에는 가장 보편적인 경험이었으나, 다행히도 요즘은 그 추세가 수그러 들고 있는 듯 하다. 둘째는 토푸 하우스에서 하는 경험이다. 주위에서 한국 음식 얘기를 듣고 음식점을 찾아보니 대부분 순두부 집이다. 식당 이름은 순두부 집이지만 보통 스무가지 이상의 한국 음식을 팔고, 주메뉴는 순두부 이외에도 갈비, 파전이 있다. 이 곳에서는 대개 잡채도 반찬이 아닌 엄연한 메인 메뉴이다. 공짜로 계속 리필해 주는 반찬에 깊은 감명을 받고 나온다. 셋째는 상대적으로 드물긴 하지만 바로 김치 버거를 먹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단순히 퓨전 요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혹은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가 샐러드와 야채죽을 먹는 경험이랄까. 한국 식당이 아닌 곳에서, 굳이 한국 음식인지 알 필요도 없이 그저 맛있게 먹는 경험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셋째 경험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김치 버거를 먹다 보니 예지(Yaeji) 생각이 났다. 비슷한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맥락에서 예지의 음악이 반갑다. 하우스나 힙합을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진행이 매력적이다. 조곤조곤 얘기하듯 노래하는 음색도 좋다. 여기에 드문드문 들리는 한국 가사는 멜로디와 기분 좋은 마찰을 일으킨다.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아니야 그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