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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의 Konadian Life Mar 17. 2020

캐나다에서 재판받기.

이민생활의 소소한 이야기

재판을 받다!


벌금 이야기를 하고 나서 이 먼 곳까지 와서 재판을 받아 본 것이 생각나서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공개를 하고자 한다.

운전 중 과속으로 스티커를 발부받고 정식 재판을 청구해본 경험을 설명하자면, 캐나다는 아니 앨버타주에서는 일단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교통법규 위반으로 스티커를 받는 것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한 가지는 교통경찰에게 직접 스티커를 받는 경우이고, 다른 한 가지는 과속 단속 카메라에 찍혀서 우편으로 고지서를 받는 경우가 있다. 선자는 운전자의 신원확인이 가능하기에 경찰관에게 제출된 면허증에 있는 운전자가 벌금과 함께 벌점을 받는 것이고, 후자는 카메라에 찍힌 차주에게 벌금이 고지되는 관계로 단순히 벌금만 납부하면 되는 형태이다.

이 두 가지의 경우에서 어떤 유형이건 간에 벌금 고지서를 받고 나서 '난 억울해서 정식 재판을 받고 싶다'라고 법원에 가서 Court of traffic 안에 있는 Justice of the peace 데스크에 이의를 제기하면 판사에게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재판 날짜를 잡아준다. 

앨버타주의 수도인 에드먼튼의 다운타운에 7층짜리 대규모 건물로 지어진 Law court 에는 앨버타주의 사법부가 위치해 있고, 작게는 교통법규 위반에 대한 재판을 비롯해서 수많은 재판이 진행되는데 소규모 재판조차도 통상 6개월 이상 시간이 지체가 된다.

나도 몇 차례 스티커를 받았지만 정말 억울한 경우가 있어서 스티커에 적혀있는 법원 출두 날짜에 Law court를 방문해서 재판일자를 받았는데 그날부터 7개월 후로 재판일을 잡아주는 바람에 셀폰 일정에 입력하지 않았다면 재판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갈 뻔했다.


캐나다가 여러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사는 나라인만큼 법원에 가서 정식재판을 신청할 때 판사와 정확한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통역이 필요한 경우에 해당 언어의 통역사가 필요하다고 미리 신청을 하면 통역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때 통역사는 법원에서 무료로 지원을 해 준다.


 캐나다는 각 주마다 법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정식재판을 청구해 놓고 앨버타에서 교통범칙금으로 정식재판을 받았다는 사례를 인터넷에서는 찾아봤지만 전혀 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밴쿠버에서 어느 분이 정식 재판을 받았을 때 경험을 블로그에 올려놓은 것을 찾아본 게 전부였다. 그분의 경험은 통역관을 신청했고 재판일에 법원 출두를 했으나 담당 경찰관이 참석하지 않아 기각 결정으로 벌금과 벌점을 모두 탕감받았다는 것이었다. 그 내용을 보고 나름 희망을 걸었던 것이 스티커를 발부했던 경찰관이 이의 제기한 운전자 한 명 때문에 법정까지 오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쨌든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정식 재판을 진행했었지만 결과적으로 앨버타주와 비씨주는 법이 다르고, 처리과정도 달랐다. 비씨에서는 재판 당일에 통역사가 안 나오거나 담당 경찰관이 안 나오면 재판을 취소하고 벌금도 탕감해준다는 이야기와는 다르게 앨버타에서 내가 경험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첫 재판일에 나는 나름대로 고지서를 받을 당시의 상황과 차량 위치와 속도에 대한 내용을 지도에 표시해서 그림을 준비하고, 상황 설명을 정리한 레터를 판사에게 제출해서 보여줄 생각으로 준비를 해 갔지만 통역관과 담당 경찰관이 안 나와서 6개월 후로 연기를 해준 것이 전부였고, 두 번째는 통역사는 참석을 했지만 경찰관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담당 경찰관이 안 나와서 대신 검사가 나와 통역사에게 딜을 제시했는데, 보통의 경우 내가 준비한 지도나 레터는 큰 의미가 없고, 확실한 물증인 동영상이나 제삼자의 증인이 없다면 95% 이상 패소한다면서 판사가 판결을 하면 더 이상 딜이 안되므로 검사인 자기가 제시하는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검사가 제시하는 벌금 경감과 벌점 해소를 딜로 받아들였다. 

벌점이 3점 이상이 적용되면 3년간 보험료가 감액 대상에서 제외되어 장기간 보험 가입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은 딜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검사는 내가 딜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확인하고 판사 앞에서 선서를 하게끔 했고, 판사는 온전히 나의 자의로 딜을 받아들인 것이냐고 질문을 하고 나서 판결을 했다.


벌금 고지서를 받은 지 14개월 만에 정식 재판을 받았지만 그다지 개운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먼 이국땅에서 그것도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재판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나서 어찌 되었든 교통법규 위반으로 인한 피해는 금전적인 문제만 아니라 시간적인 부분이나 정서적인 부분까지도 악영향을 주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재판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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