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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의 Konadian Life Mar 20. 2020

아이들 세상

이민생활의 소소한 이야기

아이들 세상!



아내는 요리사로 취업비자를 받아서 캐나다에 들어왔다. 나와 아이들 둘을 거느리고..

아내와 나는 처음에 해외에서 거주하는 것을 그냥 외국 여행이나 해외출장 다니던 실력의 몇 마디 영어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어찌어찌 준비를 하다가 그런 크나 큰 착각을 하고 이민이라는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

물론 지금도 그만큼 힘든 시간과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어려운 일들을 몸으로 겪고 나서 단단해지는 이민의 과정을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아내가 캐나다에서 요리사로 처음에 비자를 받아서 취업한 곳은 간단한 아침과 점심을 해결하는 샌드위치 가게여서 딱히 한식 조리사 자격을 활용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기에 배우자인 나에게 오픈 비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캐나다에 입국해서 한동안은 아이들을 돌보면서 말 그대로 전업주부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모가 취업비자로 캐나다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가정의 아이들은 학비를 면제해줘서 유학생들처럼 등록금을 내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는 있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단기간의 취업비자로는 불안한 생활이 지속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영주권까지 연결이 되는 취업자리를 발품을 팔면서 알아본 결과 한국 식당에서 요리사로 취업하고 숙련직 취업비자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된 후에야 배우자에게 나오는 오픈 비자를 받고 나서 나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그때가 2010년이었으니 벌써 강산이 한 번 바뀐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내가 요리사로 일하면서 2반 만에 영주권을 받은 후에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는 바람에 몸이 우선이라 생각해서 요리사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식당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건강 관리를 하면서 평소에 어린아이들도 좋아하고 관심도 있었던 유아보육교사 과정을 이수하였고 Childcare License를 취득하고 나서 한국의 어린이 놀이방과 같은 '데이 홈'을 운영하는 것으로 새로운 이민생활의 길을 열게 되었다.


처음 데이 홈을 시작할 당시에는 캐나다에서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정부기관에서 위탁을 받아서 데이 홈을 관리하는 에이젼시 소속으로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에이젼시 소속이라고 해서 그 에이젼시가 데이 홈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거나 아이들을 소개해 주지는 않고, 단순히 행정적인 지도나 관리 업무만 진행한다. 에이젼시에서는 매월 비정기적으로 하루를 불시에 방문해서 데이 홈의 위생상태나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 관리 및 화재나 안전사고 등의  위기 대처능력 같은 몇 가지를 체크하는 것뿐이었다. 그 외 사실상 아이들을 모집하는 광고를 내는 것부터 운영시간이나 간식과 점심식단을 짜는 것과 프로그램 운영 등 모든 것이 운영자(Provider)몫이었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우리 집의 데이 홈에 온 것은 두 명이었다. 그 두 명으로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데이 홈의 인원 한도인 여섯 명의 아이들이 채워졌다. 다행인 것은 아이들도 부모들도 모두 만족하는 데이 홈으로 입소문이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일 년 전부터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은 부모들도 여럿이 생겨났다.

사업으로써 데이 홈을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 운영자는 그리 오랫동안 운영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퇴근해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아니고 잠깐씩 놀아주는 것조차도 전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아이들끼리 부딪치는 경우가 생기거나 다투면서 치고받는 경우, 급기야 얼굴에 상처를 내는 경우도 있기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다. 옛 어른들 말씀에 어린아이 돌본 공은 없다는 말이 새삼 마음에 되새겨진다.


주변 사람들은 아내를 만나는 자리에서 누구나 아이 하나만 돌보는 것도 힘들다면서 아내 혼자 두 살에서 네 살 사이의 아이들 여섯 명을 돌보는 것에 대한 예찬론을 펼쳐 놓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하루 종일 아이 여섯 명을 데리고 먹이고, 재우고, 함께 뛰면서 놀아주고, 학습놀이를 통해서 다양한 활동을 체험하게끔 돌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을 하는 것 같아서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일을 마치고 퇴근해서 오후 세네 시경에 집에 도착하면 가끔씩 아이들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도 잠깐은 예쁘고 귀엽지만 그 시간이 10분을 넘기기 어려운데 정말 아내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벌써 몇 년을 운영하다 보니 2살에 와서 초등학교에 간 아이들도 꽤나 있는데, 아직도 그 부모들과 교류를 계속하면서 지내고 있는 것을 보면 나름 아이 부모들도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부모들 중에는 새로운 부모와 인터뷰를 할 때 언제든지 연락을 주면 그 사람들에게 우리 집의 데이 홈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겠다고 자청하는 부모들도 여럿이 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부모들과 보육교사로서의 관계가 단순히 보육비만으로 연결된 것이 아닌 순수한 인간관계로 발전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캐나다에서 어린아이들이 취학 전에 다니는 보육시설인 데이케어는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을 확보하고 교사를 채용해서 어린아이들 6명당 한 명의 보육교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반면에 규모가 큰 데이케어보다 작은 규모의 보육시설을 선호하는 부모들은 개인이 집에서 교구를 준비해 놓고 운영하고 있는 데이 홈이라는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데이 홈은 운영자의 가정을 기준으로 아이들 6명으로 수용인원 한도가 정해져 있고, 운영자 당사자의 아이들이 있는 경우 그 아이 들을 포함해서 6명의 인원 한도를 초과해서는 안된다. 개인이 데이 홈을 운영하는 것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이 되는데, 정부기관에 시설 등록을 하고 에이젼시 소속으로 데이 홈을 운영하는 라이센스드 데이 홈과 정부에 등록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적으로 직접 운영하는 프라이빗 데이 홈이 있다. 물론 라이센스드 데이 홈을 운영하는 경우에는 정부기관에서 위탁업무를 맡은 에이젼시에서 관리감독과 행정처리를 대행한다.




우리 집 데이 홈의 초창기 멤버였던 Reid는 갓 돌이 지나서 기저귀를 차고 왔는데, Kindergarten으로 옮겨 갈 때까지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성장했던 아이다. Reid엄마는 간호사로 바쁘게 일하는 사람이었고 아이에게 늘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남달랐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가 어려서부터 자기가 할 일은 스스로 하도록 지도하는 모습이 다르게 보였고, 매일 아이에 대해서 작은 노트에 육아일기처럼 아이의 몸상태나 전날 있었던 일들을 메모처럼 적어서 Reid를 데리고 오면서 아내에게 주고 가는 것이었다.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보육교사에게 아이 건강상태나 심리상태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의 일과를 공유하고자 하는 엄마로서의 바람도 있었던 것이다.

다소 귀찮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내는 하루에 있었던 Reid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서 아이를 저녁에 데리고 갈 때 리드 엄마에게 전해주었다. 그렇게 3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챙겨주기를 하면서 아내에게는 쉽지 않은 과정이기는 했지만 나름 보람을 느낀 일이었다고 한다. 아직도 기저귀찬 모습부터 해마다 성장한 Reid 사진이 우리 집 거실 입구 아이들 사진 게시판에 걸려있다. 그 녀석이 지금은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크리스마스가 되면 Reid 가족은 아내에게 Reid의 가족사진과 함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온다. 지난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Reid가 직접 삐뚤삐뚤한 글씨로 아내가 보고 싶고 사랑한다고 적어 보냈는데 그것을 받아 본 아내는 눈시울이 촉촉해지기도 했다.


늘 흥이 많아서 노래를 잘 부르고 남자아이들 다섯을 이겨낼 만큼 에너지가 충만한 Hannah, 공룡에 관심이 많고 동물을 좋아하며 레고 블록을 본인의 나이보다 한참 위 단계를 만들어 내는 Brody, 옆에 친구들이 밀치거나 귀찮게 해도 웃으면서 다 아주는 순둥이 Austin, 늘 강아지 털을 온몸에 붙이고 오는 하얀 얼굴에 금발머리 꼬맹이 Ray, 나를 보면 "Uncle Peter!"라고 외치며 달려와서 안기는 정 많고 기운 센 열정둥이 Stanley, 친구들을 따라다니면서 장난감을 무조건 뺏고 보는 가장 어린 꼬맹이 Albert. 이렇게 귀엽고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나에게는 힐링이 되는 생활 속 에너지임에 틀림없다. 힘든 코로나 사태가 하루속히 마무리되고 에드먼튼에서 제일 좋은 계절인 여름이 빨리 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뒷마당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캐나다에는 여러 민족이 모여 산다는 것을 우리 집에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드나드는 어린 친구들로 충분히 느낄 수 있어 정말 좋다. 여태까지 우리 집을 다녀간 아이들은 거의 캐나다에서 출생한 시민권자이지만 그 부모들은 캐나다 시민들도 물론 있지만 한국, 중국, 러시아, 인도, 카자흐스탄 등 출신의 이민자들도 다수였다. 이런 분위기를 통해서 보면 다민족 국가로 구성된 캐나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여러 민족의 아이들과 융화되는 상호 존중의 분위기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인종차별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적게 나타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

이 어려운 COVID19 확산 시기를

무사히 잘 넘기고

다시 데이 홈으로 올 수 있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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