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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의 Konadian Life Mar 25. 2020

인종차별

이민생활의 소소한 이야기

여기저기에서

인종차별 이야기가 들려온다.



코로나 19!

COVID-19로 명칭이 정해진 동네에서 사는 나에게 요즘 들려오는 소식은 공황 구매, FOMO 증후군, 그리고 인종차별이다.

내가 그동안 캐나다에서 지내면서 딱히 노랑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아니 이곳의 기준으로는 내국인들)에게서 차별적 언사나 행위를 직접 받아 본 적은 없었다.  


인종차별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캐나다로 이민하기 전에 먼저 호주로 이민 갔던 후배로부터 캐나다에 도착해서 한창 적응을 하던 시기에 전해 들었던 이야기다. 그 후배가 나에게 호주의 분위기와 캐나다의 분위기가 얼마나 다른지, 캐네디언들이 이민자에게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내가 차별을 겪었는지 묻던 중에 나온 이야기였다.

그 친구도 싱가포르에서 몇 년간 직장 생활을 하고 나서 한국에 돌아와 아이들 교육을 시키는 문제가 걱정이 되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한 끝에 호주로 이민을 한 케이스였다.

어느 날인가 그 후배가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서 시드니 시내에 있는 한 은행에 들러서 일을 보고 있던 중에 텔러가 아시아 사람이었던 테이블에 백인이 앉아서 상담을 시작하려던 차에 그 백인이 아시안 텔러에게 "네가 왜 여기에 앉아 있냐? 너희 나라로 가라!"면서 고성을 지르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옆에 있던 후배가 놀라서 멀찌감치 물러섰던 경험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의 느낌은 왠지 식사 후에 소화불량으로 가슴이 꽉 막힌듯한 답답함이었다. 아직도 이런 차별이 존재하나 싶은 생각에 앞으로 내가 캐나다에서 지내면서 이런 일도 생길 수 있겠지 라는 막연한 두려움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지난번 캐나다의 교통법규에 관한 글을 올리면서 '이런 신사의 나라가 있나?' 하는 경험을 이야기할 때만 해도 막 이민 생활을 시작하는 시기여서 내가 길을 막고 있는데도 뒤차에서 경적소리가 안 나서 정말 캐나다에는, 아니 적어도 에드먼튼에는 전부 신사와 숙녀만 사는 동네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 후로 몇 년이 지나고 나서는 여기도 전부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일 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별일이 아닌데도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며  지나가는 경우도 있었고, 주차장에서 커다란 트럭으로 휘저어 대던 위험천만한 난폭운전과 곡예운전을 보고 나서는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장면인가 하는 착각을 할 정도의 위험도 느껴 보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들도 세상 사는 이야기이니 그리 놀랄만한 것도 아니다.


내가 경험했던 인종차별은 딱히 그런 표현을 쓰기도 애매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내 나름대로는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경험이다.

한국에서는 동남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를 홀대하거나 차별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뉴스에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 일이 해외에서는 역으로 한국인들이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던 이야기이다. 그것도 일부 의식없이 행동하는 한국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출신의 사람으로부터 이 먼 곳 캐나다에서 말이다.


지금은 폐지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2010년 전후로 이곳 캐나다에는 필리핀 정부와 캐나다 토종 기업인 Tim Hortons라는 커피와 도넛을 파는 매장이 협정을 체결하고 인력을 수급하는 시스템이 있어서 그 당시 필리핀 인력이 대거 팀호튼 매장에 투입이 되었고 현재도 일부 남아 있는 실정이다. 캐나다에서 필요한 필리핀 인력의 매력은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저임금의 노동자라는 것인데, 한국인들과 달리 필리핀 사람은 캐나다에서 취업비자를 받는 것이 한국사람에 비해서 훨씬 어렵고 까다로운 절차를 필요로 한다는 게 이곳 이민 취업 브로커들의 정설이다. 그러니 캐나다 업체에서는 저임금에 언어능력이 있는 인력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당시 커피를 사러 자주 들렀던 동네 매장에 어느 날인가부터 필리핀 출신 직원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해서 나름 같은 아시아 사람이라는 생각에 친근한 느낌을 가졌었는데, 오더를 받는 인원 중에 필리핀 여성이 투입되었을 때 내가 처음 그 여자 직원에게 커피를 주문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커피 한잔을 오더 하는데 무려 다섯 번 이상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되물어와서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는데, 그동안 커피를 사면서 그 매장의 다른 직원과 오더를 하는 동안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나의 발음이 못 알아들을 정도로 인식이 되는 것도 웃지 못할 일이었고 이런 일이 며칠 동안 계속되어서 그곳의 매니저에게 컴플레인을 하고 나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긴 했지만 당혹스러웠던 마음이 컸다.

나의 엉성한 영어 발음이 문제라면 다른 직원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으리라 생각하는데, 다른 직원들과는 단지 커피 한 잔을 오더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기에 과연 그 필리피노 여자 직원은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영어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그 사람은 정말로 내 말을 못 알아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주변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어실력은 뛰어나고 한국 사람인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코로나 19 사태로 중국에서 한국인들에게 감금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면서 고립시키고, 유럽에서는 폭행이 이어지고, 캐나다 퀘벡에서도 며칠 전 한국인을 폭행하는 사건으로 사망까지 이르는 사태도 발생했는데, 앞으로는 글로벌 사회에서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게 경제적 관점의 선진국에서의 기본이 없는 후진적 에티켓으로 전 세계인의 비웃음을 사는 일은 그 어느 곳에서도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인종차별에 대항했던 캐나다 여성이 있다.

Halifax 출신의 미용사이자 흑인 대상 미용학원 운영자인 Viola Desmond.

여성은 미국에서 1956년 12월 로사 파크가 앨라배마의 흑인과 백인이 분리된 버스에 앉기를 거부하기 거의 10년 전인 1946 년 11 월 8 일 캐나다의 Nova Scotia 영화관의 백인 전용구역을 거부하여 캐나다의 인권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의 극장은 백인 구역과 흑인 구역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흑인들은 뒤쪽 발코니로, 아래층 좌석은 백인을 위해서만 운영되고 있었다. 근시가 있었고 뒤에서 제대로 볼 수 없었던 Desmond는 백인 구역에 앉아서 영화를 보고자 했으나 안내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았고 그로 인해서 그녀는 경찰에 의해 극장 밖으로 끌려가 체포되어 12 시간 동안 감옥에 갇혀 벌금을 물었다. 그녀는 이 같은 비인권적인 부당성을 제기하여 투쟁했고 이것은 각종 차별 속에서 살던 많은 흑인들에게 용기와 도전의식을 심어주었다.


데스몬드의 이야기는 반세기 동안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0년에 Nova Scotia주정부에서 Desmond를 사후 사면하고 2017년에 캐나다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었고 2018년부터 10달러 지폐에 인쇄되어 모든 캐네디언이 그녀를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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