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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의 Konadian Life Apr 28. 2021

다시 4월이 가고...

열여덟의 기억  그리고

스물다섯의 약속








느지막이 일어나서 커튼을 열고 햇살을 받는다. 일요일 아침이다. 아내는 어젯밤에 딸아이가 만들어 놓은 크로와상을 가져다가 커피 한잔과 여유를 즐긴다. 주말과 휴일에 재충전하는 시간의 일상이 이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아내가 인터넷으로 다큐를 한편 틀어 놓아서 옆에서 곁눈질을 하다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아내와 나는 서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목이 막혀 왔다. 나이 50 넘어서 그것도 50의 중반을 꺾어 놓은 자리에 와서부터 주책맞게 눈물이 자주 흐른다.


젊은이들 몇 명이 나와서 인터뷰하는 모습에 우리 두 사람은 한동안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리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각자 티슈로 눈물을 훔치기 바빴다.


일상에서 잠시 잊었던 아이들이었다. 출발은 300명이 넘는 인원의 고등학생들이 한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학교에 돌아온 아이들은 고작 75명이다. 아이들은 졸업앨범도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단다.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만의 앨범, 돌아온 아이들만 나오는 앨범, 그리고 모두가 함께 나온 앨범. 누가 졸업앨범에 나오고 안 나오는 문제가 아니라 친구를 기억하게 해주는 졸업앨범이 각각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고통이었다.


당시 세월호 사고로 세상을 떠난 학생들과 우리 집 큰아이가 같은 나이여서 더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인데 하룻밤 사이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은 부모로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안산 단원고 근처에서 사시는 누님이 전해준 당시 이야기로는 같은 아파트 안에서도 한집 건너 두 집이 사고 희생자 가족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희생자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사고 후에 내가 페이스북에 학생들의 전원 구조를 바라는 글을 올리자마자 동료였던 Joan은 나에게 아이들이 꼭 돌아올 거라는 댓글을 남겨주고 전화로도 위로를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나에게 다시 한번 위로의 말을 전해주는 Joan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고의 원인도 밝혀내지 못했고, 사후 대책도 없던 시기였고 어떻게 설명할 방법도 없었는데 아직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가는 사고가 되었지만 아직도 명확한 사고의 원인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사고 발생 선박의 관계자나 긴급구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사람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비록 내 자식이 당한 사고는 아니라도 이런 소식은 사고와 무관했던 나조차도 억장이 무너짐을 느끼는데, 하물며 당사자인 부모들은 어찌 가슴에 한이 남지 않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 7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무심하게 흘러서 억울하게 희생된 아이들의 이야기가 이제는 점점 세상 사람들의 관심과 기억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친구들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아요.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은 기억나는데 언제부터인지 목소리를 잊게 되었다는 한 학생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사람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이 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소중한 친구의 목소리도 아득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수학여행이라는 기분에 마냥 좋았던 아이들.
제주에서 친구들과 맛집도 찾아가고, 10년 뒤에 음악 선생님이 되었을 거란 희망을
이야기하던 아이들.
그중에 250명이 이 세상에 더 이상 그 흔적이 없고, 70여 명은 아직 스물다섯으로 세상에 남아서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에 배를 빠져나온 아이는 이젠 별이 된 친구들을 위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잘못된 사실을 고치기 위해서 인터뷰에 응했다는 슬픈 이야기를 전한다.

남은 그들에게도
"또 세월호야?"" 지겹지 않나?"
이런 부정적인 말들이 화살이 되어 가슴을 찌르지만 남아 있는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였다.

인터뷰에 응하신 이혜인 수녀님의 '기억은 최소한의 사랑 표현'이라는 한 문장을 마음에 되새기며 '남아 있는 너희들의 새로운 이름은 앞으로 싱싱하게 피어날 꽃들!'
이라는 말을 간직한다.


내가 가족들과 함께하는 일상의 따스함을, 여유를, 대화를, 추억의 공유를, 일상의 달콤함을 세상에 남아 있는 그 아이들이 친구들의 몫까지 더 많이 누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서 이 세상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주길 바라는 건 헛된 생각이 아니라 꼭 이루어질 꿈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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