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근무시간이 정해진다.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는 주 5일근무에 하루 8시간을 일하는근무쉬프트로 스케줄이 짜여진 동료들이 대부분이지만,나는매장에서 발생하는 매출을 정리하고, 본사의 메인 컴퓨터에 연결해서 매출자료를 입력하고, 은행으로 돈을 보내고, 자금데이터를 만드는 회계부문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동료들과는 조금 다른 스케줄로 일을 하고 있다. 보통은 사무실에서 내가 처리해야 할 일만 마치면 나는집으로 향하는데 오후 3시가 되던 2시가 되던그 누구도 나에게업무에 대해서 눈치를 주거나 뭐라고하는 사람은 없다. 한 번은 내가 조금 이른 시간에가방을 둘러메고 퇴근을 하려고 사무실에서 나올 때매장에서 캐셔 일을 하는 신디라는 캐네디언 아주머니와 얼굴을 마주쳤는데 이렇게 일찍 퇴근하면 페이가 적어서 어떻게 하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걱정을 해주는 것이다. 딱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오늘 할 일이 끝나서 집에 간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캐나다의 많은 월급쟁이들은 시급으로 정해진 금액을 기준으로 2주 단위로 정산을 해주는 주급 개념으로 급여를 받는다. 그리고 가능한 8시간을 채워서 일을 한다. 하지만 작년부터 코비드로 인한 레이오프(일시적 해고) 또는 근로시간이 줄어든 경우가 상당히 많아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매일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오후 3시-4시에는 사무실을 나와서 집으로 향한다. 사무실 동료 몇명도 아침 8시 전후로 회사에 출근하고 8시간 정도 일을 한 다음 오후 4시 전후가 되면 퇴근을 한다. 처음 캐나다에서 직장에 입사하고 한동안 이런 분위기가 어색하고 왠지 불안하기까지 했었다.내가첫 출근날업무를 마치고 매니저에게 퇴근해도 되냐고 물어보러 갔을 때에는 나를 쳐다보며 일이 끝났으면 그냥 집에 가면 될 것을 네가집에가야지 나를 왜 찾아왔니?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ㅎㅎ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은 나의 모든 것이었다.
결혼 전에도 직장 위주로 생활을 했었고, 결혼 후에 아내가 아이들을 출산하고 키우는 동안 내가 육아를돕거나동참했던 기억은 거의 없다. 나는 여행을 좋아해서 나름대로 휴일이나 휴가를 이용해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기도 했지만 평소에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어린 아들과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었던 나의 모습은 없었다. 그만큼 직장이 나의 모든 것을 대신하는 시간이었다. 당시에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아이들과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점심과 저녁식사를 회사 내 구내식당에서 모두 해결하고 9시나 되어서 퇴근을 해도 빨리 퇴근한다던 시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힘들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퇴사한 시기가 2002년 12월. 직장이라는 조직을 떠나 홀로서기를 한다고 자영업에도 도전해보고 아이들의 교육사업에 뛰어들기도 했었던 시간을 뒤로하고 한국의 직장생활을 접은 지 어느새 20년이 되어간다.
이민 초기에 캐나다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할만한 자본도 없고 언어능력도 일천한지라 나의 입맛에 맞는 일을 찾는다는 것은 뜬구름 잡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캐나다에서의 경험이 전무했던 사람을 선뜻 받아주는 곳도 없었다. 어찌 되었든 이민 후 2년 가까운 공백기를 갖던 중에 다행스럽게 취업을 했고,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캐나다의 첫 직장에서 근무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업무는 정해진 시간에 이루어지고 오버타임은 권하지 않는 시스템이다. 한국에서의 그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물론 내가 여기에서 언급하는 직장생활이라는 것은 한국에서의 20년 전 이야기이다.) 지난 시간에서 조직생활의 문제는 한국에서의 시간이 더 크게 느껴졌다. 딱히 정해진 시간이 있지도 않았고, 허울 좋은 사무실 업무를 한답시고 밤늦은 시간까지 눈치싸움하듯 책상에서 일어나질 못했던 그 당시의 시간이 어떤 의미로 남았나 생각을 해보면 지금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물론 당시에는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요했고, 그 최선이라는 것 중에 하나가 늦게까지 일하며 사무실에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기도 했던 때였지만 말이다.
캐나다로 이주하고 직장을 다닌지도 벌써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의 사무실 업무는 큰 변화 없이 계속되고 있지만나의 하루는늘 새롭게 열리고 닫힌다.그리고 하늘은 날마다 새로운 구름과 하늘의 색을보여준다.
Facebook에 가끔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고 리마인드 해주는 메시지를 받아보면 5년 전이나 8년 전에도 에드먼튼의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을 사진 찍어 올렸던 것들이 있다. 예전부터 하늘과 구름을 보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 좋아서 특별한 생각 없이 하늘 사진을 올렸던 모양이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구름이 둥실둥실 떠있는 하늘이 열려 있고, 먹구름이 끼어서 흐리면 흐린 대로 비를 내리는 하늘이 열려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에드먼튼에는늘 하늘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하늘은 사방이 탁 트이고 멀리까지 구름이 펼쳐진 것이 참으로 보기에 좋다. 그런 하늘을 보고 있으면 몸도 마음도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어느 곳을 가더라도 하늘이 열려있다.
이곳에서의 하늘 구경은매일 새로운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장을 다니는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퇴근길에 무한정의 전시회가 열리고 매시각 달라지는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이 적정 근무시간을 일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나에게 주어진 특권이 되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탁 트인 주변을 둘러보면 마음도 편해진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파란 하늘처럼 시원해지고 뭉게구름을 타고 날아오르는 것처럼 마음속까지 편안하게 느껴진다.
퇴근길 에드먼튼 하늘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평일 오후에 아내와 동네 산책을 하며 사진 한 장 찍은 것을 보며 나에게 성공했다는 말을 한다. 사진 하나로 워라벨이라는 말이 실감난다는 친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