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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의 Konadian Life Jul 18. 2021

6월의 밴프(Banff) 국립공원 (2)

록키 산자락

밴프에서 더위를 식히고 왔다








장거리 운전이 점점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 탓일 게다. 목 언저리가 뻑뻑한 느낌이 들어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아내는 건너편 침대에서 아직도 잠에 빠져 있다. 트레일러 안에서 움직이면 소리가 날 것 같아서 웬만하면 아침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으려는데 이것처럼 불편한 것이 또 없다. 슬그머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공기는 참 상쾌하다. 어제부터 비 소식으로 가득했던 일기예보가 오늘도 저녁시간까지 밝은 해님만 보여주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날씨도 덜 풀리고 흐린 날씨에 여기저기 얼음이 남아 있어서 차만 타고 움직이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모레인 호수에 카약을 띄우기로 했다. 트렁크에 실어 놓은 카약과 구명조끼를 다시 확인해 놓고 트레일러로 들어오니 아내도 자리에서 일어나 있다.

밴프 시내 Tim Hortons에 들러 커피 한잔 사서 일찍 모레인 호수로 움직이기로 한다. Moraine Lake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Lake Louise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호수이다. 나와 아내의 의견으로는 전 세계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레이크 루이스보다 더 아름다운 장소로 꼽는다. 모레인 호숫가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지만 호수 입구에 있는 바위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호수의 물빛은 예술 그 자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오늘 바로 그곳에서 10년 만에 다시 카약을 띄우기로 한 것이다. 2010년 에드먼튼에서 알게 된 다른 가족들과 카누를 가지고 와서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한 적이 있는데 그 후로는 그냥 사진만 찍거나 한국에서 온 손님들 구경만 시켜주러 다녀갔었고 배를 타기 위해서는 이번이 두 번째이다.

작년 버밀리온에서 카약을 타고 찍은 런들 마운틴

몇 해 전부터 여름 성수기에는 모레인 호수에 들어가는 차량을 통제하고 안쪽 주차장에 자리가 확인되는 경우에만 들여보내고 가능한 셔틀버스를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처럼 카약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은 셔틀로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운에 맞기더라도 차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혹시라도 관광객이 몰리면 차가 들어갈 수 없을지도 몰라 7시가 안된 시간에 출발을 한다. 밴프 시내에서 모레인 호수까지는 대략 한 시간이 걸린다. 캠프그라운드에서 시내로 내려가 커피를 한잔씩 주문해서 차에 오른다. Trans Canada Highway로 올라서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모레인을 향했다. 고속도로에 들어와 왼쪽으로는 Mt. Rundle 이 보이고 Vermilion Lake가 있다. 모두 밴프에서 유명한 곳이다. 런들 마운틴 앞쪽에는 그 유명한 밴프 곤돌라를 탈 수 있는 Sulphur Mountain이 자리하고 있다.


Trans Canada Highway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Castle Mountain 이 보인다. 커다란 성이 서있는 것처럼 돌산의 모양이 성곽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이곳의 산들은 거의 2500m에서 3000m 이상의 높이를 자랑하는 곳이 많다.

구름이 내려 앉은 Castle Mountain

밴프에서  Trans Canada Highway를 달려 40분여 만에 레이크 루이스 입구에 도착해서 모레인 호수로 차를 꺾으려 했지만 역시 국립공원 직원들이 길을 막고 서있다. 좌회전이 안된다고 수신호를 보내온다. 그래도 차들이 많지 않은 듯해서 위쪽으로 올라가다가 유턴을 해서 다시 입구에 도착하니 웬일로 묻지도 않고 통과를 시켜준다. 머릿속에는 카약을 가지고 와서 어쩌니 저쩌니 구구절절 설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ㅎㅎ 다행이다. 입구에서 호수까지는 약 10km. 지난 5월에 왔을 때 에는 길을 막아놓고 눈이 안 녹아서 차는 못 들어가니 걸어서 가던지 자전거를 타고 가라면서 못 들어가게 했던 길이다. 들어가면서 보니 차단기까지 설치를 해 놓았다. 점점 더 출입이 어려워진다.

이제 7월이 되어서 모레인 호수로 가는 길이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8시경에 모레인 호수에 도착해서 일단 바위 언덕에 올라가서 옥색 물빛을 보고 나서 카약을 띄우기로 했다. 이곳의 물빛은 날씨가 흐리거나 햇빛이 비치거나 할 때마다 다른 색감을 느끼게 해 준다.

모레인 호수 입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는 전망대길

옥색 물빛이 아름다운 모레인 호수를 내려다보면 그 물색에 취해서 호수에 빠져들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침 8시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언덕 위에 올라와 있다. 팬데믹이 끝나가려는지 7월 1일부터 마스크를 안 해도 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어서인지 맨얼굴로 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왠지 낯선 느낌이 들 정도였다.

햇살이 쏟아지는 호수를 바라보다가 이제는 카약을 띄워야겠다는 생각에 주차장으로 발을 옮겼다. 트렁크에서 카약을 꺼내고 펌프로 바람을 넣으니 바로 부풀어 오른다. 3단 패들을 조립해서 카약에 올려놓고 구명조끼를 싣고 호수로 옮기는데 은근히 무게가 나간다. 아내가 물과 간식거리 쿨러백을 안에 놓아둔 것 때문에 무게가 느껴졌다. 물가로 다가서니 이곳에서 카누를 대여해주는 데크의 문이 잠겨 있어 직원에게 데크를 이용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데크 사용은 안된다고 한다. 큰 바위와 통나무를 밟고 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서 잠시 머뭇거렸지만 다행히 큰 바위 옆으로 카약을 올려서 호수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옥색 물 위에서 천천히 패들을 저으며 마음껏 여유를 부려 봐야겠다.

호수 중간까지 산그늘이 걸쳐 있어서 패들을 움직이다가 더운듯하면 그늘로 들어가고 다시 서늘한 듯하면 햇빛이 있는 곳으로 나오고 하면서 호수 끝에 있는 폭포 쪽으로 옮겨가 본다.

호숫가에서 바라보는 모습과 달리 호수 안쪽 가운데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모습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호수 안쪽 끝부분에 와서 보니 벌써 한가족이 카누와 카약을 몇 대나 몰고 들어와서 바위에 배를 올려놓고 이 차가운 물에 뛰어들어 수영도 하면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참 여유로운 모습이 보기에도 좋다.

카약을 띄워놓고 천천히 패들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세 시간이 되도록 여유를 부려 보다가 간식도 떨어지고 햇살도 강해져서 11시가 좀 넘어가면서 호숫가로 카약을 옮겼다. 물가로 나가는데 관광객들이 부러운 눈으로 우리를 반겨준다. 아 나 혼자만의 착각인가 보다. ㅎㅎ 카누를 빌려 타면 한 시간에 $115(캐나다 달러)를 내야 하는데 우리는 9시가 안된 시간부터 두 시간 반을 넘게 패들로 호수 위에서 여유를 부렸으니 돈으로 따지면 200달러 넘는 호사를 누리고 나온 것이다. 이 카약의 가격이 300달러 정도였으니  몇 시간 만에 카약 구입비용을 뽑은 느낌이 들었다.


카약을 주차장으로 들고 와서 물기만 털고 트렁크에 넣었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다시 펴고 말려야 할 것 같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던 아내는 나에게 한마디를 던진다. "이렇게 번거로운데 힘들지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만큼 좋은 게 더 있겠는가! 다음 달 8월에는 다시 1주일 동안 캠프 사이트를 예약해 놓았으니 그때 돌아올 것을 약속하며 운전대를 잡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시간도 어중간하고 출출한 배를 채울 겸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캠프 사이트에 도착해서 트렁크를 열고 카약을 꺼내 테이블에 넓게 펴놓고 이리저리 흔들어보니 물이 줄줄 흘러나온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햇빛이 안 드는 그늘에 널어놓았더니 금방이라도 바짝 마를 것 같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아내와 밴프 시내로 향했다.

보통 관광객이 많은 시기는 거리에 사람들이 가득 차서 부딪히는 일도 있는데 오늘은 얼마나 많을지 궁금하다. 메인 스트리트 옆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참고로 밴프는 모든 공영주차장이 무료로 운영된다. 주차장에서 한 블록을 걸어가니 역시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가 보인다.

작년에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메인 거리인 Banff Avenue를 차 없는 거리로 운영을 했는데, 올해도 변함없이 차 없는 거리로 운영을 하고 있다. 시내버스만 다니게 한 차선만 열어놓고 일반 차량을 통제해서 보행자들이 편하게 길을 걸어 다니게 만들어 놓았다. 이런 방법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를 해주면 좋을 것 같다.

매번 다니러 오면서 그다지 쇼핑에는 관심이 없는 아내가 이리저리 구경을 다니다가 내 신발을 하나 골라주면서 사라고 권해준다. 스포츠용품 매장이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계열사라 직원카드를 이용하면 세일 가격에 추가로 20%를 더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겨울용 부츠를 세일하는데 $200 가격을 반값 정도에 살 수 있어서 가격도 괜찮고 발에 딱 맞는 사이즈라서 흔쾌히 구입을 결정했다. 늘 이런 식이다. 내가 아내의 물건을 권해주면 딱히 필요 없다는 말로 대신하고, 자주는 아니라도 나에게는 괜찮은 것으로 마음을 혹하게 해서 구입을 하게 되니 나는 물건 보는 눈이 없는 모양이다. 아니면 아내에게 괜찮은 것을 권해주는 것도 못하고 눈치도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쩌다 득템을 하게 되었는데 아내는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며 캠핑장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그냥 들어가기가 아쉬워서 가까운 민네완카호수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시내에서 차로 10분 정도만 가면 나오는 밴프에서 가장 큰 호수가 민네완카호수이다.

가끔씩 모터보트를 렌트해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물살을 가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민네완카에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꽤나 많이 몰려 있다.

잠시 둘러보고 많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캠프 사이트로 돌아왔다.

밴프에서의 2박 3일 캠핑은 늘 아쉽다. 오고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아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남편 잘못 만난 탓에 반강제로 따라오기는 한다. 물론 풍경은 좋지만 왕복 시간이 너무 부담스럽다면서 나도 자제해주길 바라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다. 저녁시간에 함께 맥주를 한잔 나누면서 아내가 운전하는 내가 힘이 드니 다음에는 더 여유 있게 다니자는 말을 꺼낸다. 맞는 말이다. 이제 여기저기 결리고 당기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몸 관리도 해야 할 모양이다.

3일 차인 일요일 아침에 일찍 트레일러를 연결하고 집으로 향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밴프의 높은 산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 혼자 산을 향해 잘 있으라 인사를 남기고 에드먼튼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늘  다음 캠핑을 기약하며 운전대를 잡는다. 8월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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