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시 Feb 08. 2024

밥만 사주면 헤벌쭉한 엄마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 있지




그렇다.

 자식이 밥 한 끼만 사줘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하는 여자였다.



일주일간 파리로 공연을 떠났던 아들이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안부를 전해왔다. '일정은 잘 마쳤고 일주일 내내 거친 빵과 느끼한 음식만 먹었노라고. 공항을 거쳐 집에 도착하면 오후 네시니 한식을 먹으러 가자'는 내용이었다. 휴일엔 나도 주방 물때에서 홀라당발라당 벗어나고픈 날이라 기다렸다는 듯 톡이 오자마자 숨돌릴틈도 주지 않고 '촐싹거리며 즐거워하는' 아지매의 이모티콘을 날려 주었다.




엄마는 늘 공짜면 다 좋아한다고 놀리는 아들이다.

놀리면 어떠랴. 공짜도 공짜 나름이지만 공물이 좋은걸... 무료앱이라도 열어보면 광고가 천지요. 유튜브도 볼라치면 양심껏 좋아요도 눌러주고 광고도 적당히 봐야 하니 엄밀히 말하면 공물을 가장한  사악한 공짜배기인 것을. 요즘을 살아가는 시대에 자식이 베푸는 효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상(無償)을 가장한  유상(有償)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밥 사준다는 말에 어미의 입꼬리는 벌써 하늘로 치솟고 있다. 마음이야  말할 것도 없이 헤벌쭉이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옆지기는 기다렸다는 듯 시원하게 찬물을 끼 얻는다. “공짜 좋아하다 이마 벗어진다.” “ㅋㅋ 그래서 내가 앞머리가 휑한가?”  




공항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또다시 톡을 보내왔다. 친구하고 갔던 인근에 삼겹살집이 생각난 모양이다. “엄마, 엄마 고기 먹고 싶으면 요기 검색해 봐요. 맛있어요.”하며 맛집 플레이스를 보내왔다. 들어가 보니 방문자 리뷰도 많고 평점도 4.6이다. 맛집을 다녀본 결과 평점이 4.5를 넘으면 후회하지 않을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매번 즐겨 먹는 한식도 좋지만 오랜만에 돌판에 구워 먹을 삼겹살도 별미일 것 같아 그리로 가자고 서둘러 오라고 재촉했다. 




 


이른 오후 다섯 시. 주차할 곳도 없고 음식점 안은 벌써 만석이다.

추운 날씨에 고기냄새 밴다고 밖에서 기다리자는 아들이지만 영하 10도의 날씨에 깁스한 오른발이 부어올라 양말 없이  맨발로 간 상태라  외부에서 기다리긴 무리였다. 옷에 냄새가 배더라도 따스운 게 더 나을듯한 상황이다.   




10분을 기다려도 자리가 날 기미가 없다. 자욱한 연기와 불타오르는 냄새 속에 빈자리를 목메고 있는 우리에게 주인장은 의기양양 큰소리로 불러댄다. 마침 옆테이블 손님이 아이들이 잠시 놀이터에 간사이 불편한 다리를 하고 서있는 나를 보고 자리를 양보해 준 것이다. 구급차가 앵앵거리고 지나가면 대부분의 운전자가 자리를 비켜주듯 아픈 다리로 절뚝거리는 나에게도 생면부지한 이들이 많은 것을 내주었다. 많이 고마웠고 아픔을 겪으면서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세상임을 새삼 느꼈다. 친절과 사랑, 배려 같은 좋은 기운은 선순환이 되어야 제역활을 다한다. 타인에서 나로, 나에게서 타인으로 돌고 돌아야 제맛을 다하니 이제는 타인에게 돌려줘야 할 빚을 떠안은 셈이다.







메뉴판은 적당하니 과하지 않았고 세트메뉴를 시키는 곳은 불쇼까지 해주는 깜찍함이 있었다. 미나리와 살얼음 묵사발, 구수한 된장찌개가 고기에 기름때를 말끔히 씻어 주었고, 치즈에 계란까지 얹은  마지막 정찬 볶음밥은 그날따라 신의 한 수처럼 느껴졌다.




고기를 다 먹어 갈 때쯤 자리를 양보해 주었던 옆테이블의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왔다. “아들, 저기 아이들 음료수 좀 시켜주면 안 돼?” 잔뜩 애교 섞인 말에 “그렇게 하세요”하고 흔쾌히 승낙을 해준다. 음료수 세병을 보내주니 부모들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너무 깍듯하고 공손하게 고마움을 표해온다. 그들의 표현에 내가 더  당황했지만 서로가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9만 원 정도 나왔다. 아들이 시원하게 카드를 긁었다.

주말오후 아들도 무사히 귀국하고,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사랑하는 가족이랑 식사를 했다. 얼마만인가? 소소한 행복이...




아이들에게 오로지 투자만 하다 이리 대접받는 처지로 바뀐 건 얼마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아이들이 부모생각해서 무언가를 해준다면 미안하고 안쓰러운 생각부터 앞선다. 그럼에도 이제는 당당하게 요구하고 싶다. '엄마도 많은 것을 희생하고 양보하며 너희를 키웠으니 너희도 부모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달라고...' 이 정도는 당당하게 요구할 자격이 있다. 나는... 엄마는...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 있지” 

 

견뎌내니 좋은 순간이 오더라. 친정 엄마는 힘들 때마다 넋두리를 늘어내면 “에고, 자식들 많으니 키울 때는 힘들어도 다 키우고 나니 부러울 게 없다.”라고 하신다. 이제는 나도 호강할 때가 오는가 보다. 뭐 하나 거칠게 거리낌이 없는 인생길 앞.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MZ세대 자식들을 보며 부러워만 하지 말고 조금씩 함께 누리며 살아가고 싶다. 처음인 부모역할, 살아보지 않은 많은 날들, 가보지 않은 길. 굳이 바르게 잘만 갈 필요가 있는가? 이리가나 저리가나 즐겁고 재미있게 가면 그만이지.




“나는 이 세상에 행복하게 살려고 왔지. 오래 살려고 온 게 아니야라는 이평님의 글이 생각난다.

자식이 밥만 사줘도 이리 행복한데 무얼 더 바란단말인가? 기억 저편에 서있는 팔순의 노모는 맛있는 거 사드린다 재촉해도 일어설 생각을 안 하신다. 모든 건 때가 있었나 보다.   

 



아들아오매는 다 필요 없다.

가끔 밥만 사주면 돼야...”  

내가 엄마를, 아들이 나를 밥 사줄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여자 기안 84와 사는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