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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Mar 23. 2024

나 이제 엄마 안 할래

성인 자녀의 부모 역할




“친구한테만 잘하지 말고 오매한테도 잘하면 안 돼?”

“사랑은 오고 가는 거야. 엄마가 잘해야 나도 잘하지~”


  

친구한테 온 정성을 쏟아 내는 아들을 보며 한소리 했다 돌아온 참변이다. ‘몹쓸 놈 내가 너를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 가슴 한복판에 격렬한 불길이 끓어오른다. 잠시 불길도 식힐 겸  애먼 하늘을 쳐다본다. “부모는 먹지 않고 자식을 주고 자식은 먹고 남아야 부모를 준다”는 말처럼 나도 그랬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좋은 것들 앞에서  노상 자식을 앞세웠다. 과한 짝사랑에 기대를 너무 했나 돌아온 것은 허무, 허탈, 실망, 눈물부스러미들. 서운한 마음에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많은 아들에 괘씸죄를 적용했다.




에둘러 나를 다독인다. 아들의 한마디에 상처받지 않으려고. 

    



자식들이 성인이 되고 정신적, 경제적으로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때쯤 나에게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마음병이 자라고 있었다. 최상의 조건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우수하고도 건재한 슬픔이다. 우울증, 갱년기, 빈둥지증후군 중년에 겪을 수 있는 모든 병을 섭렵했다. 나는 방파제고 그들은 거친 파도였다. 발가 벗겨진 몸으로 차디찬 그들을 받아내야 하는 날에는 가슴이 먹먹해져 울기도 했다. 싱거운 눈물 한 바가지 옴팡 쏟아내면 몰골은 흉측하지만 마음은 생경하게 가벼워졌다.

    



시간에 모든 것을 내밀기엔 슬픔의 골이 너무 깊다. ‘아이들과 나의 문제인가? 아님 나만의 문제인가?’ 






두 자녀는 스무 살이 훌쩍 넘어 느지막한 사춘기를 맞이했다. 나도 뒤질세라 오춘기에 박차를 가했다. 치열하게 격돌을 하다  힘센 자녀들은 청기를 나는 백기를 드는 웃기면서도 슬픈 장면이 연출되었다. 깔끔하고 장렬한 패배였다. 자녀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과감한 분노를 표출했고 나는 어른이라는 명분아래 분노를 꼬불쳐야 했다. 표출되지 못한 분노는 오갈 데 없는 방랑자 신세로 가슴 한복판에 덩그러니 똬리를 틀었다. 풀어도 풀어도 여간해서 풀리지 않을 상처의 매듭이다. 허공에는 혼자만이 간직한  무거운 생채기들이 떠다닌다. 상처 없이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서로를 아낌없이 품으려 열도가 매우 높은 상처놀이를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력 다툼도 늘어났다. 부모 통제하에 있던 자녀들이 직장을 다니면서 더 이상 통제를 허락지 않자 갈등은 비상등을 껌뻑였다. 자기 처분권을 마냥 내버려 두었다 성인이 되고 경제적 능력이 붙자 재빨리 거둬들이는 모양새다. 떠나보낼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정성을 다해 키워온 자식을 "이젠 내어 놓으시오." 하면 "얼른 데려가시오."하고 말할 부모가 얼마나 되겠는가?  25년 이상 간간히 움켜쥐었던 자식 처분권을 일순간 양도하기엔 아쉬워도 너무 아쉬웠다. 배도 아파왔다. 어른으로 당당히 서겠다고 훌륭하게 성장하겠다고 움트는 싹을  애써 외면한 건 아닌지?  원래의 주인이 자기 처분권을 주장하는데  부모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잘고 인색하게 대한건 아닌지?








6~7년이 훌쩍 지나 폭풍우는 잠잠해졌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각자의 상처는 보듬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시간이 약이고  깨지고 부서진 파편들은 명약이 되어 주었다. 앞으로 50년 이상을 어른대 어른으로 자녀들과 함께 해야 한다. 애착이 앞서 성인 자녀라는 새로운 장벽 앞에 적당한 거리 두기에 실패했다. 큼지막한 블랙홀을 만나고 나서야 뒤늦은 후회를 한다.  ‘이제는 과감히 놓아주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어깨를 짓눌렀던  무거운 사명감에서 과감히  탈출할 기회라는 것을.' 




아낌없이 놓아 주리라. 자녀들은 훨훨 날 수 있게  날개를 달아주고 나는 자녀들에게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단단한 마음의 빗장을 치리라. 켜켜이 쌓아 놓은 우리들의 아픈 흔적들도 날려버리리. 부처님 영역에서도 자식은 불가항역적인 장애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중생인 나는 어떠하겠는가?


 


‘아그들아! 우리 이제 어깨 짓누르지 말고 가볍게 살아보자. 이제는 엄마자리 내려놓고 너희들과 동등하게 동반자로 친구로 살아가고 싶다. 내 인생은 내가, 너희 인생은 너희가 우리 그리  쿨하게 살아보자.' 혼잣말로 중얼거려 본다. 아주 홀가분한 이 기분. 니들이 알어? 잊고 있었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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