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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Jun 05. 2024

나이에 굴하면 유죄

좋은 중년이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었다. 멕시코 한마을에 기록적인 폭염으로 원숭이들이 사과처럼 우수수 떨어져 집단 폐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이유를 불문하고 "원숭이가 나무에서?"라는 암묵적인 규칙은 통하지 않았다. 하물며 내 인생의 오후는 어떠하리!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자욱한 안갯속, 예정에도 없던 돌발 상황들 앞에 어찌 손써볼 틈도 없이 허망하게 당하고 '피식' 썩소를 지으며 집으로 향했던 오늘. '괜찮아, 괜찮아. 다들 그러고 살아.'라며 애써 나를 다독여본다. 냄새나는 오물 봉지 봉하듯 비루함이, 무능력함이 새어 나가지 않게 오늘 하루를 꼭꼭 눌러 담았다. 불확실성 앞에 오늘도 오락가락 내일도 오락가락  허우적거릴 뿐이다. 





몸도 마음도 자주 오작동을 하니  이것이 나이 듦의 시작인가 보다. 지난달에만 2번 Y시에 과태료를 냈다. 주정차위반으로 한번, 신호위반으로 또 한 번. 나라의 탄탄한 재정에 기여하고자 생활비 아껴 모은 돈으로 세금봉사를 하고 있다. 혈기 왕성할 때는 무던히도 많은 속도위반 고지서를 받아 들었다. 장거리 출장이 많다 보니 그간 억눌렸던 감정의 상흔들을 '부릉부릉' 달리면서 질주본능으로 해소시켰던 것 같다. 수시로 날라든 과태료 고지서에 허니씨 눈치를 보아가며 24시간 우편함을 사수했던 웃지 못할 과거의 전적들이 있다. 이쯤 되면 Y시에 과태료 모범 납세자로 표창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하소연하고 싶다.








그것도 한 시절이었다. 성미가 차분해지니 모든 것이 잔잔한 바다 위를 걷는 듯 조심스러워졌다. 예전의 날렵한, 반사적으로 유유하게 춤추듯 터치하던 운전실력은 나이 듦과 함께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간다. 운전석에 앉으면 그 어떤 것보다 편안했고 차에 몸을 맡기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그 어떤 것보다 행복이 온몸을 감싸주었던 따스한 기억이 남아있다. 따스함이 사그라들 때면 모범운전자의 30년 무사고 핸들링삶도 조금씩 버거워질 거라 생각된다. 무사고에 반해 벌금 내는 삶이 4~5년 만에 또다시 재현되고 있다. 과태료 전쟁이며 위험수위를 보란듯 넘나들고 있다.





이번 일련의 사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나의 죄는 없어 보인다. 개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이 듦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라 치부해 본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니 운전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 역시 푸석거리고 질이 떨어진다. 조금 더 적극적인 방패막을 내세워 보자면 갱년기 호르몬 이상으로 인한 수면부족을 꼽을 수 있겠다. 단잠을 잔 것이 언제인가 싶은 아득함을 품은 갱년기의 잔해다. 코로나, 대상포진의 후유증도 한몫한다. 발목수술 후 7개월간 운동다운 운동을 못했으니 면역기능은 7개월째 바닥을 기며 백수다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갱년기나 나이 듦으로 인해 오는 증상들은 죽음이 보내는 자연스러운 경고니 두려워 말라고 한다. 내 맘대로 안 되는 신체의 변주곡 앞에 정신줄은 덩달아 널을 뛰고 있다. '정신줄아! 전어 구워줄 테니 서둘러 복귀하면 안 되겠니?'








그토록 자신 있던 운전이 조금씩 버거워지며 50대 이후는 체력과 지력이 떨어져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레 변해가는 나를 마주해야 하는 요즘. 아직은 무리인가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요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며 부정하지 않고 수용하며,  순응해야 하는 요즘. 과거의 나를 버리고 현재의 나와 동거하며 다정하고 살뜰하게 살아가야 하는 요즘이다. 지각력, 판단력이 떨어지고 건망증도 생겼다. 불안감과 서운함이 밀려오고 두려움도 불쑥불쑥 찾아온다. 그럴 때면 가벼운 눈물 몇 방울로 차갑게 응수해 준다.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나’이다. 색칠하지 않은 현재의 소담한 나이기에 외면하지 말고 노랑의 포근한 색깔로  덧칠해 주어야 한다. 나 아니면 갈수록 질이 떨어지는 불량품을 누가 감싸 안아 준단말인가? 




    

2014년 브루킹스 연구소는 '20~40대 중반 사람들의 행복감이 가장 낮았고, 55세를 기점으로 점점 행복해지며 인생의 막바지에 행복의 절정을 맛본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즐거운 일이 생겨서가 아니라 삶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란 결론이다.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면, 나에게 돌아온다면 인생이란 무대에서 진짜의 얼굴로 진실한 목소리로 한판 살아보는 건 어떨까? 50대 이후는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보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시간으로 만들어보기.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가득 채워보기. 말은 쉽지 실천은 늘 어려운 법이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노년은 스스로 만들고 다듬어 가는 예술 작품이라 했다. 못생겨도 좋을 나만의, 내 숨결로만 빚어내는 도자기처럼 자신만의 심성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담은 그릇을 빚어낼 수만 있어도 좋겠다.








“인생의 아침 프로그램에 따라 인생의 오후를 살 수는 없다. 아침에는 위대했던 것들이 오후에는 보잘것 없어지고, 아침에 진리였던 것이 오후에는 거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의 말이다. 




    

카를 융은 '인생의 오전과 오후는 완전히 달라 변화를 쉽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단순한 변화가 아닌 디지털적 변화도 예감했을까? 인생의 오후엔 예전의 나와 현재의 나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마주해야 함을 일러주기도 한다. 중년들에게,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에 오늘도 어김없이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 같다. 이참에 내 인생 오후 프로그램이나 계획해 보련다. 



 


“지금 여기가 어디지? 어디로 가고 있지? 중년에 내 모습은 만족스러운지?" 계획이 또다시 산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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