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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Jan 08. 2024

안 친한 사람에게 커피 사주기

퇴원하며 느끼는 온기




작년 여름부터 서서히 한겨울에 수술할 채비를 했다. 무지 외반증에 발목 인대 수술까지 조금 무리를 해야 하는 수술이다. 조금만 걸어도 발목 인대가 부어올라 압박붕대로 칭칭 감고 다녔다. 그리한 지 어언 십 년째. 어지간히도 잘 버텨 주었다.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하다. 무기한 파업을 선언한 나의 두껍고, 헐거워질 때로 헐거워진 인대는 벌이라도 주듯 나를 혹독하게 다그쳤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2023년 12월 21일 그해 들어 가장 추운 날.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곤두박질쳤다. "하필이면 수술하는 날 이리 추워?" 볼멘소리를 하며 아이보리색 내복을 입은 옆지기를 살살 달래 가며 집을 나섰다. 가뜩이나  빈속에 긴장까지 몸은 벌써 영하 3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외래 때는 간단하게 생각했던 수술이 MRI를 찍고 나서 많이 달라졌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쫓기지 않고 편하고 정교하게 수술하려면 마지막으로 수술해야 합니다." 담당 의사의 말이다. 수술이 길어질 것 같아 맨 마지막으로 수술시간이 조정됐다. 감사하면서도 걱정부터 앞섰다.





수면에서 척추마취로, 두 개 항목에서 네 개 항목으로 병명이 늘어났다. 두려워졌다. 옆지기가 걱정할까 봐 일부러 씩씩한 척 웃어 보였지만 표정과는 달리 천 톤의 쇳덩어리를 매단 듯 근심은 커져만 갔다. 불안과 걱정에 초연하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초연하기는커녕 조그만 잎새의 떨림에도 움찔하는 나약하디 나약한 하나의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다섯 시에 수술하고 오후 열 시가 넘어 정신이 들어온듯하다. 의술의 힘을 믿었다. 담당 의사의 저돌적인 자신감을 믿었고, 나의 희망과 가족들의 염려에 힘을 실었다. 나의 24시간은 흘러 흘러 새벽을 맞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짜릿한 햇살만이 병실로 달려들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 본다.






"오지도 않을 군걱정을 왜 그리 했나 몰라?" 어리석은 나였다. 이게 나였다.





옆지기는 휴가를 내고 입원 내내 병시중을 들어주었다. 예전에 수술하고 혼자서 입퇴원을 한 적이 있다. 많이 외롭고 슬펐었다. 두고두고 원망하니 이번엔 후한이 두려웠는지 먼저 간병 역할을 자처했다. 옆 환자는 돈을 주고 간병인을 쓰니 보기에도 불편해 보인다. 난 마음이 편해서 그런가 실실 웃어 보였다.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진통제는 가급적 자제했다. 약기운에 내 몸을 맡기기는 싫었다. "아주 아픈 수술인데 괜찮으세요?" 간호사들이 신기한 듯 여러 번 물어본다. 담당 의사도 며칠 지켜보며 이상한 환자 보듯 나를 쳐다본다. 아픔을 견딜 수 있었던 비장의 무기는 발목 통증으로 고통이 컸던 게 한몫이요, 옆지기의 진중한 보살핌이 두 몫이요, 다가올 꽃피는 춘삼월에 멀쩡한 발목으로 씩씩하게 걸을 나를 상상하는 희망이 세 몫이었다. 희망과 칭찬은 두 알의 타이레놀을 능가하는 불변의 진통제였다.





까탈스러운 옆지기는 입원 내내 밤잠을 설쳤다. 마지막날 보호자 침대서 굴러 떨어지기까지 했다. 잠결에 강시처럼 스르르 올라와 또다시 쪽잠을 청했다. 웃픈 현실에 서둘러 퇴원을 결심했다. 크리스마스 연휴라 담담 의사도 없고 진통제외에는 별다른 처방이 없어 두려움을 머리에 이고 하루 앞당겨 퇴원을 감행했다.





퇴원하려니 뭔 절차가 그리 많은지 아침부터 분주히 서너 군대를 다니며 목발에 보조부츠를 제작했다. 올 때는 캐리어 하나로 단촐하게 왔는데 갈 때는 짐이 서너 개나 추가되었다. 모든 짐은 옆지기 소관이다. 난 성난 자석인 양  온몸에 세상 모든 고통과 아픔을 끌어안고 뒤뚱거리며 목발을 짚고 있었다. 목발 짚는 연습을 오전 내내 했는데도 왜 그리 어설픈지 뭔가가 이상했다. '역시 처음은 힘든 거야!'





함께 했던 룸메이트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간호사실에 들러 두툼한 약봉지를 건네받았다. 옆지기는 보기에도 힘겨워 보인다. 어젯밤 굴러 떨어진 고단함과 축 늘어진 어깨에 걸쳐진 혼자 감당하기에도 힘들어 보이는 여러 개의 짐보따리. 핸섬보이였던 나의 옆지기는 며칠새 폭망한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간호사님 감사했어요" 인사를 건넸다. 간호사님도 우리 부부가 어딘가 어설퍼 보였는지 "제가 주차장까지 모셔다 드릴게요"한다. 극구 사양했다. 추운데 얇은 유니폼 하나 입고 분주히 움직이는 막내 간호사가 내심 안쓰러워 보였다. "종종 환자분들 주차장까지 모셔다 드려요" "그럼, 죄송한데 부탁 좀 드릴게요" 막내 간호사는 얼른 따라나서 휠체어를 밀어준다








역시 한파는 우리를 배반하지 않았다. 나의 애마도 지하서 지상으로 올라오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금방이라도 고드름이 달릴 것 같은 추위, 아무리 기다려도 올라오지 않는 애마. 엉금엉금 기어가는 시간들. 추위에 오돌오돌 떠는 간호사에게 미안해 말 건넸다. 짧은 찰나. '신랑과 떨어져 있어 일곱 살 아들을 혼자 돌본다고, 경단녀에서 병원일을 시작한 지 삼 개월 차, 힘들어도 아이 키우는 맛에 힘들지 않다고' 아주 추운 겨울날 그녀의 이야기는 벽난로 같았다. 고단함 속에 느껴지는 진실된 엄마의 사랑이랄까?





며칠을 냉골에 있었던 애마는 냉동창고서 갓 나온 동태꼴이다. 서늘한 냉기에 시동을 걸다 "자기야 간호사 고생했는데 커피 좀 뽑아다 주면 안 돼?" 어울리지 않는 교태에 옆지기는 흔쾌히 승낙을 했다. 사십 분이 훌쩍 넘는데도 피골에 상접한 옆지기는 보일 기미가 없다. 핸드폰도 차 안에 있다. '사고라도 났나?' 슬며시 걱정이 올라온다. '쓱을' 원망을 해 본다. 한참이 흐른 뒤에야 커피 네 잔을 들고 나타난다.





 "뭔 너머 사람이 그리 많은지.. 안 추워?" 그 와중에도 시동 꺼진 차에서 떨었을 나를 걱정한다. "얼른 올려다 주고 와, 커피 다 식겠다" 그 와중에도 커피 식을 걱정을 했다. 무사히 배달 완료.










'안 친한 사람에게 커피 사주기' 별일 아니다.



뒤에 오는 사람 문 잡아주기, 자리 양보하기, 인사 먼저 하기, 따뜻한 말 건네기. 내가 종종 실천하는 소박한 마음내음이다. 그리고 씩 웃는다. 자부심에 심취해서. 그리고 또 씩 웃는다. 혼자 행복해서.

내가 먼저 손 내밀어 친절을 베풀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생각날 때마다 이런 경험을 내어 본다. 베풂과 나눔을 경험해 본 사람은 자신이 더 행복하고 풍요로워짐을 안다. 투정 부리고 씩씩거릴 줄 알았던 옆지기는 마냥 즐거워 보인다. '행복감을 느꼈나?' 막내 간호사가 싹싹하고 이뻐서 일수도 있다.





친절을 베풀고 행복한 이유는 친절 자체보다 친절을 베푼 뒤 따라오는 '내 삶은 꽤 괜찮다'는 자부심이다. 마음에서 우러난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유능감. 남들에게 친절하면 나도 행복해진다는 고정불변 법칙이다. 친절은 강력한 쾌락이다. 유해한 쾌락보다 친절 같은 유쾌한 쾌락을 많이들 맛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연은 나에게 많은 것을 무상으로 선사하는데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 작은 감사만 했을 뿐. 좋은 생각과 소소한  친절,  먼저 손 내미는 베풂을 실천 중이다. 결국엔 나를 위해서. 몸과 마음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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