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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Oct 18. 2020

만 가지 킥 VS 한 가지 킥,
뭣이 더 중한가!

이소룡의 명언 분석

"내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만 가지 킥을 연습한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킥을 만 번 연습한 사람이다." 이소룡의 이 유명한 명언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나의 분야를 열심히 파고들어 명장 (달인, 고수 혹은 전문가)이 된 사람들의 인내와 집요함에 대해 존경심이 절로 들면서도 과연 그렇게 전문가의 길을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게 되는 문장이다.


I fear not the man who has practiced 10,000 kicks once,
but I fear the man who has practiced one kick 10,000 times.

이소룡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 말은 근거가 있는 말인가?


만 가지 킥 vs 한 가지 킥을 만 번 연습한 사람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한 가지 킥을 만 번 연습한다면 그 정확도와 예리함에 있어서 한 번 연습한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딱 그 행동 하나만 비교했을 때다. 실제로 누군가와 싸움이 일어났을 때, 과연 그 한 번의 정확한 공격으로 이길 수 있을까? 상대방은 어디에서 나를 공격할 줄 모른다. 내가 오른 발차기 하나를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 외의 허점을 노려 나를 공격할 수 있다. 다른 부분을 방어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오른발이 외의 다른 공격 방법에 익숙하지 않는다면 내가 아무리 정확하고 날렵한 오른 발차기를 훈련했다고 해도 이길 확률은 극도로 낮아질 것이다. 반면 만 가지 킥을 연습한다고 생각해보자. 몸을 다양하게 움직이고 다양한 근육을 활용하는 방법에 익숙해질 것이고 동작을 연결하는 방법도 터득할 수 있다. (심지어 뻔해 보이는 발차기 방법을 만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창의적이다!) 만 가지 킥과 한 가지 킥, 이 차이는 단순계와 복잡계 차이에 있다.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에서는 단순계(simplicity system)와 복잡계(complex system)를 "친절한" 학습환경과 "사악한" 환경라고 설명한다. 친절한 학습 환경은 체스, 포커, 골프, 테니스 등 동일한 패턴이 계속 되풀이해 나타나고 피드백이 극도로 정확하고 빠르게 이루어진다. 결과가 금방 나타나기 때문에 잘못된 점을 고치면서 다시 치는 연습을 여러 번 반복한다. 1만 시간의 법칙과 의식적인 훈련, 이소룡이 말한 1만 번의 한 가지 킥 연습이 이 친절한 학습환경 (단순계)에 해당한다. 사악한 환경은 금융이나 정치, 전염병의 추세, 날씨의 변화를 예측하는 부분에 해당한다. 이 환경에서는 게임의 규칙도 불분명하고 불완전하며 반복되는 패턴이 없을 수도 있거나 아예 있는 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너무 많은 것이 얽혀있어서 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바로 이 사악한 -복잡하고 변화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면서 표준적인 상황을 만들고 거기에 맞춰서 살아가려고 한다는 점이다. 단순계에 적용되는 기준과 규칙을 복잡계에 적용하려고 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변화무쌍하고 예측하지 못하는 세계를 친절한 방법(이미 규칙과 답을 알고 있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으로 접근할 때,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방어적이고 경직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기 때문이다.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골프가 아니며, 대개는 테니스조차도 아니다.
어느 누구도 규칙을 모른다.
당신 자신이 규칙을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규칙은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바뀌곤 한다.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데이비드 엡스타인


뿐만 아니라 패턴 (협소한 전문성)은 AI가 인간보다 잘하기 때문에 우리가 한 가지 예측 가능한 분야를 잘 해내는 것만으로는 언젠가 빠른 미래에 대체당하기 십상이다. 반면에 AI는 규칙이 없고 완벽한 데이터가 갖추어져있지 않은 복잡계의 영역에서는 성과가 비참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단순계의 일을 컴퓨터에 맡기고 복잡계의 영역을 인간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인간의 추론 능력과 기계의 반복 학습이 합쳐져 최고의 성과를 보여준 사례가 있다.


2014년 열렸던 아부다비의 프리스타일 체스대회에서 우승한 팀은 사람 네 명과 컴퓨터 네 대의 조합이었는데, 이 팀 대표였던 앤슨 윌리엄스는 공식 체스 순위에 오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컴퓨터를 잘 다룰 줄 알았고, 많은 정보를 취합해서 전략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뛰어났다. 그는 동료와 체스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수들을 훑은 뒤 재빨리 컴퓨터에 특정한 수들을 더 깊이 살펴보라고 명령을 내리는 방법으로 우승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직접 겪어보지 못한 문제에서 대처할 수 있는 방법 모색하는 능력, 새로운 개념들을 연관시켜 다양한 맥락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폴리매스>에서는 그 능력을 "폴리매스"가 되는 것에서 찾는다. (*폴리매스: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분야에서 적어도 세 가지 일을 출중하게 하는 사람)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 다른 분야에 지식을 응용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필수적이고, 친숙한 패턴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패턴을 이끌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능력은 (아직까지) 컴퓨터가 대체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소룡도 폴리매스였다. 32세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 짧은 시기에 이미 천재적인 무술 고수이자 배우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깊이 있는 사상가이자 시인이었다. 다만 그가 말했던 1만 번의 킥 명언은 그가 살던 시대가 전문성을 강조했고 실제로 그것이 성공의 길로 통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맞았지만 더 복잡해지고 인공지능이 발전한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고 감히 말해본다. 


변화가 없는 세상이라면 이러한 과정은 아주 효율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변화가 가장 중요한 속성이 된 세상입니다.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서는 표준적 상황이라는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가 어느 길로 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대신에 우리가 앞으로 어디로 길을 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여섯 색깔 모자> 에드워드 드 보노


물론, 한 분야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갈고닦아야 하는 시기는 분명히 필요하다. 다만 그 기술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연결하고 통찰하는 도구로서 말이다. <폴리매스>의 저자 와카스 아메드는 식이 얕아도 넓게 알면 폴리매스가 되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말한다. 당장 진정한 의미에서 성과를 내는 폴리매스가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일단 얕고 넓게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모든 경험은 체험한 시간이 아무리 짧아도
(그 사람에게 새롭게 느껴질수록)
사생활에서나 직장생활에서
몸과 마음과 영혼이 원숙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재료가 된다. 
돈벌이가 되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고작 몇 분밖에 걸리지 않는 일에 돈과 시간을 쓴다는 이유로 스카이다이빙을 단념해야 할까? 직접 책을 쓸 것도 아니고 공부해서 박사 학위를 딸 것도 아니라는 이유로 문화사 책 읽기를 단념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은 이 질문에 고개를 저을 것이다. 모든 학습 경험이 그들의 삶에 중요하고, 소소하게 혹은 엄청나게 개인이나 사회에 유익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대가 많기에 그렇다. 요컨대 삶의 경험을 다각화하면 삶이 매우 다채롭고 풍요로워진다. -<폴리매스>, p.256-257


이것저것 하다 보면 자신이 집중하고 싶은 것을 찾게 되고, 그러면 잘하게 될 것이다. 이소룡이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위 명언을 이렇게 바꾸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만개의 킥을 하다가 그중 자신에게 잘할 수 있는 몇 가지 동작을 찾고, 그 몇 가지를 오천 번씩(각자의 능력에 맞게) 집중해서 연습해 보라고. 그리고 반드시 다른 운동과 다양한 분야를 시도해 보라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무관한 것 사이에서 유사성을 찾아내 연결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융통성과 적응력이다. 그것이 우리가 많은 책을 읽어야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유발 하라리가 주장하듯이 급격하게 바뀌는 노동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불가피한 이직에 대비하는 것이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꼭 필요한생존 전략이 될 것이다. 우리는 21세기의 삶이 가진복잡성을 깊이 이해하고이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불행히도 현재의 교육제도는 이 문제를 다룰 역량이 없다. - <폴리매스>


#씽큐온 #씽큐ON6기 #체인지그라운드 #폴리매스 #늦깎이천재들의비밀 #이소룡


*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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