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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Mar 21. 2021

와 이게 가능하다고?

웃음이 가진 놀라운 초능력

 위의 사진은 미드 <뉴스룸>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한 방송국의 메인 뉴스 앵커가 여자에게 치근덕거리다가 와인 세례를 받았다는 가십 기사가 나자, 팀원들이 단체로 컵에 물을 준비해서 끼얹은 것이다. 단지 "재미있을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팀원들은 보스에게 물을 뿌리는 이벤트를 준비했고, 놀랍게도 이 물세례의 주인공은 "떻게 감히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역정을 내지 않았다. 짜증 나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물세례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그는 물세례에 대한 불만이 아닌 가십 기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와... 이게 가능하다고?!

(이미지 출처: <뉴스룸>, HBO)


우리나라에서 상사한테 장난으로 물을 끼얹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부하 직원이 팀장에게 물을 끼얹는다고? 그 장면을 상상한다고 해도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큰 기업에서 그런 일이 생긴다면 바로 그 직원은 해고가 될지도 모른다. (내가 그 당사자가 된다고 상상해도 당황스럽다) 하지만 위 에피소드는 미국의 문화와 우리나라 정서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시청하던 "한국인"이었던 나에게도 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핵심은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저 팀의 가진 '안전한 문화'였기 때문이다. 안전한 문화란, 이렇게 하더라도 나는 회사에서 잘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물세례를 받은 당사자가 팀원들이 자기를 미워하고 조롱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믿음, 뉴스 시청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심각해 보이는 문제를 가벼운 장난으로 만듦으로써 '우리는 괜찮다'라고 넘어가는 여유다.


유머는 다양한 방법으로 상황을 유연하게 만든다. <유머의 마법>에 소개된 여러 에피소드에서 나에게 가장 리마커블 했던 사건은 1992년 벌어졌던 사우스웨스트 항공과 스티븐스 항공의 분쟁이다. 당시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똑똑하게 비행하라 Just Plane Smart" 슬로건을 사용했는데, 그 슬로건은 이미 스티븐스 항공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소송과 분쟁으로 휘말렸을 일을 스티븐스 항공의 CEO는 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 문제를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CEO, 허브 켈러허에게 팔씨름 대결로 해결하자고 도전장을 낸 것이다. (팔씨름 영상 보러 가기)


와... 이게 가능하다고?!

두 CEO는 4,500명의 관중 앞에서 실제로 팔씨름을 했다. (이미지 출처: 유튜브_southwestairchive)


당연하게도 훨씬 젊었던 스티븐스 항공사의 CEO인 커트 허월드가 승리했고, 커트 허월드는 이 슬로건을 함께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에서는 대신 스티븐스의 직원들을 위해 맥도널드 쿠폰을 주기로 했다. 이 기이한 이벤트로 인해 스티븐스의 직원들은 (자신들의 CEO가 투혼을 담아 훈련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올리는 것을 보면서) 더 결속하게 되었고, 양 측은 불필요한 소송비용을 아꼈을 뿐 아니라 세상의 주목을 받으면서 어떤 광고보다 효과적인 브랜드 광고를 할 수 있었다. (사우스웨스트는 이 행사로 600만 달러를 더 번 것으로 추정되고, 스티븐스 항공은 그 기간 수익이 1억 달러 넘게 치솟았다) 유머와 웃음은 이렇게 분쟁을 놀라운 방식으로 해결해주고, 성과를 가져다준다.


하지만 웃음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바로, 상대방이 내 장난을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커트 허월드가 팔씨름으로 승부를 내자고 제안했을 때, 사우스웨스트 항공에서 코웃음으로 응대하거나 무시했다면 어땠을까? 스티븐스 항공의 자존심은 하락하고 분쟁은 더 격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커트 허월드가 과감한 제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항공사'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CEO 허브 켈러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장난을 받아줄 수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사우스웨스트는 허브 켈러허의 말대로 '웃기는 항공사'로 유명하다. (유튜브에서 'southwest funniest'로 검색하면 개그맨 뺨치는 승무원들의 기내방송들을 찾을 수 있다) 다음은 내가 찾아본 한 기내방송 멘트 중 일부이다.


“승객 여러분, 잠시만 집중해 주시는 척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비행기는 금연입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고 싶으시다면 비행기 날개 위에 있는 라운지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흡연 중 감상하실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입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한 기내방송 중


만약 분쟁의 상대가 사우스웨스트가 아니었다면 스티븐스는 다른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진짜 웃음은 장난을 치는 본인만 재미있어서는 안 되고, 상대방의 허용이 있어야 가능하다. 반대로 말하면 모든 웃음의 시도가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모두가 생각하는 '적절함'의 정도는 스펙트럼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한 이야기라도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특히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비하하려고 하거나, 너무 진실을 직설적으로 언급해서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유머의 마법>에서는 이것을 "유머의 회색지대"라고 부른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무엇이 직장에서의 유머 사용을 막는지 물었을 때 많은 이들이 무심코 선을 넘는 데 대한 두려움을 꼽았다. 이런 걱정은 할 만도 하다. 직장에서 부적절하거나 공격적인 유머는 관계를 강화하기보다 약화하고 직장 내 갈등을 해결하는 데 방해가 된다. -<유머의 마법>, p.243


<유머의 마법>의 저자 제니퍼 에이커는 유머의 회색지대가 혼란스럽고 골치 아프며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이것은 융통성 없는 규칙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회색지대를 살피기 위해 (유머를 실패하지 않기 위해) 세 가지를 점검하라고 말한다.


1. 진실을 확인하라: 유머를 제거했을 때도 여전히 공유하고 싶은 진실인가

2. 고통과 거리를 고려하라: 나는 이 유머의 대상과 충분히 가까이 있는가? 나는 고통의 근원을 개인적으로 충분히 알고 있는가? 그 고통에 관해 농담할 자신이 있는가?

3. 공간을 읽어라: 사람들이 농담을 받아들일 기분인가? 고려해야 할 문화적 차이나 다른 상황이 있는가?


2013년 시즌9로 종영한 미드인 <The Office>는 "유머의 회색지대"를 잘 보여준다. 시즌 1에서 지점장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마이클은 노골적으로 인종 차별적인 모습을 보이고 성적으로 직원을 괴롭히기도 하고, 갑자기 직원 책상으로 가서 미친 듯이 책상을 어지럽히며 이해 안 가는 행동을 했다. 시즌 1에서 마이클이 구사했던 공격적인 유머들은 위에 언급된 세 가지를 점부 벗어나 있었다. 시청자들의 냉담한 반응의 원인은 영국 원작의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분위기가 미국으로 가지고 올 때 과장이 더해지면서 그런 상사의 행동에 대한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즌 1은 최악의 시즌이라는 혹평을 받았고 다음 시즌이 불투명했다. 겨우 시즌2를 만들게 된 제작진은 분위기와 유머의 톤을 대대적으로 바꾸었다.


이런 변화를 통해 시즌1에서 스스로 세계에서 최고의 상사라고 자부하던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마이클은 시즌을 거듭하며 모두에게 진심으로 사랑받는 보스가 되었다. 시즌 종영 이후 5년이 지나서도 2018년 넷플릭스 전체 콘텐츠 조회수의 7.19%를 차지하며 시청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진 출처: <The Office>)


유머의 회색지대가 허용 범위에 들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진정성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마이클 스캇이 세계 최고의 보스가 될 수 있는 5가지 이유" 라는 한 칼럼에 그 이유가 나와있다. 그는 누구보다 직원들의 안위를 걱정했고 그들의 일자리를 지켜주었다. 정리하면, 직원들과 시청자들이 그의 심한 장난이 우리를 깎아 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끼고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유머는 서로의 안전을 보장하는 분위기에서 진짜 공감하는 재미가 된다. 다시 글 초반의 상사가 물세례를 받았던 <뉴스룸>의 에피소드로 돌아가 보자. 직원들은 그 장난으로 자신이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다는 위험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상사가 유머와 장난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유연성의 신호다. 이 신호는 '우리는 가깝고 안전하며 미래를 함께한다'는 메시지를 공유하는 소속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소속감을 만들고 싶다면, 선을 넘는 위험을 감수해 보자. 특히 당신이 관리자의 위치에 있다면 더욱 그래야 한다. 유머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어 보자.


오히려 그런 회색지대를 항해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문화적, 개인적 변화에 따라 계속 교정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으며,
우리가 구사하는 유머의 영향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유머를 강력한 도구로 사용할 때,
그것은 해로운 고정관념과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밝힐 수 있다.
엄청난 유머에는 엄청난 책임이 따른다.
좋은 일을 위해 유머를 써라.
-<유머의 마법>,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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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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