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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Aug 20. 2019

왜 불길이 타도록 그냥 내버려두었을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올해 1월 초에 있었던 강연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350명이 꽉 차게 모인 큰 행사였고, 나는 전체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사건은 발표자들의 스피치 시간, 발표자가 교체되던 순간에 일어났다. 발표자가 준비해 온 ppt가 열리지 않았다. 사회를 처음 진행하던 담당 PD님은 급하게 자신의 메일함으로 들어가 발표자료를 다시 다운 받았는데 어떤 문제인지 ppt는 열리지 않았다. 몇 분 동안 정적이 흐르며 많은 사람들이 어색하게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당황한 사회자는 노트북 연결선을 빼지 않았고, 350명의 사람들은 큰 화면으로 우리의 적나라한 카카오톡 대화를 원치 않게 보게 되었다. 내용은 전에 발표했던 발표자에 대한 내용이었는다. "너무 길어지니 끊어주세요." 이런 대화가 적혀있었던 것 같다. 강연장 뒤편에 있던 나는 식은땀이 나는 등줄기와 화끈거리는 얼굴을 동시에 경험했다. 영원 같았던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 팀장이었던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뭐였을까? 부끄럽지만 동료에 대한 책망이었다. 


왜 사전에 ppt를 열어보고 확인하지 않은 거지?!!


<콘텐츠의 미래> 가장 앞부분에는 옐로스톤 Yellowstone 화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산불이 위의 나의 상황에도 교묘하게 일치가 된다. 당시 산불이 난 후 사람들이 원인을 어떻게 파악하고 분석을 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그 양상이 어디에 비유를 해도 다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다. 문제 발생 시 사람들이 전후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보편적으로 올바른 해결책(=뇌피셜)에 따라 상황을 해결하려는 모습이 그렇다. 불이 나면 일단 꺼야 한다고 생각하고, 불을 낸 사람과 불을 끄지 않은 담당자를 비난하는 모습은 내가 전후 사정을 들어보지 않은 채 당시 바로 코드를 뽑지 않은 사회자와 ppt를 확인하지 않은 담당자를 (마음속으로) 질책하던 내 모습과 꼭 닮았다. 


1988년 옐로스톤 화재


1988년 발생했던 옐로스톤 화재는 담배꽁초와 편자에서 튄 불꽃, 서로 다른 장소 두 곳에서 아주 사소한 원인으로 시작했지만, 거의 한 달이 지나 두 건의 대형 화재가 휩쓸고 간 자리는 전체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20%, 1821 제곱킬로미터나 되었다. 주민들은 옐로스톤의 감독관 로버트 바비를 그의 이름을 풍자해 '바비큐'라는 현수막을 내 걸었고, 당시 모든 뉴스 매체들은 이 화재의 책임을 국립공원관리국에 돌렸다. 


왜 불길이 타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단 말인가? 


수십 년이 지나 엘로스톤 화재의 원인과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이 점차 달라졌다. 1) 불이 난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1988년 여름은 112년 만에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히 건조했다. 옐로스톤의 화재를 키운 원인은 담배와 편자가 아니라 건조함이었다. 2) 불길이 타도록 내버려두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책임자였던 바비는 화재가 '식물 종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여러 방법 중에서 적용하기 가장 쉽고 비용이 저렴하며 자연스러운 방법'이라는 여러 보고서를 통해 국립공원 화재 대응정책을 "타도록 내버려두자"고 정한 것이다.


실제로 화재 후의 옐로스톤은 폐허 상태였지만, 나무들은 천천히 썩어가며 화산토에 영양분을 공급했다. 썩은 나무들은 새와 곤충들에게 안식처를 공급했다. 수십 년 전에 전문가들이 예측한 대로 새롭고 다양한 사시나무들은 자신보다 키 높은 나무들이 사라진 환경에서 마음 놓고 자랐다. 수십 년 동안 옐로스톤에서 자취를 감췄던 희귀한 식물과 동물들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2015년 국립공원 방문객은 1988년보다 60퍼센트 증가했고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화재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어느 공원관리인의 말처럼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재탄생해서 재건을 거쳐 활기를 되찾았다."


(출처: eideard.com)


위 옐로스톤 화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두 가지다. 올바른 결정은 전후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과 현재의 아픔보다 내일의 혜택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강연장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우리는 너무 안일했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별 일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그 당시 우리는 행사 전체 프로세스에 대한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강연 진행에 있어서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모두가 비전문가였고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내가 직접 사고를 칠 수도 있었다) 담배와 편자 같은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었고, 우리는 숲이 건조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했다. 당장 우리가 할 일은 그 실수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막는 것을 넘어서 현재 문제가 무엇인지 진단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문제를 직시함으로 인해 다음 행사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생각해보고 전 시스템을 점검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올해 현재까지 매 행사마다 약 130명이 참여하고 있는 '빡독'을 6회째 큰 문제없이 치렀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질문을 두고 사람들은 격렬하게 논쟁을 벌인다. 결국 누군가가 비난을 받고, 누군가가 해고당하고, 누군가는 비판을 받는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이 일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남 탓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때로는 제대로 마주할 수 없을 정도로 자괴감이 들 수 있지만 그 과정을 제대로 마주해야 더 큰 실패를 피할 수 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바로 보는 것이다. 


참고: 콘텐츠의 미래


#씽큐베이션 #체인지그라운드 #콘텐츠의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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