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1분은 뛸 수 있잖아?!
나는 올해 2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전에는 달려본 적이 없었다. 나는 운동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했다. 엄마는 내 태몽으로 1000년 먹은 거북이 꿈을 꾸셨다는데, 친구들은 과하게 공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남편은 나를 나무늘보라고 불렀다. 나는 내가 느리게 움직이는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항상 뛰지 않고 천천히 걸어 다녔다. 나는 달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38년을 살았다.
그런 내가 뛰어보기로 결심한 것은 올해 2월 <순간의 힘>의 조시 클라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다. 달리기를 좋아해 본 적 없었던 그는 자신이 조깅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스러움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임계점을 넘을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소파에서 5K로 couch to 5K'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9주일 간 매주 3번의 달리기를 통해 소파에만 붙어있는 게으름뱅이들이 5km를 달릴 수 있도록 돕는다. 처음은 20분에 걸쳐 60초 뛰고 90초 동안 걷는 것을 반복한다. 내가 달리기를 결심한 것은 이 부분, 아주 작은 목표였다.
아무리 내가 달리기를 못해도 60초는 뛸 수 있잖아?!
그렇게 60초 뛰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1분이 최대였다. 숨이 턱까지 찼고 고작 1분을 뛰고 근육통이 왔다. 그런 내가 너무 한심스러웠다. 달리면서도 내가 왜 지금 달리고 있는지 매 순간 멈추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러다 시간이 아주 조금씩 늘어났고, 정말 9주 차만에 나는 5킬로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달리고 있다. 그 사이 달리는 것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고, 기록도 놀랄 만큼 좋아졌다. 비슷한 거리 1킬로당 평균 페이스가 8분 33초에서 6분 16초로!!
달리기를 하면서 많은 좋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마냥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매일 저녁마다 오늘 달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목표했던 5km 마라톤이 끝나자 달려야 하는 이유가 사라져서 한동안 쉬었고 여름에는 덥다고 쉬었다. 하지만 가장 큰 장애물은 여전히 달리기가 느리고 힘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지금껏 달려온 것이 아까워 이것을 어떻게든 습관으로 유지하고 싶었다. 정말 꾸역꾸역 달렸다. 그런데 좀처럼 발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내게 변화가 찾아왔다. 7월의 어느 날 딱 1킬로만 아주 빠르게 달려보자고 뛰었는데, 생각보다 쉬웠던 것이다. '어? 조금 더 빨리 달려봐도 되겠는데?' 그 순간부터 급속하게 자신감이 상승했다. 달릴 때마다 조금씩 더 빠르게 달려보기로 결심했고 9월 말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5분대를 기록했다!
6분 46초 -> 6분 40초 -> 6분 36초 -> 6분 19초 -> 6분 13초 -> 6분 4초 -> 5분 52초
이것은 나에게 단순히 기록 경신의 의미가 아니었다. 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분야에서도 꾸준히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달리기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자신이 달릴 수 있다는 믿음,
하다 보면 실력이 늘 것이라는 믿음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p329
언제부터인가 지난번보다 더 잘 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뭐든지 잘 해내고 싶은 욕심과 나 자신에 대한 아주 강한 잣대 때문이었다.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절대 쉬면 안 돼! 중간에 걸으면 실패한 거야!') 이런 마음이 "달리기= 힘들다"는 공식을 만들었다. 즐거움이 점점 사라졌다.
내가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스스로를 동기부여하기 위해 여러 달리기 관련 책들을 찾아서 읽었다. (달리기에 관한 책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마음껏 달린다>를 쓴 언론인 리처드 에스크위드가 달리기에 푹 빠졌다가 즐거움을 잃어버린 케이스다. 시간을 측정하면서 더 빨리, 더 멀리, 더 잘 달리려고 하다 보니 달리기가 보람 없이 힘들기만 하고 어떤 면에서는 일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지금 내가 그랬다. (심지어 나는 달리기 하수인데!!) 그런데 별 기대 없이 읽었던 한 책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에서 나에게 정말 필요한 조언을 들었다.
1) 천천히 달리자
걷는 것보다는 빠른 선에서 최대한 느리게 달리자.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고 본능적으로 속도를 높이고 싶겠지만 참아야 한다. 처음부터 너무 빨리 달렸다가 일찍 부상을 당하면 운동이 싫어진다. 그럼 안 하느니만 못 하다. 관건은 달리기가 좋아질 때까지 여유 있게 달리는 것이다. 아프거나 몸이 제발 좀 멈추라고 비명을 지르면 달리기가 좋아질 리가 없다.
2) 꼭 남들과 똑같은 목표를 가질 필요는 없다
달리기라고 해서 마라톤, 극기, 식스팩 만들기만 생각하지 말자. 그 코스로 가는 사람들도 있고 일주일에 두 번 공원을 달리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마라톤을 하는 것도 훌륭하다. 하지만 꼭 그것을 최종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 괜히 다른 러너와 비교하면 달리는 재미만 떨어진다.
3) 아무도 당신을 안 본다
처음에 뭐가 제일 무서웠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낯선 사람에게 비웃음을 사는 게 제일 무서웠다. 내가 느릿느릿 달리는 것을 보고 초짜라고 손가락질하고 경적을 울릴 것 같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아무도 나한테 눈길을 주지 않았다.
4) 달리는 게 항상 쉽지는 않다
처음에는 달리기가 고생스러운 것이다. 일시적으로 달리기가 싫을 수도 있다. 아니, 제법 오랫동안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달리기가 가치 없는 일이 되진 않는다. 달리기는 일처럼 느껴져야 하고 꾸준히 해야 한다. "가치 있는 일은 원래 고생스러운 법이다."
내가 달리기를 막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너무 느리다며 모두가 쳐다볼 것 같았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니! 최대한 느리게 달려도 된다니!! 꼭 마라톤을 뛰어서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니!!! 그리고 아무리 잘 달리는 사람도 달리기가 어려울 수 있다니... 나만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감정들이었는데 모두가 다 그렇다고 아주 적절한 위로를 받은 것 같다.
만약에 무슨 이유에서든 달리기 효과가 사라진다면
주저하지 말고 달리는 방법을 바꾸거나 아예 달리기를 중단(헉!)하자.
혹시 지금 그러고 있다면 딱 몸이 좋아하는 만큼만 달리자.
누구에게나 달리기는 언제나 지겹고 따분하고 힘든 일인 듯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는 매력적이다. 내가 8개월 동안 달리기의 끈을 놓치지 않았던 것도 그 속에 분명히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 달리면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풀벌레 소리와 풀 냄새,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달빛,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모든 시각과 청각 촉각이 하나가 되어 합주하는 느낌이다. 기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벨라 마키가 조언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달리기의 즐거움을 느껴봐야겠다. 힘들 때는 멈추고 걸으며 주변 풍경을 감상해 봐야겠다.
달리기를 꾸준히 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삶을 대하는 태도나 성숙도가 확실히 다름을 느낀다. 벨라 마키에게서도 그런 삶의 깊이가 느껴진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인생 선배한테 아주 중요한 삶의 교훈을 배운 것 같은데, 그 중에서도 한 구절을 찾는다면 이것이다. 아래 세 가지 메시지는 달리기 뿐 아니라 모든 일에도 적용된다.
하지만 그때 그런 시절을 겪으면서 깨달았다. 달리기는 내가 장기적으로 해야 할 활동이라는 것을 달리기가 항상 재미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꼭 오래 달려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매일 똑같은 코스를 똑같이 달리는 것의 효용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p. 245
1) 장기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받아들이는 것.
2) 내가 선택한 이 일이 항상 재미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3) 매일 똑같은 일을 똑같이 해 내는 것의 효용
아직 한 번도 달려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달리고 있지만 침체기에 빠진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마음이 아파서 돌파구를 찾는 사람들, 인생에서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물론 변화는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치 있는 일은 원래 고생스러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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