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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Dec 10. 2019

폭탄을 미루다가는 다 같이 망한다.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따져볼 것, 한가지 

작년에 OO증권에서 직원의 실수로 우리사주 조합원인 직원 약 2천 명에게 28억 주를 잘못 배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100주를 가진 직원의 경우 배당금 10만 원을 받았어야 하는데, 주식을 10만 주 받은 것이다. 이렇게 원래 주식의 30배의 유령주식이 뿌려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배당 오류로 받은 이 주식 중 0.018%를 직원 16명이 주식시장에서 매도한 것이다. OO증권은 4일 후로 다가온 결제일 전에 주식을 급하게 매수해야 했다. 회사는 직원들이 매도한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매수해야 했고 가격 차이만큼 손해를 봤다. 이 사건을 두고 출렁였던 주식시장의 여파나 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은 측정이 불가하다.


이 사건을 보고 사람들은 제일 먼저 누구를 비난했을까? 


이런 기사를 보면 누구나 직원들에게 분노하지 않을까? (출처: 한국일보)


가장 비난받았던 것은 주식을 매도한 직원 16명이다. 신뢰를 중요한 가치로 여겨야 할 증권사 직원으로서의 역할을 망각했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회사는 이 직원들에게 손실에 대한 청구를 하면서 민사 및 형사 소송이 진행 중이다. 


행위자와의 관계가 멀수록
우리는 더욱 그들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 <무엇이 성과를 만들어 내는가> 중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시스템 오류를 두고 무엇이 더 문제였는지 묻는다면 당연히 시스템이다. 무엇이 먼저 선행되었는지 보면 된다. 없는 주식을 배당하고 없는 주식이 유통될 수 있는 시스템? 그렇다면 증권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주식을 찍어내고 팔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시스템만을 탓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주식을 팔 수 있었는데 팔지 않은 직원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직원 16명의 윤리 문제는 일단 두고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보자. (16명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사후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시작은 우리가 과실 편향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다.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 문제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인간의 선택이 그 사람의 문제 (성격, 개인의 가치와 신념, 교육에 따른 결정)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사실 인간의 선택은 주어진 상황에서 아주 작은 변화(넛지)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우리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사람이 아니라 상황에서 문제를 찾는다면 사후대책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럽의 연구팀은 위의 논문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관리자의 대응 방법을 살펴보기 위해 가나의 광산과 공장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사고를 조사했다. 관리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더 과실을 물었을까? 그리고 어떤 사후대책을 세웠을까?


여기서 잠깐, 희생자의 업무 환경에 매우 유사한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은 6%만이 사고 책임이 희생자에게 있다고 응답한 반면, 희생자의 업무 환경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던 동료 그룹에서는 44%나 희생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업무환경이 달랐던 동료보다 더 다른 작업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희생자에게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더 크다.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의 저자는 그 상황에 처한 사람을 비난하는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관리자라면, 전 직원을 상대로 안전 교육을 실시하거나 안전 수칙을 따르는 데 한해 보너스를 지급하는 방법을 썼을 거라고 말한다. 언뜻 봤으면 아주 평범한 방안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위 방안은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시선을 사람이 아닌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면? 위험 지역에 노란색 페인트를 칠하거나 생산 과정을 개편하거나 기계 설비 점검을 더욱 철저히 실시했을 것이다. 더 좋은 구조적인 해결 방안은 늘 존재한다. 책에는 여러 가지 '잘못된 비난'의 예시에 대해서 언급한다.


만약 당신이 이 평가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면, 그래서 수업 내용을 개선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수업 환경을 탓하지 않도록 마음먹었기 때문에 환경을 바꾸는 방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강사나 학생의 잘못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게임을 바꾸지 않고 플레이어를 바꾸려 하는 것이다.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 p.121

 

OO증권의 대표는 "이번 사고로 투자자뿐 아니라 수많은 일반 국민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모든 임직원이 크게 반성하고 있다"며 "뼛속의 DNA까지 바꾼다는 각오로 어떠한 고통이 따르더라도 혁신방안 하나하나를 충실히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회사 차원의 여러 가지 후속 조치들이 쏟아졌다. 신 윤리 강령, 직원 교육, 교훈을 담은 역사관 메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임원의 자사주 매입, 투자자 보호기금 설립과 기금 출연, 고객 권익 확대 방안... 자세히 보자. 언뜻 보면 괜찮아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회사가 누구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는지 볼 수 있다.   


내가 속한 회사에서도 사건은 계속 생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매주 직원들의 업무를 평가하는 관리자가 된 후로, 사건의 1차 책임자가 내가 되면서 이 책은 나에게 바이블 같은 책이 되었다. 문제는 언제든지 생긴다는 것을 인정하자. 중요한 것은 이후의 대책이다. 


사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플레이어가 아니라 게임을 바꿔야 한다.



#무엇이성과를이끄는가 #씽큐베이션 #실력은어떻게만들어지는가 #씽큐베이션3기 #1주1독1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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