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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Feb 04. 2020

연결이 만들어지기 위한
핵심 요소

실학 박물관에서 발견한 메시지

지난주 금요일 실학박물관에 다녀왔다. 여길 가게 된 것은 날씨가 풀리는 지금 두물머리에 가고 싶은 데 갈 사람이 없다는 친정엄마 덕분이다. 과감하게 휴가를 내고 간 그곳에, 멀리 실학박물관이 보였고 점심시간까지 시간이 남았을 뿐이다. 그때는 몰랐다. 딱 봐도 지루해 보이는 이 곳이 이렇게 재밌는 곳인 줄은!!


실학박물관에 입장하자마자 내 눈을 번쩍 뜨게 하는 단어가 있었다. 아, 백탑파가 실학자들이었지! 아는 만큼 보인다. 갑자기 아는 이름들이 등장하자 모든 것이 흥미로워졌다.


'백탑'은 실학이 시작된 상징적인 곳이다(좌)/ '책만 보는 바보'에 감명받은 씽큐2기 은찬님이 직접 방문한 '백탑'(우)


백탑이 반가웠던 이유는 지난 씽큐베이션 2기에서 첫 책으로 읽었던 <책만 보는 바보> 덕분이다. 이 책은 200년 전, 왕족의 후손이지만 서자였기 때문에 신분제 사회 속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책만 보며 살았던 이덕무가 주인공이다. (책을 구하기 힘든 그 시절에!! 이덕부는 평생 2만 권이 넘는 책을 봤다고 한다) 이덕무가 백탑이 있는 동네(지금의 인사동)로 이사를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가 그곳에서 만난 평생지기 벗들은 모두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로 불리는데 그들이 백탑 근처에 모여 살았다고 해서 "백탑파"라고도 불렸다. 이 백탑에서 맺은 인연은 아주 특별했다. 서로의 성장을 진심으로 도왔고, 그들은 서로를 위하는 깊은 정이 있었다. 


그 순간 우리들의 가슴에는 큰 물결이 일렁였다. 박제가의 짙은 눈썹은 더욱 꿈틀거렸다. 하늘, 땅, 지구의 일은 워낙 실감이 안 나 어리둥절해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리가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새롭게 다가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그리고 이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이 소중한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는 뿌듯한 느낌이었다. -<책만 읽는 바보>, p.158


마침 <친구의 친구>를 다시 읽던 중에 백탑파를 만나니 새삼 그들이 얼마나 이 인적 네트워크를 잘 활용했는지 새롭게 느껴졌다. 네트워크를 잘 활용했다는 것은 서로에게 새로운 정보와 기회를 제공해 주고, 사일로(분야나 조직 간 소통이 단절되어 격리된 공간)에 갇혀있지 않으며 서로의 성장을 독려한다는 의미다.


헤밍웨이를 도와준 거트루드 스타인의 파리 살롱이나
현대 벤처 기업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서밋 시리즈 이벤트처럼,
당신은 그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친구의 친구>, p.141


실학파가 신분과 세대를 넘어 교류한 모습을 보면 깨달음을 넘어 감동을 준다. 백탑파에서 서얼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정조에게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관직의 기회까지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분을 넘어서 교류한 것은 백탑파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3월에 개봉하는 영화, <자산어보> 중 한 장면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백탑파를 비롯한 많은 실학자들이 모두 역모로 몰려 죽거나 귀양을 가거나 관직에서 물러났는데, 당시 흑산도로 귀양을 간 정약전은 그곳에서 <자산어보>를 썼다. <자산어보>는 한국 최초의 어류도감으로 정약전이 신분을 넘어 흑산도에서 물고기를 잘 아는 청년 어부, 창대를 만나 그와 함께 쓴 책이다. 또 정약전은 그곳에서 <표해시말>이라는 홍어 장수 문순득의 표류기도 기록했다. 문순득은 풍랑을 만나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 광저우, 난징, 연경을 거쳐 3년 2개월 만에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그때 귀양을 와 있던 정약전을 만나 그의 이야기가 책으로 탄생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양반이 어류도감과 세계여행 책을 쓰다니!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 계속 검색하다 보니 이 이야기는 나만 모르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유명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이 두 책이 쓰여질 수 있었던 이유에 집중해보자. 이유는 두 가지다.


1) 신분과 나이를 초월해서 교류했던 정약전
=> 멘토: 선입견 없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자세

2) 정약전의 호기심을 이끈 창대와 문순득의 특별한 이야기
=> 멘티: 그들만의 독특한 이야기 (or 능력)


다시 말해서 연결이 이루어지려면, 주고받을 것이 있어야 창발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백탑파의 주요 인물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그때 그곳을 드나들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핵심 인물들(박지원, 홍대용, 유득공, 이서구, 이덕무, 박제가 등)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연결은 사실상 큰 유산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내가 실학박물관에 가서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메시지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1) 박물관은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일단 갔고, 백탑파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었으며 2) 실학박물관에는 보물 같은 이야기들로 넘쳐났기 때문이다. 이것도 연결이다.


약한 연결을 강조한 책, <친구의 친구>는 인맥을 쌓기가 불순하고 불결하다는 편견을 버리게 해 주는데 더할 나위 없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을 잘못 읽으면 연결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까 봐 염려된다. 제대로 연결이 되려면 나에게 실력이 있어야 한다. 담헌 홍대용 선생은 서자로 태어난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에게도 좋은 날이 꼭 올 것이니,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하며 자신을 갈고닦게.'

   


실력은 디폴트다. 실력이 있어야 제대로 연결될 수 있다.


#친구의친구 #책만보는바보 #씽큐베이션 #실력은어떻게만들어지는가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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