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둘, 그토록 원하던 엄마가 된 날…초복이가 태어나다
“아기 나옵니다. 3월 13일 오전 11시 41분 남자아이입니다. 응아아아앙, 으아아아앙”
눈물이 주르륵 흐를 줄 알았다. 열 달 동안 배에 품었던 이 세상 가장 소중한 아기를 만나던 날, 그 어느 날보다 담담하게 아기를 맞이했다.
수술장에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는 ‘응애’ 인줄로 알고 살아왔는데…세상에서 가장 작고 연약한 소리 말이다.
나의 초복이의 울음소리는 남달랐다. 방금 태어난 아기라고 하기엔 목청껏 ‘으아아아앙’ 울었다. 우렁찬 목소리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 시야에서 멀리 아기가 누워 있다. 깨끗하게 닦인 아기는 어느새 내 가슴에 올려졌다. 엄마 냄새를 맡게 하기 위한 것. 인형같이 너무나도 작은 아기가 내 곁에 있다.
“너로구나. 38주 6일 동안 엄마 배에서 힘차게 발차기를 하던 아기가 바로 너구나. 정말 반갑다. “
제왕절개 수술 하루 전날 병원에 입원했다. 일주일 전부터 병원과 조리원에 가져갈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었다.
캐리어 가득 짐을 싣고 남편과 함께 긴장된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4년간 머물렀던 우리의 신혼집은 이사를 앞두고 있어 매우 어수선했다.
3주 뒤 아기와 함께 돌아올 걸 생각하니 괜스레 뭉클했다. 세 식구가 되어서 말이다.
서울대본원 3층 산과. 남편과 나는 6인실을 선택했다. 일찌감치 입원 수속을 한 덕분인지 제일 안쪽 가장 넓은 자리를 얻었다.
입원 당일 태동검사와 내진, 초음파로 아기 상태를 확인했다. 이후 수술 전 3종 세트(제모, 항생제 테스트, 소변줄 꼽기)를 마쳤다.
블로그에 아프다는 후기글도 많았지만, 나는 별로 안 아팠다. 잔뜩 얼은 표정으로 간호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안 아프고 정말 참을만했다.
000 산모, 수술 준비 됐습니다.
내 이름이 호명됐고, 3월 13일 오전 10시 분만 대기실로 옮겨졌다. 그로부터 1시간 후 드디어 수술실에 들어섰다.
밝은 조명이 가득한 수술실엔 7~8명의 의료진이 분주하게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몸으로 척추마취에 들어갔다.
몸을 구부려 새우등을 만들어야 하는데, 허리디스크가 있는 나는 척추마취가 잘될지 무척 걱정이 됐다. 5~6번가량 등을 찌른 후 다리 아래부터 뜨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담당 교수님이 오셔서 수술 시작을 알렸다. 머리맡에는 마취과 교수님이 서서 모니터로 내 상태를 체크하면서 배 아래에서 펼쳐진(?) 수술을 지켜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버려! 버려! 버리라고!!!!! 뭐 하는 거야 지금!! 오염된 거잖아!!! 바닥에 던지면 되잖아. “
수술을 시작한 지 15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교수님의 언성이 높아졌다. 같이 수술을 진행한 담당의가 실수를 저질렀는지 정말 불같이 화를 내셨다.
긴장했던 마음이 더 쫄아들었다. 문득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자칫 생사가 오갈 수 있는 수술실에서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것. 그렇다, 나는 지금 수술 중이다.
“000 씨, 방금 놀랐죠? 수술은 지금 아주 잘 되고 있어요. 내가 마무리까지 할 테니 걱정 말아요.” 교수님의 누그러진 목소리가 들렸다.
수술이 시작된 지 20여분이 지났을까. 꿀렁거리는 느낌이 들더니 아기가 나왔다. 우렁찬 울음소리로 “엄마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얗게 태지에 둘러싸여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기는 매우 깨끗(?)하게 나왔다. 인형같이 작은 아기가 내 가슴 위에서 숨을 쉬었다.
아기가 나온 후 수면마취를 요청해 잠들었다. 깨어보니 대기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마취에서 깼는데, 옆에 산모가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깼는데 고통이 심했는지 ”살려달라 “고 울고 있어 나 역시 매우 무서웠다.
“여보, 아기 봤어? 너무 작지? 울음소리가 남달랐지? 목소리가 정말 크던데…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
분만실을 벗어나니 남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남편이 아기를 만났는지, 사진은 찍었는지, 그 순간 느낌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남편은 대기실에서 한참 동안 나를 기다렸다고 한다. 수술 후 회복실에서 한참을 머물러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무척 걱정이 됐다고.
입원실로 돌아와 정신을 좀 차리고, 남편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아기를 다시 만났다. 수술장 밖에서도 우렁차게 울어 순간 사람들이 몰렸다고 한다.
2023년 3월 13일, 3.39kg, 남아…
아기와 나 모두 건강하게 만나서 다행이다. 그토록 기다린 나의 초복이를 이렇게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