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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를 노래 한 곡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by 쁘띠프렌

내가 부를 노래 한 곡




♣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아버지와 사업상 파트너인 스가야 아저씨를 집으로 초대 한 날. 어머니는 한식과 양식을 호텔 요리사처럼 능수능란하게 요리해서 뷔페 한 상을 거 하게 차리셨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ほんどにおいしです.”

아리가또우 고자이마스. 혼또니 오이시 데스.


깍듯이 예의를 갖춰 인사하는 일본인에게 어머니는 가벼운 묵례로 답하시곤 음식을 건네셨다. 식사 후 아버지의 부름에 윤경과 동생들은 나란히 아저씨께 인사를 드리고 일본에서 가져오신 카스텔라와 초콜릿을 받았다.


“윤경아, 아저씨 앞에서 노래 한번 해보렴.”


TV 출현도 했다며 은근 딸 자랑하는 아버지의 요청에 부끄럼 없이 한 곡 부르고 나니 아저씨는 진지하게 일본 유학을 제안했다.


언젠가 탯줄을 잘라준 자식은 죽어서 무덤까지도 그 사랑이 이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갑자기 찾아온 산통으로 딸의 출산을 돕게 됐던 아버지는 윤경의 탯줄을 잘랐다. 그런 연유에선지 아버지는 유독 윤경에게 애정을 쏟고 애지중지하셨다. 더욱이 본인의 기질을 닮은 딸이 자랑거리도 만들어 주니 마냥 이쁘고 기대도 컸다. 1970년대 경제발전과 더불어 무역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한 시대를 앞서 미래를 예측하는 아버지는 재주 많은 딸의 장래를 위해 유학도 고려하고 있었다.


그날 밤.

거실 마루에 커다란 돗자리를 깔고 동생들과 나란히 누워 잠이 든 윤경은 잠결에 뭔가 심상찮은 부모님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M : “당신, 애 앞에서 칭찬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몸도 약한 애가 이것저것 다 잘하려니 기운이 달리잖아요.”

F : “그릇이 되니까 하는 거지. 날 닮아서 뭐든 하면 잘하지. 누구 딸인데, 역시 내 딸은 내 딸이야! 하하 ”

M : “여자애를 어디 타지에 보내요? 생각도 하지 마세요.”


어머니의 강경한 목소리에 이미 이야기의 결말은 예측됐다. 순간 윤경은 몸을 틀어 쌕-쌕 콧소리를 내며 잠든 척 시늉을 하곤, 다리에 걸쳐 있던 이불을 얼굴 위로 끌어당겨 푹 뒤집어썼다. 혹시라도 거친 숨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조심하며 손으로 입을 막고 질끈 눈을 감았다. 그렇게 밤새 뒤척거림으로 선잠을 자고 나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 부르지 못한 노래

윤경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부재를 오랜 기간 지인들에게 표현하지 않았다. 아니 설령 그들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온전히 내 편인 사람을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두려웠다. 오히려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내보이고 싶지 않아 더 많이 웃고 괜찮은 척 행동하며 지냈다.


몇 해 전. 윤경은 대학 후배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조문을 갔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초췌해진 후배 얼굴을 보며 왈칵 치미는 눈물에 고개를 돌렸다.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데 배웅하러 나온 후배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선배, 지금 내 나이에도 이렇게 힘들고 주체를 못 하겠는데 선배는 어찌 그리 의연할 수 있었어요?”

“글쎄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아.”

“그때 선배 모습이 선명합니다. 제겐 너무 커 보였거든요.”

“사람이 들고 난 자리는 떠나 보면 안다고 하더라고. 있을 땐 잘 몰라. 아무 일 없이 지내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나고, 그립고, 그렇지.”


꽃샘추위가 지나고 여의도 윤중로엔 벚꽃축제 기간이라 구경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만개한 벚꽃에 취해 모두 환호하며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완연한 봄날을 만끽하고 있었다. 윤경은 차창 너머로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손을 쭉 뻗어 바람결에 하르륵 떨어지는 벚꽃잎을 손바닥 위에 담아 보려 애썼다.

♣ 개와 늑대의 시간

‘봄’은 봄인 갑다.

공원에 알록달록 화사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커피를 내려 한 모금 입안에 머금고 창밖을 내다본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연못이 따사로운 봄 햇살에 스르르 녹아 반사되어 온통 은빛 물결로 일렁인다. 커피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커튼에 매듭을 지어 걸어 고정하고는 물끄러미 연못을 바라보다 뭔가 아쉬운 듯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곧이어 찰칵! 찰칵! 수차례 사진을 찍어 확인해 본다. 삐죽이 내민 입술에 못마땅한 마음이 고스란히 비치고 재차 사진을 찍어보지만 영 마뜩잖다.

“흠 마음에 안 드네. 저 예쁜 물결을 담을 수가 없다니. 쩝!”

식탁에 놓아둔 식은 커피를 홀짝이며 고개를 돌려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볼륨을 높인다. 어느새 거실 공간을 가득 메운 ‘You must believe in spring’ - Eddie Higgins의 재즈 선율이 흐르고 있다.

불 현 듯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수요일인가? 아! 목요일이구나.”

“치매 전조증상은 아니겠지? 이참에 화투라도 배워야 하나?”

“.. ....... ..... .. ....”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된 일상에서 잃어가는 언어유희.


개와 늑대의 시간.

한낮에 작열하던 밝은 태양 빛이 서서히 꼬리 감추듯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오늘은 이만인가 싶더니 고새 구름 뒤에 숨어 나 보란 듯 연보랏빛 도화지에 붉은 여운을 그린다. 펼쳐진 한 폭의 수채화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점. 점. 점.

사라져 가는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즈음. 여전히 내가 부를 노래 한 곡을 찾지 못해 어정쩡한 콧노래로 흥얼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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