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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그레토

분홍 벙어리장갑

by 쁘띠프렌


분홍 벙어리장갑






그해 겨울은 기상청 폭설 예보에 화답하듯 설국이었다.

“승객 여러분, 폭설로 진입이 어려워 이번 정거장에서 하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내려 주세요.”

승객들의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Y와 H는 얼른 버스에서 내렸다. 발목까지 눈이 차올라 어기적거리며 가까스로 보행자 도로로 빠져나왔다. 차창 너머로 보였던 눈부신 설 밭은 지나다니는 행인의 발자국으로 금세 흩뿌려진 먹물처럼 군데군데 어지럽혀져 있었다.

Y는 앵클부츠 위로 소복이 쌓인 눈을 탁! 탁! 치면서 H에게 묻는다.

“집에 도착하려면 족히 두 정거장은 더 가야겠지?”

“응. 난 괜찮은데 넌 괜찮겠어?”

Y는 고개를 까딱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H를 향해 방그레 웃었다.

“아 참! 잠깐만. 이것 좀 봐. 짜잔~!”

Y는 양쪽 호주머니에서 장갑 하나씩을 꺼내 양손에 씌우고 H에게 봐주라는 듯 흔들었다. 그녀의 분홍 앙고라 벙어리장갑은 새것이라 올올이 털이 살아 포실했다.

“자, 하나씩 나눠 끼우고, 한 손은 주머니에 쏘~옥!”

그녀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장갑 한 짝을 H에게 건넸다.

H는 멋쩍게 웃으며 건네받은 분홍 벙어리장갑 한 짝을 왼손에 끼우고 오른손으로 Y의 왼손을 잡아 코트 속에 집어넣어 살며시 포갰다.

집으로 가는 내내 Y의 오른손 분홍 벙어리장갑과 H의 왼손 분홍 벙어리장갑은 알레그레토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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