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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손맛

꼬부랑 할매의 콩나물무침과 감자조림

by 쁘띠프렌

그리운 손맛

부제 – 꼬부랑 할매의 콩나물무침과 감자조림




Am. 5

쓰 - 윽 쓰 - 윽 싸 - 악 싸 - 악 쓱-싹

어스름한 새벽. 어김없이 들리는 비질 소리에 잠이 깨고

반쯤 감긴 눈을 비비며 밖을 내다보면 꾸부정한 허리로 마당을 쓸고 계신 시외할머니가 보인다.

서른에 홀로 되시고 손주 넷을 키우며 맞벌이로 바쁜 딸네 집 살림을 도맡아 하신 할머니는 150센티도 안 되는 작은 키에 정갈하게 빗어 쪽을 진 머리에 은비녀를 꽂고 허리를 다쳐 ‘ㄱ자’ 모양을 한 굽은 등으로 집 안 구석구석을 먼지가 앉을 틈 없이 윤나게 닦으신다.


결혼 후 시댁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서투른 손부의 살림 솜씨가 마땅치 않을 텐데도 어여삐 여기시고 살뜰히 챙겨 주신 할머니. 유난히 손자 욕심이 많으신 할머니가 손부의 임신 소식에 열 달 내내 태어날 증 손주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주시고 그 정성은 아기가 태어나고 수유하는 동안에도 계속된다.

특별히 입덧도 안 하고 잘 먹는 손부가 이쁘다며 만들어 주신 반찬들. 돌이켜보면 할머니가 해 주신 반찬엔 특별한 재료란 없다. 동네 시장에 파는 콩나물과 상자째 놓아두고 먹던 감자. 그 흔한 식재료로 만들어진 반찬이지만 언제 먹어도 물리지 않는 할머니 표 손맛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그리워진다.

반찬 1 할머니 표 콩나물무침




양푼에 데친 듯 삶아낸 콩나물에 다진 마늘 + 얇게 채 썬 파 + 소금 + 고춧가루를 대충 넣어 투박한 할머니 손으로 팍팍 주무르고 참기름 살짝 뿌린 후 버무려 그 위에 깨소금 솔솔 뿌리면 완성.


반찬 2 할머니 표 감자조림





할머니는 감자를 수저로 표면을 벅벅 긁어서 껍질을 깐다. 그 수저의 연식은 한쪽 면이 어슷하게 닳아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할머니가 깎은 뽀얗고 매끈한 감자에 비해 내 것은 군데군데 껍질이 남아 있다. 냄비에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놓은 감자를 넣고 진간장과 왜간장을 적당히 넣어 졸이다 설탕을 살짝 뿌린다. 어느 정도 조려지면 깨소금 솔솔 뿌리고 완성.

곰. 곰. 곰 무엇이 다른가.


이상하게도 같은 콩나물을 무쳐도 할머니 표 콩나물은 흉내 내기가 어렵다. 마찬가지로 감자도 가르쳐주신 방법으로 만들어도 예전의 그 맛이 아니다. 식탁에 콩나물무침과 감자조림을 내놓으면 나도 모르게 남편의 반응을 살핀다. 누구보다도 그 맛을 기억하는 일인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어린 시절 즐겨 먹던 반찬이기도 하지만 할머니를 기억하는 추억의 맛이기도 하니까.


편리한 즉석식품으로 간단히 조리해 한 끼를 해결하는 세대에게 집밥은 어떻게 기억될까. 코로나로 외식보다는 집밥을 선호하게 되고 무엇보다 건강한 식사에 신경이 쓰인다. 콩나물 천 원어치로 대여섯 식구들 손색없는 한 끼 반찬으로 뚝딱. 할머니의 마법의 손맛엔 뭔가 모를 특별함이 있다. 살뜰한 정성으로 만든 음식은 가족의 입맛을 돋우고 건강한 하루를 지탱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다. 겨우내 움츠렸던 새순이 톡 톡 톡 음률에 맞춰 춤추고 회색빛 바위틈 사이로 수줍은 분홍 진달래가 봄 인사를 전한다.

“ 반찬 뭐 하지?”


고민할 것 없이 할머니 표 손맛을 떠올리며 콩나물 팍팍 무치고 달~달한 할머니 표 감자조림을 만들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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