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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떼기도 먹어보니 맛있네

초보 다이어터, 이렇게 시작하는 게 맞나요?

by 섬섬옥수

일을 그만둔 이후, 근무 중엔 못 하던 것들에 열심이다. 평소 더 하고 싶었던 공부와, 무엇보다도 운동. 몸이 뻐근하고 망가지면 결국 아무것도 못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건강을 챙기고 싶어 시작했던 운동은 어느새 과열되고 있었다.




내 몸을 속이지 못하면 살은 빠지지 않아.


하루에 두 시간씩, 아파트 지하 커뮤니티 센터에서 헬스를 시작했다. 코로나 시국으로 외부 헬스장을 마냥 마음 놓고 이용하기엔 찝찝한 작금, 지하 커뮤니티에 헬스장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 매일 점심 후에 내려가면 러닝머신부터 찾았다. 40분을 열심히 걷고, 이후의 20분은 자전거를 탔다. 유산소로 1시간을 불태우면 그때부터 근력운동이 시작되었다.


보통 하체 데이, 혹은 상체 데이. 이렇게 어느 쪽 근육을 집중적으로 발달시킬 것인지 정해두고 근력운동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나는 마음이 조금 급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상체 혹은 하체만 발달되어 보이는 모습이 꺼려졌는지도.

하루에 상체와 하체를 전부 욱여넣었다. 하체 15분을 진행하면 상체 15분을 채우는 방식이었다. 상하체를 기구를 통해 사용하고 나면 윗몸일으키기 등으로 코어 근육을 다져주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하루 두 시간을 헬스장에서 보내며 아침은 간단한 주스, 점심은 가벼운 샐러드로 식사를 대체하니 놀랍게도 체중이 함께 줄었다. 일을 하며 원치 않게 과식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급하게 찐 살은 역시 급하게 빠지나? 싶었다. 점심시간, 직장 동료와 가장 자주 들르던 곳은 순댓국밥집. 그다음으로 애정 했던 곳은 선지 해장국 집이나 라멘집이었으니 체중이 뿌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건강을 다지기 위해 시작했는데, 체중까지 함께 빠지니 나는 신이 났다.


내 아침과 점심이 샐러드가 아닌 일반식, 혹은 배달음식으로 변경되는 일은 그렇게 흔하진 않았다. 맛이 들려버린 것이다. 처음엔 거부감 가득했던 푸른 채소도 먹다 보니 입맛에 맞기 시작했고, 어느 시점부터는 샐러드의 드레싱이 너무 살찌는 건 아닌가까지 걱정할 정도였다. 남들은 하루 정도는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치팅데이를 정해두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굳이 시도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 하루의 유혹이, 앞으로의 다이어트까지 쭉 영향을 끼칠까 겁이 났다.


운동을 시작하고 일주일 만에 1.5킬로 정도가 빠졌고, 이주일이 되자 3킬로에 가깝게 감량했다. 운동을 해서 근력을 키워두고 근육량을 증가시키면 대사량이 늘어 가속이 붙는다던데, 그 말이 정말인가 싶을 정도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건강을 위하던 운동은, 체중 감소를 위한 운동이 되어 있었고.


내 몸을 속이지 못하면 살은 빠지지 않아

이 말은 내 입에서 떼어 놓으래야 떼어 놓을 수 없는 한 마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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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체중 감량이 처음은 아니라서


이렇게까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내 몸을 몰아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체중 감량 시도가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 위에도 기술했듯, 개인 PT를 들은 적이 있었다. 다만 그때의 나는 조금 안일했다. 나 본인보다는 가족이 내 체중 조절을 원했었고, 그러해서 들었던 PT였다. 약속 시간이 되면 내려가 헬스장으로 입성해야 했고, 본격적으로 수업을 듣기 전 10분 동안 러닝을 뛰어야 했다.


그리고 그 10분간의 러닝은, 재작년의 나에겐 지옥불 위의 10분이었다. 남들이 하라고 해서 운동은 해야겠는데, 기초 근력이나 체력이 없으니 뛰는 일이 쥐약 같았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비싼 돈을 주고받는 PT이니만큼 체중은 감소하기를 바랐으니 양심이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없었다.


50분간의 수업을 마친 후 트레이너 선생님은 유산소를 조금 더 하거나 배운 내용을 복습하길 권유했지만, 운동의 필요성을 영 체감하지 못했던 나는 적당히 어슬렁거리다 집으로 올라가버린 적이 여럿이었다. 근력 운동이나 트레이닝 자세를 취하면 근육이 땡땡히 부풀어올라 새벽에 자다 깨는 일도 있었으니 달갑지 않은 게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식단 조절은 전혀 들어가고 있지 않았다. 일반식을 계속 먹고, 특별한 날엔 배달음식도 마다하지 않으며 알음알음 PT 수업만 어찌어찌 듣고 있었으니 감량에 효과가 없었던 건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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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빼지 않아도 빠졌었잖아


재작년, 내가 그렇게 허술하게 돌아다니면서도 체중이 감량되리라고 생각한 데엔 나름대로 합리적인 '핑계'가 있었다. 2017년 즈음, 나는 해외로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왔었다. 부모님과 일가친척도, 친구 역시 없는 타지에서 낮이면 공부하랴 밤이면 아르바이트를 하랴. 한시가 바빠 뛰다시피 걸어 다녔더니,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어도 하루가 다르게 체중이 줄었다.

우리나라 지하철 체계와는 다르게 그 나라는 역간 거리가 꽤 되었고, 역과 역 사이 애매한 지점에 학교나 알바처가 있으면 영락없이 걸어 다녀야만 하는 꼴이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11시, 5시 40분쯤 먹었던 막간 저녁의 배는 꺼져 있었다. 집 근처의 역에 도착하면 거진 자정이었는데, 역전 24시 규동 집에서 밥을 한 공기 다 먹고 돌아가도 샤워 후 체중계에 올라가면 전 날보다 많으면 1킬로까지 빠져있곤 했다.


워킹홀리데이가 끝나갈 즈음에는, 처음 출국했을 때와 비교해서 10킬로가량이 빠졌었는데 실제로 옷 사이즈가 바뀌더라. 귀국할 시간이 다가왔을 땐 걱정도 했을 정도로. 한국에 돌아가서 막힌 담이 무너지듯 식욕이 뻐렁쳐서 못 먹은 걸 죄다 먹어버리면 어쩌나. 그래서 현지에서 샀던 작은 사이즈의 옷이 또다시 안 들어가게 되면 어쩌나.

그리고, 귀국한 후에 정말 걱정대로 되어버렸다. 마음껏 먹었고 마음껏 누렸으며, 다시 또 토실토실하게 적당히 살이 올랐다. 그러나, 타지에서 겪은 고생이 해소되고 쌓여있던 긴장이나 스트레스가 풀린 탓일까. 몸에 여러 가지 신호가 왔었다.


이따금 어지럼증을 느끼기도 했고,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던 부정출혈까지 겪었었으니. 당황해 방문했던 여성의원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이 일품이었는데 ─ 뭐 이런 거로 병원을 오냐는 어투에 질린 나는 그 후 1년 반쯤 여성의원에 발길을 끊었지 싶다.

작정하지 않더라도, 아니, 도리어 살을 찌우려고 했어도. 타지라는 환경과 독립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불안감, 매일같이 2만보를 넘게 찍는 활동량이 내 체중을 쏙쏙 빼먹고 있었을 테다.




건강한 다이어트는 무얼까


매번 거북목으로 문서를 작업하다 목을 펴면, 그것이 올바른 자세임에도 적응되기까진 불편하다. 건강을 위해 허리를 폈다고 생각했는데 허리가 이상하게 더 뻐근했던 적도 있다. 분명 몸을 위해 시작한 변화임에도, 내 몸은 변화에 적응하기 싫어 익숙한 것을 돌려달라 아우성을 치는 것이다.


이번 운동의 시작도, 궤를 달리하진 않았다. 운동을 하고 오면 온 몸이 근육통으로 쑤셔댔고, 샐러드를 먹으면서 작아진 내 위는 가끔 맞이하는 양 많은 일반식을 부담스러워했다. 저녁에 가족이, 그 좋아하는 치킨을 사 와도 다리 한두 쪽이면 배는 이미 빵빵해졌고 김치찌개에 밥 한 공기를 빠듯하게 말아먹는 날이면 내내 속이 더부룩했다.

위도 붓는 걸까? 아니면 작아진 위에 과한 양을 넣다 보니 팽창한 걸까. 심할 때는 호흡이 조금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배가 팽창한 기분이었다.


과유불급이라고, 과하게 탄수화물을 줄이거나 식단 변화를 급격하게 주면 몸에 좋지 않다고 하는데 체감하는 체중 감소나 운동 여하에 따라오는 부가적인 효과를 만나다 보면 적정선을 지키기가 어려워진다.

초보 다이어터, 혹은 헬린이로서. 적정선은 어디일까, 건강한 다이어트는 무얼까. 연일 생각하게 되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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