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테이블에 영수증이 빼곡히 쌓여 있고 에블린(양자경)은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보느라 여념이 없다. 그녀는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 중국에서 온 아버지(제임스 홍)에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데, 세탁소는 세무 조사에서 위반 사항이 발견돼 가압류 위기에 처했다. 딸 조이(스테파니 수)가 여자친구 베키(탈리 메델)를 데려오지만 아버지에게는 그저 친한 친구라고 소개해야 할 것 같았다. 엄마에게 또 한 번 상심해 떠나는 딸을 에블린은 붙잡지 못한다.
가뜩이나 뜻대로 흐르지 않는 삶이 버거운데 남편도 딸도 참 도움이 안 된다. 세무 조사의 통역을 도와주기로 한 조이는 없고, 웨이먼드는 국세청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며 이어폰을 귀에 꽂아 준다. 세무 조사관 디어드리(제이미 리 커티스)를 앞에 둔 에블린은 일단 웨이먼드가 시킨 대로 좌우 신발을 바꿔 신고 청소 보관함을 상상하며 이어폰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에블린이 인식하던 현실이 둘로 조각나 조사관과 마주 앉은 우주와 청소 보관함에 들어간 우주를 동시에 인식하게 된다.
청소 보관함 우주에서 에블린은 이상한 웨이먼드를 다시 만난다. 그에 따르면 무한히 많은 다중 우주가 존재하고 그는 알파버스라는 우주에 있는 '알파 웨이먼드'다. 한쪽 우주에서 디어드리가 영수증에 검은색 동그라미를 빙글빙글 그리며 경비 처리가 엉망이라고 질책하는 동시에, 다른 우주에서 알파 웨이먼드는 다중 우주의 존망이 에블린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정신없는 와중에 갑자기 청소 보관함에 이마에 검은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디어드리가 들이닥쳐 웨이먼드를 죽이고 에블린을 가격한다.
청소 보관함 우주와 연결이 끊어지고, 디어드리도 어쩐 일인지 저녁 6시까지 다시 기회를 준다며 에블린 가족을 돌려보낸다.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디어드리가 청소 보관함 우주에서 본 섬뜩한 표정으로 에블린에게 걸어온다. 이에 에블린은 디어드리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뒤이어 웨이먼드가 하루종일 들고 다니던 종이가 사실 이혼 서류였음을 알게 된다. 국세청 경비원들이 몰려들고 두 사람은 혼돈에 빠져든다.
다시 나타난 알파 웨이먼드가 급한 상황을 벗어난 다음 에블린에게 묻는다. 그를 따라와 잠재력을 발휘할지 아니면 이대로 누워서 뒷감당만 하고 있을 건지. 에블린은 누워있겠다고 답하고, 알파 웨이먼드는 그런 그녀를 들쳐 업고 이동한다. 그는 이 우주의 에블린이 거대한 악의 세력 '조부 투바키'를 무찌를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에블린은 '버스 점프(verse jump)'로 다른 우주에 펼쳐진 가능성을 죄다 끌어다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지금껏 무수한 가능성을 포기하고 모든 것에 실패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다중 우주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 에블린은 남편과 딸에게 귀 기울일 새도 없이 분주하게 살고 있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좌절을 마주하지 않기 위한 연막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버스 점프에 성공한 그녀는 웨이먼드와 결혼하지 않고 쿵후 실력을 인정받는 세계적인 배우가 된 우주를 경험한다. 그리고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한 깊은 회한을 웨이먼드에게 털어놓는다.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내 삶은 지금과 달리 근사했을 거라고 말이다.
조부 투바키의 정체는 다른 우주의 조이였다. 탁월한 과학자였던 알파버스의 에블린이 다중 우주 간 버스 점프를 처음 개발했는데, 딸 조이의 버스 점프 역량을 발견하고는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고통스럽고 집요한 실험 끝에 알파버스의 조이는 모든 우주의 모든 가능성을 경험한 괴물 조부 투바키가 되었다. 조부 투바키는 과학자 에블린을 죽인 후 모든 우주의 에블린을 찾아다니며 죽이고 있다. 그녀는 청소 보관함 우주의 에블린을 죽이고, 에블린이 국세청 경비원들에게 쫓기는 우주에 딸 조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에블린은 조부 투바키에게서 조이가 이상하게 굴었던 이유를 찾았다고 여긴다. 그동안 사랑스러운 딸 조이가 대화를 거부하고 대학을 중퇴하고 여자친구와 살겠다고 집을 나간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조부 투바키가 조이에게 이상한 생각을 주입했기 때문이라면 문제가 단순해진다. 조부 투바키만 없애면 조이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삶의 혼란도 멎을 테다. 에블린의 안일한 상황 파악에 조부 투바키는 기가 차지만, 어쨌든 에블린은 조부 투바키를 없애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조부 투바키를 제거할 절호의 기회에 에블린은 하필 핫도그 손가락을 가진 우주로 버스 점프 해서 공격력을 잃는다. 이상하게도 모든 우주의 에블린을 죽이고 다녔다는 조부 투바키가 에블린을 죽이지 않는다. 대신 마음을 열게 해 주겠다며 검은 베이글을 보여 준다. 그녀는 베이글 위에 무엇을 얹든 전부 사라져 버린다는 걸 발견했고, 모든 게 언젠가 사라진다면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고통과 죄책감에서 놓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블린은 조이와 조부 투바키를 별개로 생각하지만, 둘은 깊은 체념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민자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에블린은 조이에게서 어떤 보상을 원한 듯하다. 높은 성적, 사회적 성공 등을 이루지 못한 조이는 딸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엄마의 태도에 계속 상처 입는다. 한편 조부 투바키에게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지만, 과학자 에블린은 그 능력 이상을 보고 싶어 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영 불충분한 존재로 남아야 하는 현실에, 조이는 엄마를 떠남으로써 그리고 조부 투바키는 엄마를 죽임으로써 반응한 것이다.
부모의 기준으로 보아 이룬 것 없는 삶에 괴로워하기는 에블린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딸 때문에, 좁은 집 때문에, 넉넉하지 못한 경제력 때문에 불행하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실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웨이먼드를 따라 미국에 오기로 선택한 과거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에블린은 조부 투바키의 베이글을 통해 지나온 삶을 돌아본다. 궁상맞고 초라한 삶을 불러온 장본인이 바로 나라는 진실이 에블린 마음속 깊은 곳을 강타한다.
끊임없는 버스 점프로 모든 우주에서 모든 가능성을 경험한 에블린은 조부 투바키의 뻥 뚫린 마음에 동조하기에 이른다. 돌덩어리 우주에서 만난 두 사람은 그저 허허벌판의 돌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순간을 함께한다. 이로써 사는 건 부질없다는 조부 투바키의 명제가 참으로 증명된 듯하다. 내가 소멸하면 내 삶의 괴로움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에블린은 조부 투바키와 함께 베이글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가족 중 유일하게 다중 우주나 버스 점프가 무엇인지 모르는 웨이먼드가 말한다. 다들 무슨 상황인지 몰라 무섭고 혼란스러워서 싸우는 것일 텐데 그럴 때일수록 다정해지자고. 그는 빨랫감에 인형 눈알을 붙이고 꼬투리 잡기 바쁜 세무 조사관에게 쿠키를 가져다주는 사람이다. 에블린은 매사에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웨이먼드를 이해할 수 없었고, 무능한 그가 모든 걸 망친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딸이 못마땅한 에블린은 딸을 위해서라면 옳은 일은 무엇이든 하려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재판관의 시선에 머무르면 내가 옳고 다른 사람들이 틀렸다고 믿게 마련이다. 옳은 것들로만 내 세상을 이루려는 태도는 곧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을 배제함이다. 에블린은 그렇게 웨이먼드와 조이를 배제하는 세상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니 에블린이 그들과 다시 연결되기 위해서는 굳건하다고 믿어온 자신의 세상을 깨고 나가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평소에 절대 하지 않을 법한 기상천외한 행동이 버스 점프를 촉발한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사람은 안 하던 행동을 함으로써 경험의 저변을 넓힌다. 에블린은 원래 위기에 처해도 잠재력을 발휘하기보다 차라리 누워 있겠다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소변을 보고, 스스로 코를 간질여 재채기를 하고, 코로 파리를 빨아들인다. 옳은 것과 한참 거리가 먼 행동들이다. 하지만 바로 그 기행들을 경유해 에블린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건너간다.
또한 에블린에게 버스 점프란 그동안 놓친 가능성을 낱낱이 마주하는 여정이 된다. 그녀는 버스 점프를 통해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이민자라는 비좁은 정체성을 벗어나 세계적인 액션 배우, 앞을 못 보는 가수, 철판 요리사, 피자 광고판을 돌리는 아르바이트생 그리고 핫도그 손가락을 가진 동성애자가 된다. 그 모든 자리에 있어 봄으로써 에블린은 꽃피우지 못한 잠재력에 대한 회한을 해소한다. 그제야 그녀는 조이와 웨이먼드에게 더 나은 무언가를 요구하기를 멈춘다.
조이의 공허에서 웨이먼드의 다정함까지 확장된 에블린의 세계는 이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한다. 이마에 인형 눈알을 붙인 에블린은 사람들을 꿰뚫어 보고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을 준다. 외로운 이들에게는 연인을, 사별한 부인을 그리워하는 이에게는 그녀가 쓰던 향수를, 피학 성향을 가진 이에게는 거침없는 스팽킹을 선사한다. 그리고 조부 투바키 혹은 조이가 그토록 자멸하기 원한다는 사실까지 끌어안는다. 웨이먼드의 이혼 서류와 조부 투바키의 베이글은 부디 나를 봐달라는 간청이었음이 틀림없다. 다중 우주라는 먼 길을 돌아 에블린이 드디어 그들에게 응답한다.
에블린은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는 명제의 참뜻을 발견한다. 사라지는 건 나중 일이고, 지금 여기에 네가 있고 내가 있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 모든 우주와 모든 가능성을 두고 에블린은 작은 찰나를 조이와 공유하기로 한다. 그렇게 조이를 위해 무엇이 옳은지 다 알고 있다는 믿음을 버리고 조이에게 다가간다. 조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전전긍긍하며 딸을 올바른 길 위에 끌어놓으려는 엄마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뚫고 내가 있는 자리로 와서 나와 함께하는 엄마였다.
아무것도 몰라도 괜찮다. 오히려 모른다고 인정할 때 상대를 다정하게 포용할 여백이 생긴다. 웨이먼드의 다정함은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고 인정하는 진솔함에서 나온다. 조이는 무의미함을 어찌 견뎌야 할지 몰라서 어쩌면 답을 해줄 수 있을 에블린을 찾아다녔다. 안타깝지만 에블린도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조이의 모든 감각을 공유하면서 곁에 있기로 한다. 마침내 조이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세계로 나아간 에블린은 베이글로 향하는 조이를 돌려세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나의 불안과 편협함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놓쳤다가 내 세상을 깨부수고 나가 다시 그 사람을 붙드는 이야기다. 상대를 내가 아는 좁은 세상에 가두는 게 아니라 상대가 있는 세계로 내가 건너갈 때 구원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곤 한다. 나머지 우주에서는 에블린이 죽었지만 이곳에서는 유일하게 조이가 먼저 죽었을 수도 있다. 에블린이 너무 늦지 않게 조이를 껴안은 덕분에 조이의 부재를 견디는 우주에서 빗겨 나 조이와 함께 울고 웃는 삶이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