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간과 우주를 잇는 바다의 시가(詩歌)

영화 <해수의 아이>

by 다정

애니메이션 영화 <해수의 아이>는 시적인 리듬으로 여름방학을 맞은 중학생 루카(아시다 마나)가 듀공과 함께 자란 두 소년 우미(이시바시 히이로)와 소라(우라가미 세이슈)를 만나고 바다와 우주의 신비를 경험하는 이야기를 전한다. 루카를 앞세워 관객을 몽환적인 바닷속 세상으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빛과 물의 질감을 품은 작화와 섬세한 사운도가 돋보인다. 이렇게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요소들은 궁극적으로 감각할 수 없는 혹은 감각을 넘어서는 것들을 전하고자 설계되어 있다.


루카는 고립된 아이다. 부모님은 별거 중이고 루카는 엄마와 산다. 매일 술을 마시는 엄마와는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루카는 여름방학 동안 핸드볼부 활동에 큰 기대를 가졌지만, 갈등에 휘말려 억울하게 제명된다. 외로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고 느낄 때면 어릴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보았던 빛나는 혹등고래를 떠올리곤 했다. 핸드볼 연습에 참여할 수 없는 루카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던 그 수족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4.jpeg


그곳에서 듀공의 품에서 자란 특별한 소년 우미를 만난다. 그의 이름은 바다를 뜻하고, 형 소라는 하늘을 뜻한다. 우미는 루카에게 도깨비불을 보여 주며, 모든 빛나는 것들은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중에 만난 소라는 루카에게 조금도 살갑지 않지만, 루카에게서 특별한 냄새를 맡는다. '해수(海獸)'는 바다에 사는 포유류를 가리킨다. 영화의 제목 '해수의 아이'는 우미와 소라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런데 루카 역시 해수의 아이로 보인다. 루카는 해양학자 짐(다나카 민)의 연구실에서 우연히 들은 고래의 노랫소리에 형언할 수 없는 자극을 받는다. 짐에 따르면 고래는 보고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노래에 담아 전한다고 한다. 말로 표현하지 않고서는 생각의 절반도 전달하지 못하는 인간과 다르게 말이다.


우미와 소라는 루카에게 고래의 노래가 탄생제를 알리는 메시지이며 탄생제에 초대할 손님을 찾고 있는 것이라 알려준다. 루카도 어릴 적 엄마가 불러준 자장가의 노랫말을 통해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바다가 품어 별을 낳는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바로 이 날 소라는 운석을 찾아 바닷속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는다.


1.jpeg


운석을 찾은 소라는 먼바다에서 짐의 조수 앙글라드(모리사키 윈)를 만난다. 우미도 소라가 파도에 실어 보낸 메시지를 받고 루카와 함께 소라를 만나러 간다. 앙글라드는 세 아이들에게 우주의 90%가 무엇으로도 관측할 수 없는 암흑 물질이며 우리 인간에게는 사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셈이라 말한다. 이에 소라는 인간이 생각한다는 건 별과 은하의 탄생 과정을 닮아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루카는 이 대화를 통해 인간과 우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온통 연결되어 있음을 직감하는 듯하다. 빛이 나는 것들을 마냥 좋아했지만, 이제는 언젠가 사라질 아름다운 빛을 보면 슬프다. 가만히 듣고 있던 소라는 루카에게 자신이 품고 있던 운석을 맡기고 비틀비틀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소라의 파편이 바닷물을 타고 흩어진다. 이후 앙글라드는 바다의 신비를 겸허히 받아들인 할머니 데데(후지 스미코)에게서 탄생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데데에 따르면 탄생제에 인간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소라가 사라지고 며칠이 지난다. 이윽고 탄생제가 임박했음을 직감한 우미는 루카와 함께 데데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운석을 품은 루카를 향해 바다 생물들이 모여든다. 거대한 고래가 바다에 본능적으로 뛰어든 '해수의 아이' 루카를 삼킨다. 고래의 품에서 루카는 바다가 간직하고 있는 소라의 기억을 만난다. 소라는 감당할 수 있다면 두 눈을 뜨고 탄생제의 마지막까지 지켜보라 말한다. 우미가 고래의 뱃속으로 따라와서 루카가 품었던 운석을 삼킨다. 그리고 소라처럼 무수한 파편이 되어 바다에 흩어진다.


탄생제가 일어나는 동안 관객은 영화와 함께 섬세하고 화려한 작화를 통해 환상의 세계로 건너가게 된다. 거대한 자연과 우주의 존재 앞에서 인간은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이 곧 우주이며 우주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으로 느낀다면, 자기 존재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도 있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경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연결감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가 닿기 위해 관객을 환상 속으로 데려오기를 택한 것이다.


3.jpeg


탄생제가 끝나고 루카가 운석을 다시 품고 집으로 돌아온다. 우미와 소라의 형체는 사라지고 루카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으로 여전히 두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바다는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으로 우주의 기억을 공유하고, 우미와 소라의 기억이 바다에 스며들어 있고, 바다의 모든 기억을 가진 운석이 루카 안에 있다.


우주가 거대한 유기체이고 모든 생명이 우주의 일부라면,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의 변화일 테다. 그러니 생명이 살아가다가 스러짐에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어도 기억을 통해 우주의 일부인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데데는 자신도 바다의 소년을 만난 적이 있기에 바다에서 돌아온 루카가 몇 마디 하지 않아도 그의 심정을 헤아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감각하는 일은 어떤 경계를 넘어섬이기도 하다. 데데와 루카는 경계를 이미 넘어선 이들이기에 말없이도 서로의 뜻을 알아차린다. 이제 루카는 우미와 소라를 만나기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갈 테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방학 동안 겪은 일을 말하지 않는다. 엄마가 이해할지 확신이 없기도 하고, 고래의 노랫소리와 달리 인간의 언어는 모든 걸 담아내지 못한다는 걸 알아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수의 아이>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우주의 경이를 간절히 전하고 싶어 한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을 꿈꾸며 그런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루카처럼 만물과 연결됨을 느끼고 우주의 경이를 경험하게 만든다면, 그것만으로 기적이다. 그 한 사람이 곧 우주이기에 우주에 변화를 일으킨 셈이기 때문이다.


실패할 줄 알면서 만에 하나 기적을 꿈꾸는 영화에 나는 늘 마음이 약하다. 부디 누군가 이 영화에 자신을 내맡겨 온전히 루카가 되어 볼 수 있기를 꿈꾼다.


5.jpeg




keyword
이전 03화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