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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영화 <소울>

by 다정

우리의 영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것은 경험 세계의 층위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물음이다. 영혼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는지도 모르고, 있더라도 생과 사의 바깥에 해당하는 시간에는 어떤 세계에 귀속되는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정답은 알 수 없을지라도 인류는 신화, 종교 등을 포함해 무수한 이야기들을 통해 그 답을 찾아 헤맸다. <소울>은 이 질문에 현재 가능한 기술력과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또 다른 답을 제시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다. 죽음 이후의 영혼과 탄생 이전의 영혼이 만나 벌이는 좌충우돌 모험 이야기를 통해 <소울>은 관객에게 삶을 대하는 균형 잡힌 태도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재즈 뮤지션을 꿈꾸는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는 생계를 위해 뉴욕의 한 중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한다. 학교에서 정규직 제안을 받은 날 평생 고대하던 재즈 무대에 설 기회를 얻는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었다는 기쁨에 도취되는 그 순간 길에서 맨홀에 빠져 사망한다. 조의 영혼은 사후 세계로 향하는 길에 이대로 죽을 수 없다며 발버둥 치다가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진다. 그리고 태어나기를 거부하는 영혼 22(티나 페이)의 멘토가 된다. 22는 조가 간절히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흥미로워하며 그의 부활을 돕기로 한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일이 꼬인다. 조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어떻게든 바로잡기 위해 두 영혼은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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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의 모든 장면에서 픽사의 뛰어난 기술력과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영혼의 세계와 뉴욕 거리의 각기 다른 질감과 빛의 산란, 영혼의 생김새나 2차원 존재자의 디자인 등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탁월한 작화는 기술의 진보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의 의미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특히 22가 처음 육신에 깃들어 지상에서 작은 경이를 느끼는 순간은 이 영화가 작화에 가장 공들인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분명 조도 매일 같이 거닐던 거리인데 전혀 다른 풍경처럼 보인다. 살아 있음을 너무나 당연히 여기고 특별한 목표가 삶의 전부라고 여기던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었는지 알게 한다.


조가 가장 간절히 바라던 것을 이루기 직전에 죽었다는 걸 떠올려 보자. 극단적 상황에 내몰리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인간은 살아있는 상태에 익숙해지며 그 이상의 무언가를 좇는다.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것이 꼭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매 순간 밀려드는 온갖 자극에 일일이 반응하며 살다가는 아무것도 못할 테니 말이다. 다만 살아있음에 지나치게 도취되어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때 삶은 그 믿음을 결정적으로 배신한다. 조는 갑자기 밀어닥친 사고나 천재지변으로 죽지 않았다. 조의 죽음이 꿈을 이루게 되었다는 기쁨에 도취되어 발을 헛디딘 까닭인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22는 수 천 년 동안 지상에 내려가기를 거부했다. 인간에게 필요한 속성들 중 하나를 일부러 채우지 않아서 지구 통행증을 발급받지 못했다. '유 세미나(You Seminar)'에서 수많은 성인들에게 인생에 대한 많은 정보를 배웠기에, 삶은 시시할 것이므로 직접 경험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모든 것에 달관한 듯한 22의 태도는 사실 고통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숨기는 가림막이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멘토들이 미리 알려준 고통과 고난에 완벽히 대비하려다 오히려 삶과 마주치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지식도 삶을 직접 경험해야만 만끽할 수 있는 풍부한 감각을 대체할 수 없다. 피자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달콤한 사탕을 입에 물고 친구들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그리고 단풍나무 씨앗이 바람을 타고 손바닥에 내려앉은 순간의 환희 같은 것들 말이다. 인생에 닥쳐오는 고통과 고난을 피할 수 없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아름다움에서 느끼는 환희가 어려움을 헤쳐 나갈 힘을 주기도 한다. 이 진실은 직접 살아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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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는 22의 지구 통행증으로 자기 몸으로 살아 돌아와서 무사히 무대에 선다. 그런데 목표만 이루면 삶이 완벽해질 줄 알았던 조는 이상한 허탈감을 느낀다. 기간제 교사가 매일 출근해서 아이들과 함께하듯이, 재즈 뮤지션도 매일 밤마다 무대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함께 무대에 섰던 도로테아 윌리엄스(안젤라 바셋)는 조에게 우화 하나를 들려준다. 바다에 가겠다고 야심을 품은 물고기는 자기가 물속에 있을 뿐 이미 바닷속에 있는 줄 모른다는 이야기다. 조는 자기 삶을 완벽하게 만들어줄 특별한 순간을 꿈꿨지만, 있는 그대로의 삶에서 온전함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와 22의 영혼은 삶을 대하는 두 가지 대조적인 태도를 담지한다. 육신을 경험해 본 영혼 조는 삶을 너무나 당연시해서 일상의 아름다움을 못 보고, 탄생 이전의 영혼 22는 삶을 너무 무겁게 여겨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영화는 관객에게 그 사이 어딘가 균형점을 찾으라 말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 우리의 영혼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명쾌한 답을 내놓는 일은 어쩌면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질문은 우리가 삶의 바깥으로 사고를 확장시키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고민하게 만드는 실마리가 된다.


<소울>을 본 사람들이 22가 머무르던 탄생 전 세상과 조의 영혼이 순리에 따라 향하던 저 너머의 세상이 진짜라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괴로워하다가도, 삶의 고통과 환희 모두 우리가 살아있기에 찾아온다는 것을 종종 떠올릴 수 있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인생의 특별한 의미를 찾아 헤매다 삶에 지친 영혼들을 무수히 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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