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호주의 여행
호주에서 산 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문득 "나는 언제 호주 전체를 여행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물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지만, 막상 NSW주 외에 여행한 곳이 QLD주뿐인 게 아쉬웠다. 일도 바빴고, 길게 쉬는 날이 없다 보니 당일치기 여행을 생각했다. NSW주가 아닌 새로운 여행지이면서, 당일로 여행하기에 만족스러운 곳을 찾다 보니 호주의 수도 캔버라가 생각났다. 캔버라는 ACT주에 있으며 호주 공무원들의 집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도시이다. 국회의사당을 포함해 연방 정부 산하 행정기관 대부분이 캔버라에 있어서 휴양지 여행보다는 박물관이나 정부 기관을 보는 현장학습 여행이 더 적합한 도시였다. 호주에서 사는데 그래도 수도는 가봐야지 라는 생각이 캔버라행 비행기 표를 끊게 했다.
캔버라에 도착한 순간, 엄청난 바람이 온몸을 얼어붙게 했다. 분명 시드니에서는 괜찮았는데 비행기에서 내리고 찬 바람이 온몸을 감아버렸다. 바로 쇼핑센터로 가서 옷을 사 입자는 생각에 친구랑 무작정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요금을 내려고 카드를 찍었는데 아무리 찍어도 카드가 안 찍혀 뭐지? 하고 있는데 버스 기사 아저씨가 캔버라는 신용카드로 버스를 못 탄다고 시티로 나가면 버스카드를 살 수 있다고 알려주시면서 그냥 타라고 하셨다. 당시 공항 앞 버스정류장이었고 손님이 우리뿐이라 어디서 버스카드를 살 수 있는지, 여행 온 거냐면서 친절히 설명해 주시던 버스 기사님이 너무 감사드려서 내리기 전 시드니에서 알뜰히 간식으로 먹으려고 챙겼던 과자를 줬다. 그렇게 캔버라 여행의 처음은 훈훈하고 따뜻했다.
옷과 교통카드를 사고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의 첫 관광지는 텔스트라 타워였다. 여기서 우리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버스카드를 충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버스카드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걸 알았다. 당일치기 여행인 만큼 시간은 금보다 귀한데 버스 배차 간격은 터무니없이 길었다. 심지어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우버가 필수였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버를 타고 텔스트라 타워까지 갔는데.. 이게 뭐람.. 타워가 운영을 안 한다는 안내문이 문 밖에 붙어 있었다. 충격을 먹을 시간도 없이 우리는 타고 왔던 우버를 다시 잡아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차 안에는 실망감과 허탈함이 가득 채워졌고, 다음 목적지인 민트 박물관으로 향했다. 민트 박물관은 화폐 박물관으로 호주 역대 동전들을 전시하고 동전을 생산하는 곳이었다. 직접 생산과정을 볼 수 있었다. 그 외에 다른 박물관과 미술관도 갔었는데 모두 초등학생 때 체험학습으로 갔을법한 곳이었다.
그리고 국회의사당에 갔다. 날씨가 맑은 날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분수대는 커다란 국회의사당과 푸른 하늘을 담아 맑고 예쁘게 반짝거린다. 그 관경을 기대하고 갔지만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물이 다 빠져있었다. 결국 건물만 사진으로 담아 갔다.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얼른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기에 부랴부랴 움직였다.
어느덧 해는 저물어 갔고, 우리는 캔버라 여행의 마지막 장소인 양조장(Capital Brewing Co.)에 갔다. 양조장의 분위기는 색다르고 좋았다. 항상 술집이나 식당에서 맥주를 마셨는데 양조장은 그곳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커다란 맥주 양조 기계들이 있었고, 카운터 앞에는 다양한 색의 생맥주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양조장 한 구석에는 안주로 먹을 수 있는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파는 컨테이너가 있었다. 친구와 각자 안주와 맥주를 하나씩 주문하고 오늘 하루를 다시 되뇌었다. 날씨도 흐리고 가는 곳마다 공사 중이거나 문을 닫아서 많이 속상한 여행이었지만 이것도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라 생각하며 캔버라 여행을 마쳤다.
시드니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창 밖을 바라봤을 때 하루종일 칙칙했던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여행 중 힘들었던 기억들이 사라지고 마지막 예쁘게 뜬 무지개와 양조장에서 느꼈던 기분이 캔버라에서의 추억으로 덮어 씌워져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