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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 Jan 12. 2021

[병원여정] 17. 망할 코로나

없어져버려!

 몇 번의 입원과 퇴원을 거치며, 내 무릎은 점점 호전되어갔다. 목발 따위 없이도 혼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고, 상태가 좋아지니 입맛도 좋아져 친구들을 병원으로 불러 같이 배달 음식을 먹기도 했다. 


 그렇게 마지막 입원생활이 끝나고, 이제 나는 진정으로 퇴원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나의 퇴원 파티를 하자며 서로 약속을 잡으려고 했다. 역시나 관심받기를 좋아하는 나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 친구들과의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고, 다시 주일학교에 복귀해서 귀여운 아이들을 볼 생각에 설렜다.


 그런데, 갑자기 우한 폐렴에 대한 무시무시한 소문이 돌더니 하나둘씩 약속이 취소되기 시작했다. 주일학교도 잠정적중지령이 내려지고, 퇴원은 했지만 쉽게 아무 곳이나 갈 수가 없었다. 물론 다리도 완벽히 나은 건 아니라서 여기저기 다닐 생각은 없었지만.


 막상 퇴원을 해도 신나게 놀 수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집 안에서 맨날 누워 핸드폰이나 하고 있는 게 일상이 됐다. 컴퓨터 게임도 종종 했는데, 앉아서 게임을 하다 보면 다리에 피가 쏠려 붓는 것이 느껴져 금방 다시 침대에 눕게 됐다.


 병원에 있을 땐 밥도 적정량만 먹고 안전하게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 운동과 치료를 했기 때문에 살이 저절로 빠졌는데, 집에 오니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자주 먹게 되고 움직이지를 않으니 도로 살이 찌게 됐다. 사실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면 체중 조절을 해야 했다. 하지만 병원에 3개월 넘게 있으면서 먹고 싶어도 꾹 참으며 견뎠던 생각을 하면 식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 퇴원해도 여전히 갇혀있다는 생각 때문에 우울해서 더욱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다.


 사고가 나기 전의 나는 사실 일 중독자였다. 매일 하루하루가 바빠야 했고, 스케줄이 없으면 혼자서 뭐라도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랬던 내가 3개월 동안 병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물론 그 기간 중에도 가만히 있는 게 참을 수가 없어 이것저것 창작을 하긴 했지만 나는 좀 더 ‘일’적인 것을 원했다. 기한이 정해져 있고, 내가 온 힘을 다해 일을 해내고,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는 것. 


 하지만 당시의 나는 할 수 있는 거라곤 누워서 핸드폰을 하거나, 침대용 테이블을 올려놓고 글이나 끄적이거나, 가끔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거나, 아빠가 퇴원 선물로 사 주신 빔프로젝터로 영화를 보는 게 전부였다. 컴퓨터를 제외하고는 모두 침대에서 이루어졌다. 병원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은 퇴원하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기뻤는데, 퇴원하고 나니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더욱 서러웠던 것은 주변의 반응이었다. 심심하고 우울해서 다들 뭐 하느냐고 물어보면 다들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망할 코로나 때문이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거나, 재택근무를 하게 된 친구들 모두 나처럼 침대에 누워 할 일 없이 핸드폰이나 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일까, 사실 나는 ‘퇴원했는데도 맨날 집에만 있어서 우울해.’라고 하면 친구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나도 그래.’라며 내 상황에 공감을 해주기보다 본인의 상황도 힘들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마 그때 친구들도 힘들었기 때문에 날 걱정해줄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병원에서 돌봄 받던 게 너무 익숙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당시에 서운함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코로나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고, 나의 기운도 점점 빠져갔다. 병원에서는 많이 걸어 다니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부모님은 밖은 위험하다며 집에 있으라고만 하셨다. 집에서 아무런 의욕 없이 누워만 있는 날이 늘어났다. 친구들과의 연락도 피하게 되고, 술을 마시면 당연히 안 좋을 것을 알았지만 술을 마셨다. TV를 하도 많이 봐서 어느 날부터는 화면을 쳐다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그러면 또 잠을 잤다.


 내 인생에서 가장 쓰레기 같은 나날들이었다. 아무 의미 없이 하루를 보내고, 또 보내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살 의미가 없다면 죽는 것이 맞을까? 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다. 다리가 아파도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텐데, 내가 게을러서 찾을 생각도 못 하는 거라고, 그렇게 계속해서 나를 자책했다.


 그런데, 참 다행히도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다른 생각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의미가 왜 없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또한 경험인데.’


 ‘내 삶의 의미가 얼마나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 나는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운이 좋은 거야.’


 ‘그동안 얼마나 매일 전쟁같이 살아왔니. 이제야 쉴 시간이 생겼는데 제대로 쉬어 보자.’


 그렇게 우울하고 불행하던 순간에, 어떻게 이렇게 기적처럼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늘에 감사하고, 나에게 기운을 북돋아 준 나 자신이 대견했다. 물론 이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던 시간이 너무나도 오래 걸려 당시에는 끝없는 고통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당시의 나는 참 대단했다. 벼랑 끝에서 나뭇가지 하나만을 붙잡고 버텨낸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푹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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